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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광명문화대전 > 광명향토문화백과 > 삶의 터전(자연과 지리) > 인문지리 > 지명·마을

  • 40동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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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소하1동에 있는 자연마을. 40동마을은 1960년대 말 가옥 40동을 지어 마을을 이루었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경기도 시흥군 서면 소하3리에 속했던 지역으로 1960년대 말 건축업자가 처음으로 집을 지었으나 실패하였고, 이후 다른 사업자가 인수해 마을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입주자가 늘어나면서 가옥이 40동에 이르렀고, 1974년 그린벨트 지역에 포함되면서 건축이 제...

  • 70동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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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자연마을. 1970년대에 새로 지은 58가구와 기존의 구옥을 포함하여 70동마을이라 하였다. 경기도 시흥군 서면 소하4리에 속했던 지역으로, 1970년대 설월리 출신 이영기(李永基)가 포도밭을 일구고 살면서 포도밭에 건물을 짓고자 70가구 건축 허가를 받았으나 58가구만 짓고 중간에 그린벨트 제한 구역에 포함되면서 건축이 제한되었다. 처음에는 텃밭이...

  • 가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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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가골[가곡(駕谷)]은 가학동의 명칭이 유래한 곳으로 학(鶴)이 깃들여 살고 학들이 멍에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므로 가골·멍에골짜기 또는 원가학이라 하였다. 마을 뒷산도 풍수지리상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가골은 조선 전기 병조판서와 예조판서를 지내고 옥천부원군에 봉해진 순창설씨(淳昌薛氏) 설계조(薛繼祖)[1418~148...

  • 가락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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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자연마을. 정선전씨 문중에 따르면, 마을에 가래나무가 많아 가래나무 ‘추(楸)’자를 써서 추동(楸洞) 또는 가래골이라 하였는데 발음이 변하여 가락골이 되었다고 한다. 전주이씨가 처음 터를 잡았고 이후 분성김씨가 들어와 정착한 마을이다. 1964년 시흥군 서면 노온사1리에 속하였고, 1981년 광명시가 되면서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속하였다. 행정상으...

  • 가리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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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소하1동에 있는 자연마을. 풍수지리상 마을 앞이 허해서 복이 나가고 재앙이 들어오는 형국이어서 마을과 삼거리에 소나무·버드나무 등을 심어 마을 앞을 가려서 가리대라고 하였다는 설, ‘설월리에서 갈라진 마을’이라는 뜻에서 가리 또는 가리대라고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조선 말기 시흥군 서면 가리대리였고, 1914년 시흥군 서면 소하리에 속하였다. 1964년 시흥군 서면...

  • 가운데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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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자연마을. 능말과 새터말[노온사동] 사이에 있는 마을이므로 가운데말이라 하였다. 가운데말은 능촌에 살던 강봉서(姜鳳瑞)의 후손인 금천강씨들이 분가하여 정착한 이래 김해김씨·남원양씨 등이 터를 잡은 마을로 조선 말기에는 시흥군 남면 아방리에 속하였다. 1914년 부군 통폐합으로 시흥군 서면 노온사리에 속하였고, 1964년 1월 1일 시흥군 행정리 확장으...

  • 가재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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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이 형성되기 전부터 샘물이 잘 나오고 가재가 많았으므로 가재골이라 하였다. 가재골은 본래 공석골에 속했던 마을로 광복 후 공석골에 살던 창녕성씨가 분가하여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64년 1월 1일 시흥군의 행정구역을 확장하면서 공석골·뒷골과 함께 가학2리에 속하였고,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경기도 시흥...

  • 갠이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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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있던 자연마을. 개어 놓은 이불처럼 마을 사람들이 예의 바르고 매사에 빈틈이 없어 갠이불이라 하였다는 설, 마을 어느 집에서 기르던 충직한 개가 늙고 병들어 앓아눕자 주인이 이불을 덮어 주며 간호했다고 하여 견이불이라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마을 주위가 산림으로 우거져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가림동(佳林洞)이라고도 하였다. 달성서씨(達城徐氏)가 처음...

  • 공석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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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조선 명종 대에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낸 성몽규(成夢奎)가 살면서 군자감에서 필요로 하는 공물과 세금을 받아들이고 출납하였던 곳이어서 공세동이라 하였다. 이후 발음이 변하여 공석이 되었다. 공석골은 조선 말기 시흥군 남면 유등리(柳等里)에 속하였고, 1914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 가학리에 속하였다. 1964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 가학3리에...

