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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양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486
한자 南原梁氏
영어의미역 Namwon Ya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광명시
집필자 권만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집성촌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성씨시조 양탕

[정의]

양탕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연원]

남원양씨(南原梁氏)는 제주양씨에서 분적한 성씨로, 제주양씨는 제주도 탐라국을 세웠다고 알려진 양을나(良乙那)의 후손인 양탕(梁宕)이 광순사(廣巡使)로 신라에 들어오자 559년(진흥왕 20) 진흥왕이 벼슬을 내리고 양(良)을 양(梁)으로 고치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 575년(경덕왕 16) 양우량(梁友諒)이 신라 왕실에 공을 세워 남원부백(南原府伯)에 봉해진 뒤 후손들이 남원양씨로 분적하였다.

남원양씨는 후대에 병부공파(兵部公派)와 용성군파(龍城君派)로 나누어졌는데, 병부공파가 약 80%를 차지한다. 문중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려시대에 진현관대제학을 지낸 양견(梁堅), 조선 초기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켜 동국의 백이·숙제라 불리는 양우(梁祐), 세종 대를 거쳐 세조 대에 이조판서·사헌부대사헌·홍문관대제학·지중추부사를 지낸 양성지(梁誠之), 중종 대에 병조판서·이조판서·판중추부사를 지낸 양연(梁淵), 고종 대에 공조판서를 지낸 양헌수(梁憲洙), 일제강점기 광복군사령부 교육위원장을 지낸 양기하(梁基瑕) 등이 있다.

[현황]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1985년 11월 당시 광명시에 거주한 남원양씨는 총 294가구에 1,162명, 2000년에는 497가구에 1,695명이었다. 현재 남원양씨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세거해 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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