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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023
한자 世居姓氏
영어의미역 A Family Name of Residing for Generations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광명시
집필자 양철원

[정의]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여러 대에 걸쳐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

[개설]

특정 지역의 세거성씨(世居姓氏)는 어떤 가문이나 인물이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세거성씨는 입향조(入鄕祖)가 있게 마련인데, 입향조는 실존한 인물로서 추적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역사가 오래되어 막연히 성씨만 구전되는 경우도 있다. 촌락 사회, 특히 집성촌에서는 입향조를 정점으로 혈연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련기록]

광명 지역의 세거성씨는 1993년 발간한 『광명시지』에 의하면 금천강씨, 광산김씨, 김녕김씨, 김해김씨, 순창설씨, 파주염씨, 무송윤씨, 광주이씨, 덕수장씨, 충주평씨 등 10개 성씨가 세거하였다고 한다. 이 조사는 1953년의 통계조사가 실린 『경기도지』에 근거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한편 1996년에 발행된 『광명의 뿌리』에 의하면 금천강씨, 능성구씨, 광산김씨, 김녕김씨, 김해김씨, 여흥민씨, 순창설씨, 창녕성씨, 고령신씨, 청송심씨, 파주염씨, 무송윤씨, 광주이씨, 전주이씨[익녕군파], 덕수장씨, 영일정씨, 초계정씨, 경주최씨, 전주최씨 등 19개 성씨가 조사되어 있다.

조사 당시 10대 이상 거주한 성씨를 중심으로 조사하였음을 밝혀 최소 200년 이상 세거한 성씨를 조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광명시지』에 비해 9개 성씨가 늘어났지만 충주평씨가 빠진 것은 10대 이상 기준에서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 『광명의 뿌리』는 확인 가능한 족보 및 선현의 묘역 소재 등을 바탕으로 조사하여 자료의 정확도가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광명시지』『광명의 뿌리』에 실린 20개 성씨를 세거지 별로 기록하고, 지역 내에 100여년 이상 선산을 모셨거나 후손이 거주하는 것을 기준으로 전주이씨 덕천군파, 전주이씨 양녕대군파, 안동권씨, 문화유씨, 분성김씨, 동래정씨, 광주안씨 등을 세거성씨의 분류에 넣어 수록하고자 한다.

[현황]

광명의 세거성씨는 지금은 많이 사라진 자연마을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어 거주하여 왔다. 자연마을이 있던 지역을 최북단 철산동 사성마을부터 시계 방향으로 찾아 그 내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능성구씨: 철산동의 최북단으로 안양천목감천이 만나는 철산1동 뱀수[巳省] 지역에는 능성구씨가 세거하여 왔다. 입향시조는 13세 구사건으로 29세까지 세거하고 있으며, 현재 반디가스 주변의 산지에 선산이 있었지만 1970년대 충청남도 조치원으로 이장하였다고 한다.

2. 여흥민씨: 철산2동철산3동에 걸친 모세[연서 지역]는 여흥민씨의 세거지였다. 13세손 민해가 입향시조로 31세까지 이어져 왔다.

3. 덕수장씨: 철산동 쇠머리에 오랜 세월 살아왔으며 11세손 장준이 임진왜란 시 행주대첩에서 전사한 선조 장응기의 영정과 신위를 모셔 오면서부터 정착하였다고 한다. 400여 년의 세월 동안 24세까지 이어져 거주하고 있다.

4. 영일정씨: 현재 하안동 5단지 아파트 지역인 가림마을이 세거지로 18세기 영조 대에 25세 정익채가 입향한 후 34세까지 이어져 왔다.

5. 전주이씨 덕천군파: 하안동 안터마을에는 전주이씨 덕천군[정종의 10번째 아들]의 3자인 운수군 이효성의 묘를 비롯하여 후손인 익화수 철 등의 묘가 있다. 운수군은 중종반정에 참여한 공신으로 최소 450여 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성씨임을 알 수 있다.

6. 충주평씨: 하안동 밤일에는 충주평씨가 약 150여 년 전부터 세거하였다고 전한다.

7. 전주이씨 양녕대군파: 하안동 밤일에는 전주이씨 양녕대군파도 뒤이어 세거하였다고 전한다.

8. 전주최씨: 소하동 설월리에는 전주최씨의 18세손이 노온사동 장절리에 입향한 후 25세 최영환 대에 이주하여 32세손까지 이어지고 있다.

9. 전주이씨 익녕군파: 소하동 영당말에는 전주이씨 익녕군파[태종의 8남]가 15세기 후반부터 세거하여 왔다. 익녕군의 차남인 수천군의 묘를 이 마을에 조성하면서부터 오늘날까지 19세에 이르도록 세거하고 있다.