  • 구석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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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자연마을. 기존 마을과 조금 떨어져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구석말이라 하였다. 구석말은 양진말에 살던 초계정씨가 분가하여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조선시대 시흥군 서면 일직리에 속하였고, 1964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 일직2리에 속하였다.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속하였고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소하2동 10통이다....

  • 궁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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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던 자연마을. 궁말은 토지가 메마르고 천수답이 많아 주민들의 생활이 궁핍하여 붙인 이름이라는 설, 조선 후기 정조가 화성으로 능행을 갈 때 머물렀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전한다. 궁말은 조선 중기 소하동 영당말에 살던 전주이씨 익녕군 후손들이 분가하여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1964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 일직1리에 속하였다가 1981년 광명시 승격으...

  • 금뎅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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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하안1동에 있는 자연마을. 일제강점기에 마을 뒷산에서 일본인들이 금을 채굴할 때 큰 금덩어리가 나와 붙인 이름이라는 설, 마을 모퉁이에 머리 없는 돌부처가 있었고 돌부처 뒤쪽인 남양홍씨의 선현 묘 뒤쪽에 금당사란 절이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전한다. 일제강점기 초창기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절의 대웅전을 뜻하는 금당이란 지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 너부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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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광명5동에 있던 자연마을. 마을 일대가 넓은 들판이어서 너부대라 하였다. 보름이면 마을 들판에서 쥐불을 놓아 넓게 태웠는데 그 불꽃이 장관을 이루었다 하여 광화대(廣火大)라고도 하였다. 너부대는 황씨가 처음 정착하여 마을을 이룬 이래 광주안씨, 배천조씨, 신안주씨 등이 들어와 터를 잡았다. 가장 번창한 성씨는 광주안씨 감찰공파 후손들로 사방 40리가 광주안씨 땅이어서...

  • 노리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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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옛날에 산림이 울창해 노루가 많아서 노루실이라 하였다가 음의 변하여 노리실이 되었다는 설, 마을 주민들이 풍류를 좋아해 노래실이라 하였다가 이후 노리실로 변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인근 경기도 시흥시 논곡동 주민들이 옮겨 와 처음 마을을 이루었으므로 노온곡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마을 이름과 관련하여 『광명시지』 제1권에는 넓다는 뜻의...

  • 논사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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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자연마을. 예전 마을에 노온사(老溫寺)라는 절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노온사는 폐사되었는데, 절터 면적은 약 1,322.32~1,652.90㎡로 지금도 기왓장과 지대석 등이 출토된다. 논사리는 본래 지금의 위치에서 서남쪽으로 약 70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청군들의 방화로 마을이 모두 불에 타 지금의 위치에 새로 터를 잡았다....

  • 능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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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자연마을. 1646년(인조 24) 월당(月塘) 강석기(姜碩期)의 2녀이자 소현세자 빈인 민회빈 강씨가 사사(賜死)되자 친정인 기와집골[능말에서 동남쪽으로 약 800m 지점] 위에 장사 지냈다. 이후 민회빈 강씨는 1718년(숙종 44) 세자빈으로 복권되었고 묘는 민회원으로 승격하였다가 영회원(永懷園)으로 개칭되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민회빈...

  • 덕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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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자연마을. 성채산 정상에 있는 바위인 덕암(德岩) 아래에 있는 마을이어서 덕암이라 하였다가 후대에 덕안(德岸)으로 변하였다는 설, 성채산 위에 ‘덕암’이라고 새긴 바위가 있어 덕암이라 하였다가 나중에 덕안이 되었다는 설이 전한다. 일설에는 마을이 하천 변에 있음에도 큰 장마가 들어도 피해가 없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 데부뚝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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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자연마을. 데부뚝마을은 일본말로 제방을 뜻하는 ‘데이보’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일제강점기인 1933년 안양천에 제방을 쌓은 뒤 그 밑에 형성된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복 직전에는 약 7가구가 있었고 기아산업이 들어선 뒤 기아산업과 석수역을 잇는 다리가 개설되어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인구가 늘어났다. 여의도 등지에 살던 사람들이 도시 개발로 데부뚝...

  • 도고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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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이 독 안처럼 생겨 독안이라 하였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발음이 변하여 도구내가 되었다는 설, 서독산을 넘어 소하동으로 가는 고갯마루에서 발원한 작은 내의 이름인 도고내[道高川]에서 따 온 이름이라는 설이 전한다.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도 지도와 함께 도고내라는 하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오래전부터 도고내란...

  • 동창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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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자연마을. 분성김씨 김계욱이 처음 정착하여 선조인 김응수를 기리고자 사당인 영모재를 지은 뒤 후손들이 사당 아래에 마을을 이루어 살면서 동쪽에 창을 내고 선조를 우러렀다 하여 동창골[東窓谷]이라 하였다. 동창골은 조선 후기 분성김씨 11세손인 김계욱이 농사를 짓기 위해 경기도 김포군 양촌면에서 이주해 와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1914년...

  • 동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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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던 자연마을. 동향(東向) 마을이므로 동촌(東村)이라 하였다. 동촌에는 남원양씨가 처음 정착하였고 이후 전주최씨·안동권씨 등이 입향하여 세거해 왔다. 조선 말기 시흥군 서면 일직리에 속하였고, 1964년 시흥군 서면 일직2리에 속하였다.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광명시 일직동에 속하였고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소하2동 10통 2반이다. 일직동은 크게 자경리와...

  • 두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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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옥길동에 있는 자연마을. 시흥시 금이동과 서울특별시 오류동을 관통하는 길이 마을 중앙을 지나면서 길 양쪽에 민가가 들어서 취락이 형성된 뒤로, 뒤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뒤길이라 하였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두길(斗吉)로 바뀌었다. 두길은 철산부사를 지낸 하섭이 관직에서 물러나 부평말 중앙에 연못[일명 못배미]을 파고 살다가 후손이 분가하여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 뒷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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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공석골 뒤에 있는 마을이므로 뒷골이라 하였다. 달리 둔전현(屯田峴)이라고도 하였다. 뒷골은 공석골에 살던 창녕성씨가 번성하여 분가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조선시대에는 시흥군 서면 유등리에 속하였고, 1914년 시흥군 서면 가학리에 속하였다. 1964년 시흥군 서면 가학3리에 속하였고,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광명시 가학동에 속하였다. 행정상으...

  • 뚝방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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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철산1동에 있던 자연마을. 안양천 제방 밑에 있었으므로 뚝방마을이라 하였다. 뚝방마을은 6·25전쟁 직후 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1964년 시흥군 행정리 확장으로 뱀수·양수장마을과 함께 경기도 시흥군 서면 철산1리에 속하였고,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광명시 철산동에 속하였다.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철산1동에 속하였다. 뱀수 동쪽에 자리 잡았던 마을로...

  • 모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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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철산2동에 있던 자연마을. 마을에 연못이 세 개 있어 모세라 하였고, 마을이 연못 서쪽에 있으므로 연서(淵西)라고도 하였다. 여흥민씨(驪興閔氏) 집안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언젠가 승려가 마을을 지나다 우물을 세 개 파면 자손이 번성하리라는 예언에 따라 조성했다고 한다. 모세는 여흥민씨가 처음 정착한 이래 남양홍씨·순흥안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을 이루었으며...

  • 모텡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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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던 자연마을. 새터말[일직동]·호봉골·양진말·구석말을 가려면 거쳐 가야 하는 모퉁이에 있는 마을이므로 모텡이라 하였다. 모텡이는 조선시대 우의정을 지낸 이후원(李厚源)[1589~1660]의 묘를 서독산[일명 삼석산] 중턱에 쓴 뒤로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후손들이 묘 아래인 호봉골에 살다가 분가하여 정착하면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이후 남양홍씨, 상주이씨 등이...

  • 밤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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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하안1동에 있는 자연마을. 예부터 밤나무가 많아 밤일 또는 율일(栗日)이라 하였다. 충주평씨가 처음 정착한 이래 충주박씨·전주이씨가 들어와 살았는데 비교적 충주평씨가 많이 살았다. 조선시대에는 시흥군 서면 율일리였고, 1914년 시흥군 서면 하안리에 속하였다. 1964년 1월 1일 시흥군 행정리 확장으로 시흥군 서면 하안2리에 속하였고,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광...

  • 뱀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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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있던 자연마을. 장마철이면 뱀이 많이 나와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마을 뒷산 지세가 뱀의 형상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전한다. 또 ‘산속’이라는 뜻의 ‘받속’이 뱃속·배수를 거쳐 뱀수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남양홍씨·능성구씨·전주이씨 등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고, 그중 능성구씨와 전주이씨가 번성하였다. 1981년 7월 1일 법률 제34...

  • 벌동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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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자연마을. 허허벌판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벌동네라고 하였다. 1972년 경상북도 의성 출신 김창식이 농사를 짓기 위해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1964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 일직2리에 속하였고,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광명시 일직동에 속하였다.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소하2동 10통 5반에 속한다. 동쪽으로 안양시 석수3동 하수종말처리장, 서쪽으로...