10. 광산김씨: 일직동 성재산 자락에는 광산김씨가 10세인 김원록, 대덕 형제로부터 25세까지 세거하고 있다. 김원록, 대덕 형제가 입향한 시기는 대략 1620년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김원록, 대덕 형제의 묘는 성재산 동쪽 편에 있다.

11. 초계정씨: 일직동 자경리에는 초계정씨도 세거하였는데 18세손 정호가 450여 년 전인 중종 시기에 정착하였다고 전하며 32세손까지 세거하였다.

12. 안동권씨: 일직동 양지편에는 안동권씨가 세거하여 1500년대 중반의 인물인 권형의 묘와 조선 인종대의 권유의 묘 등이 서독산 자락에 남아 있으며 450여년을 세거한 것으로 보인다.

13. 파주염씨: 가학동 장터말에는 염공거, 백거 형제로부터 450년간 세거하였다.

14. 김녕김씨: 가학동 노리실에는 김녕김씨가 1600년대부터 10대에 걸쳐 살아왔다. 입향시조인 17세손 김순종으로부터 27세까지 이어지고 있다.

15. 창녕성씨: 가학동 노리실에는 1550년경에 성춘영이 입향하면서부터 창녕성씨가 대를 이어 살아왔다.

16. 문화유씨: 가학동 공세동은 조선시대에는 뒷골과 함께 유등리로 불렀는데, 이는 마을 동쪽에 문화유씨 선현 묘가 있어서 그렇게 부른 것이라고 한다. 문화유씨가 이 마을에 정착한 것은 조선 중기로 추정되며 광해군의 장인인 유자신의 고손 유성귀의 묘를 쓴 후 그 후손들이 이 묘 아래 집성하여 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17. 광주이씨: 가학동 도고내에는 광주이씨 11세손인 이봉익이 정착한 후부터 23세손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18. 순창설씨: 가학동 갓골에 정착한 순창설씨는 49세 설엄으로부터 62세손까지 약 450여년에 걸쳐 세거하고 있다. 또한 45세손인 설계조경모재와 그의 영정이 남아 있다.

19. 무송윤씨: 노온사동 장절리에는 무송윤씨가 세거 중이다. 500여 년 전 10세손 윤백붕으로부터 22세손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20. 분성김씨: 노온사동 동창골에는 분성김씨가 세거 중인데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 김계욱이 김포로부터 이주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김계욱은 임진왜란 시 호성공신 3등에 책록된 선조 분성군 김응수를 기리는 사당을 이곳에 세우고 영모재라 칭하였다.

21. 동래정씨: 노온사동 사들에는 동래정씨가 세거하였는데 조선 후기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이 어머니 부음 시 아버지와 합장하면서부터라고 전하며 그의 일기인 「경산일기」에는 1824년 묘를 조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는 정동만의 묘와 정원용의 묘가 남아 있다.

22. 금천강씨: 노온사동 능촌에는 금천강씨가 가장 오래 살아왔는데 마을 서쪽 구름산 자락에는 12세 강양의 묘부터 약 500여 년에 걸쳐 조성된 선산이 남아 있다.

23. 김해김씨: 광명동원광명마을에는 김해김씨가 세거하여 왔다. 김해김씨는 17세손인 김두징의 처 최악덕이 김두징이 죽자 따라 죽음으로써 조정으로부터 열녀로 인정받아 정려문과 땅을 하사받으면서 정착하였다고 전해지며 27세에 이른다.

24. 고령신씨: 광명동원광명마을에는 고령신씨가 세거하여 왔다. 고령신씨는 10세손인 신종흡이 입향한 후부터 약 500여 년이 지났으며 25세에 이른 것으로 전하고 있다. 신종흡의 묘는 원광명마을 초입에 있다.

25. 광주안씨: 광명동 너부대 지역에는 광주안씨가 150여 년 8대에 걸쳐 세거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광명 지역에는 오랜 세월 동안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입향한 시조가 정착한 많은 세거성씨와 집성촌이 있었다. 집성촌과 세거성씨는 끈끈한 혈연의식으로 광명 지역의 전통 생활을 지키는데 역할을 다하였다. 최근 급격한 도시의 성장으로 집성촌도 많이 사라지고 많은 후손이 뿔뿔이 흩어진 것도 현실이다. 지금 그 동안의 자료를 모아 광명 지역의 세거성씨를 기록함으로써 전통시대의 뿌리를 남길 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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