  • 벌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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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하안2동에 있던 자연마을. 허허벌판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벌말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당시 시흥군 관아가 있던 상평리 아래에 있는 마을이어서 하평리라고 하였다. 현재 하안동의 ‘하(下)’자는 하평리에서 유래하였다. 벌말은 광산김씨·전주이씨·광주이씨·진주강씨·진주하씨·하동정씨·안동김씨·경주최씨·청주한씨·신안주씨 등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마을로 1914년...

  • 봉예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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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옥길동에 있는 자연마을. 풍수지리상 마을 지세가 봉황이 앉아 있는 형국이므로 봉예골이라 하였다고 여겨진다. 봉예골은 두길과 식골 사이에 있는 마을로 마을이 형성되기 이전에는 옥길교회가 있었고, 광복 후 김영성(金榮聲)이 농사를 짓기 위해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예전에는 큰 소나무가 많아 솔모루[松隅]라고도 불렀다. 1964년 부천군 행정리 확정으로 두길·부평말...

  • 부평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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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옥길동에 있는 자연마을. 조선시대 부평군(富平郡) 계양면(桂陽面)에 속했던 지역이므로 부평말 또는 부평동이라 하였다. 부평말은 1914년 부천군 소래면 옥길리에 속하였고, 1973년 시흥군 소래면 옥길리에 속하였다. 1983년 광명시 옥길동에 속하였고,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광명6동 12통 8반에 속한다. 1993년 발간한 『광명시지』에 따르면 13가구가 살았는데, 그...

  • 사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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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자연마을. 모래밭에 터를 잡은 마을이므로 사들이라 하였다. 현재 모래밭은 잘 가꾸어진 논밭으로 변하였다. 사들은 김해김씨 안경공파를 비롯하여 영일정씨·전주이씨·동래정씨 등이 비교적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곳으로 조선 말기 시흥군 남면 아방리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시흥군 서면 노온사리에 속하였다. 1964년 시흥군 서면 노온사4리...

  • 새터말[광명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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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광명동에 있던 자연마을. 광명동에서 가장 늦게 새로 형성된 마을이므로 새터말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 초에 광산김씨·남양홍씨·원주원씨 등이 정착해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이루었다. 조선 말기 시흥군 서면 광명리에 속하였고, 1964년 시흥군 서면 광명2리에 속하였다. 1981년 광명시 광명동에 속하였고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광명7동에 속한다. 일제강점기에는 17가구가 살...

  • 새터말[노온사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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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자연마을. 허허벌판에 새로 생긴 마을이므로 새터말이라 하였다. 새터말은 능말에 살던 강봉서(姜鳳瑞)[1665~1682]의 후손인 금천강씨들이 분가하여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지금도 금천강씨가 집성을 이루고 있다. 조선 말기 시흥군 남면 아방리에 속하였고, 1914년 시흥군 서면 노온사리에 속하였다.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광명시...

  • 새터말[일직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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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자연마을. 안동권씨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였다 하여 권촌말이라고 하였다가 여러 성씨가 들어오면서 새터말로 고쳐 불렀다. 마을이 형성되기 이전에는 대부분의 지역이 밤나무가 무성하던 곳으로 안동권씨가 정착하여 살면서 마을을 이루었다. 조선 말기 시흥군 서면 일직리에 속하였고, 1964년 시흥군 서면 일직2리에 속하였다.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광명시...

  • 설월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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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자연마을. 조선 중기의 명재상이었던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이 관직에서 물러나 영당말에 살면서 호미로 농사를 지었다고 하여 ‘호미 서(鋤)’자를 써서 서월리(鋤月里)라 하였다가 발음이 변하여 서러리라 하였다는 설, 이원익이 눈 오는 밤에 마을길을 걸으면서 사색에 잠기곤 했다 하여 설월리(雪月里)라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조선시대에 시흥군 서면의 관...

  • 솔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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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 뒤에 소나무가 많았으므로 솔안[松內]이라 하였다. 솔안은 1964년 시흥군 서면 가학1리에 속하였고,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광명시 가학동에 속하였다.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학온동 5통 4반에 속한다. 시흥광산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광부들이 거주하는 민가가 속속 들어서자 광산촌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시흥광산은 1903년 5월 2일 일본...

  • 쇠머리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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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있던 자연마을. 마을 지세가 소의 머리처럼 생겨 소머리라 하였는데 이후 쇠머리를 거쳐 쇠멀로 발음이 변하였고, 쇠멀의 쇠를 ‘쇠 철(鐵)’자로 보고 멀을 ‘뫼 산(山)’자의 고어[메, 말, 멀, 몰은 산의 고어]로 보아 한자로 철산(鐵山)이라 하였다는 설, 마을 지세가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어서 쇠머리라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지금은 개발되어 그 모양을 잃어...

  • 술청거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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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하안1동에 있는 자연마을. 밤일과 노온사동 등에 사는 주민들이 서울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 요충지여서 주막이 성행하였으므로 술청거리라 하였다. 마을 앞에 있는 안터저수지도 예전에는 술청거리제언[酒廳巨里堤堰]이라 하였다. 본래 안현에 속했던 마을로 1964년 시흥군 하안3리에 속하였고,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광명시 하안1동에 속하였다. 벌말과 안터 사이...

  • 식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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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옥길동에 있는 자연마을. 광명동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배부른 사람이 누워 있는 형상이고 만수산(萬壽山) 산봉우리가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므로 식골[食谷]이라 하였다. 예전에는 서북쪽에 이웃한 해방촌과 남쪽에 이웃한 시흥시 과림동 숯두루지마을[일명 탄평동(炭坪洞)]이 한 마을로 통칭되어 숯두루지마을 사람들은 식골을 큰말이라 하였다. 식골은 파주염씨·전주이씨·광...

  • 신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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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소하1동에 있는 자연마을. 농사를 짓기 위해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새로 형성된 마을이므로 신촌(新村) 또는 새말이라 하였다. 신촌 일대는 예전 주막이 서너 집 있었을 뿐 대부분이 뽕나무 밭과 논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후쿠다라는 일본인이 처음 집을 지었고, 그 뒤 하안동 밤일 출신 평기현(平基鉉)이 농사를 짓기 위해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64년 시흥군 서...

  • 아랫장절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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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자연마을. 아랫장절리는 장절리를 이루는 3개 마을 가운데 하나로 장절리에서 두 번째로 생긴 마을이다. 논곡로 입구 마을을 아랫장절리, 안쪽 마을을 웃장절리, 웃장절리 넘어 마을을 외넘어라고 한다. 장절리는 외넘어·웃장절리·아랫장절리가 동서 방향으로 길게 늘어서 있어 붙인 이름이라는 설, 예전 외넘어 동북쪽 200m 지점에 있던 장절사라는 절에서 유래하...

  • 안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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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하안1동에 있는 자연마을. 예부터 나라에 전란이 일어나도 마을이 안쪽에 있어 피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도둑이 없고 인심이 좋아 살기에 편한 마을이므로 붙인 이름이라는 설, 삼태기처럼 오목한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전한다. 안터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1506년(중종 1)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올라 운수군(雲水君)에 봉...

  • 안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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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하안1동에 있던 자연마을. 마을 지세가 말안장인 길마 형국이어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안고개 또는 속고개라고 부르다가 안재를 거쳐 안현이 되었다는 설이 전한다. 전주이씨·진주강씨·평산신씨·경주최씨 등이 정착하여 세거한 마을로 1964년 시흥군 행정리 확장으로 시흥군 서면 하안3리에 속하였고,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광명시 하안동에 속하였다.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하...

  • 양수장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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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철산1동에 있던 자연마을. 양수장(揚水場)이 있던 곳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므로 양수장마을이라 하였다. 달리 삼각주마을이라고도 한다. 양수장마을은 철산동 주민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설치한 양수장이 1950년대 말경에 폐지되면서 주택지로 변모하여 형성된 마을로, 남부순환로 아래에 있다. 1964년 시흥군 행정리 확장으로 뱀수·뚝방마을과 함께 시흥군 서면 철산1리로 개편되었...

  • 양진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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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자연마을. 새터말[일직동]과 구석말 사이에 자리 잡은 남향 마을이므로 양진말[陽地使]이라 하였다. 예전에는 구석말·동촌·모텡이·새터말·호봉골을 통칭해서 양진말이라 하였다. 초계정씨·안동권씨·전주이씨·청송심씨 등이 오랫동안 세거해 온 마을로 조선 말기 시흥군 서면 일직리에 속하였고, 1964년 시흥군 서면 일직2리에 속하였다. 1981년 시제 실시로 광명...

  • 영당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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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자연마을. 조선시대 선조·광해군·인조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영정(影幀)을 모신 사당이 있어서 영당말[影堂洞]이라 하였다. 광복 직후까지 전주이씨 익녕군파만 살아 인근에서는 이씨촌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영당말은 조선 전기 태종의 손자 익녕군의 부인인 평양조씨의 묘를 마을 뒤[소하동 산137번지]에...

  • 외넘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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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자연마을. 외넘어는 장절리를 이루는 3개 마을 가운데 하나로 장절리에서 맨 나중에 생긴 마을이다. 논곡로 입구 마을을 아랫장절리, 안쪽 마을을 웃장절리, 웃장절리 넘어 마을을 외넘어라고 한다. 웃장절리 넘어 외딴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외넘어는 웃장절리에 살던 무송윤씨 윤백붕의 후손들이 분가하여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

  • 웃장절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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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자연마을. 웃장절리는 장절리를 이루는 3개 마을 가운데 하나로 장절리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다. 논곡로 입구 마을을 아랫장절리, 안쪽 마을을 웃장절리, 웃장절리 넘어 마을을 외넘어라고 한다. 장절리는 외넘어·웃장절리·아랫장절리가 동서 방향으로 길게 늘어서 있어 붙인 이름이라는 설, 예전 외넘어 동북쪽 200m 지점에 있던 장절사라는 절에서 유래하였...

  • 원광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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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광명동에 있는 자연마을. 원광명은 광명시의 뿌리가 되는 마을이자 광명7동의 중심 마을로 광명동에서 맨 처음 생긴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괭매라고도 하는데 지세가 풍수지리상 등잔을 얹어 놓는 기구인 광명두와 비슷해 불을 밝힌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마을 주산인 도덕산이 광명두의 머리에 해당하고, 웃말과 아랫말 사이에 있는 진주강씨의 선현 묘가 있는 새평승이...

  • 자경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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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자연마을. 자경리(自京里)는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조선시대 서울의 경계로 이제부터 서울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자경리는 옛 시흥군 영역이었고, 당시 시흥군과 서울의 경계 지역은 서울 한강이 되므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광산김씨 대종중 정묘보[1747]와 병자보[1876]에는 성채산이 공경 받는 선비인 김원록(金元禄)...

  • 작은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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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자연마을. 큰말이라 불리는 설월리에 비해 마을 규모가 작아서 작은말이라 하였다. 작은말은 영당말에 살던 전주이씨 익녕군파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이루어진 마을로 조선 말기 시흥군 서면 소하리에 속하였다. 1964년 시흥군 서면 소하4리에 속하였고, 1981년 시제 실시로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속하였다.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소하2동 5통이다. 시제가 실시...

  • 장터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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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광명시에서 가장 먼저 장(場)이 열린 마을이어서 장터말이라 하였다. 장터말은 파주염씨가 처음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이룬 마을로, 조선 말기에는 시흥군 남면 장기리였고, 1914년 시흥군 서면 가학리에 속하였다. 1964년 시흥군 서면 가학5리에 속하였고, 1981년 시제 실시로 광명시 가학동에 속하였다.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학온동 9통...

  • 한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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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던 자연마을. 한천(寒川) 변에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한내라 하였다. 한천은 여름에도 발이 시릴 만큼 물이 차가워 붙인 이름이다. 한내는 소하동 신촌과 하안동 벌말 사이에 걸쳐 있던 마을로 송씨·박씨·노씨·황씨·방씨 등 6가구가 살았다. 방씨가 살던 곳만 소하동에 속했고 나머지 5가구가 살던 곳은 하안동에 속하였는데 1980년대 말 택지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 해방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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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옥길동에 있는 자연마을. 해방 직후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이루었으므로 해방촌(解放村)이라 하였다. 해방촌은 해방 직후 정씨·노씨·김씨 세 사람이 초가를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이루었고, 1953년 마을 앞에 경기화학[지금의 (주)KG케미컬]이 설립되면서 민가가 늘기 시작하였다. 1964년 부천군 행정리 확장으로 식골과 함께 부천군 소래면 옥길3리에...

  • 호봉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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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자연마을. 삼석산 중턱이 호랑이가 누워 있고 새가 날개를 편 형국인 호봉혈(虎鳳穴)이므로 호봉골이라 하였다. 호봉골은 효종 대에 우의정을 지낸 이후원(李厚源)[1598~1660]의 묘를 삼석산 중턱에 쓴 뒤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후손들이 묘 아래에 세거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조선 말기에는 시흥군 서면 일직리에 속하였고, 1964년 시흥군 서면 일직2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