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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광명문화대전 > 광명향토문화백과 > 삶의 내력(역사) > 근현대 > 근대

  • 러일전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04년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농민 항쟁의 한 원인이 된 일본과 러시아간의 전쟁. 러일전쟁은 1904년 일본과 러시아가 한반도와 만주의 지배권을 놓고 벌인 싸움으로서, 2차 시흥농민봉기의 한 원인이 된 전쟁이다. 이를 노일전쟁, 일로전쟁, 일아전쟁 등이라고도 한다. 전쟁을 위한 병참 기지의 준비 과정에서 일본은 대한제국 정부를 위협하여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고 극히 낮은 임금만을...

  • 경부철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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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제국기에 부설된 경기도 광명 지역을 거쳐 서울과 부산을 연결한 철도. 경부철도는 서울과 부산을 이어주는 총길이 444.5㎞의 복선 철도이다. 이를 경부선이라고도 한다. 1880년 중반부터 경부철도 건설을 위한 지형 탐사를 시작한 일제는 1896년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고종은 1896년 두 차례나 경부철도부설 청원서를 거부했지만, 힘에 밀려 1898년 9월 8일 정부가 일...

  • 1차 시흥농민봉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898년 광명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봉기. 19세기 순조, 헌종, 철종으로 이어지는 60여 년간은 세도 정치의 폐해 및 봉건적인 지주 전호제의 모순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것이 삼정[전정, 군정, 환정]의 문란으로 이어지면서 농민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경기도 시흥군[지금의 광명시]에서는 전임 군수 문봉오(文鳳梧)의 탐학과 수탈 및 향리들의 불법 행위, 침탈 등으로 인해...

  • 2차 시흥농민봉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04년 광명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봉기. 1904년(고종 41) 러일전쟁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그해 1월 조선 정부는 국외 중립을 선언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은 강제적으로 한일의정서를 채택, 한-러 간에 맺은 모든 조약을 폐기시키는 한편 전쟁 수행을 위한 철도를 착공하고 통신망을 강점하였다. 이러한 상황 아래 1904년 9월 일본은 병참 기지와 철도 건설을...

  • 명사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관찰사가 시흥농민봉기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경기도 광명 지역에 파견한 관리. 명사관은 조선시대 당시 지방에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면 도의 감사가 사건 내용의 진상 조사를 위하여 파견하는 관리이다. 19세기 후반 조선 사회의 농촌은 토지가 소수 부호에게 독점되고, 대다수의 농민이 토지에서 배제된 상황이었다. 즉 많은 수의 농민이 소작농의 처지에 있었고, 농업 이외의 다른 수...

  • 몽리면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근대 개항기 경기도 광명 지역에 있는 관개 시설에서 물을 공급받는 땅의 면적. 몽리면적은 보, 저수지 등의 수리 시설에서 물을 공급받는 토지의 크기를 말한다. 관리의 탐학이 주로 이 땅을 놓고 벌어졌는데, 이것이 제1차 시흥농민봉기의 원인이 되었다. 성우경(成禹慶) 등 현재의 광명 지역 출신 인사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던 사건으로, 전임 군수 문봉오의 가혹한 수탈과 교활한 아전의...

  • 사발통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기도 광명 지역의 봉기에서 사발을 엎어서 그린 원을 중심으로 참가자의 이름을 돌려가며 적은 통문. 통문(通文)이란 어떤 일이 있을 때 사람을 모으기 위하여 알리는 고지문(告知文)을 말한다. 특히 19세기 후반 농민항쟁이 거세지면서 관에 항의하고자 각 마을마다 통문을 돌려 사람을 모았으며, 서원과 향교에서도 사람을 불러 모을 때 이를 돌렸다. 사발통문이란 호소문이나 격문 등을 쓸...

  • 순교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근대 개항기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벌어진 1, 2차 시흥농민봉기의 수사를 맡았던 기관. 순교청은 1894년 갑오개혁기에 각 지방 관아에 설치된 기관으로 범죄의 단속과 수사 등 지금의 경찰 업무를 수행하였다. 순교청에는 경찰관에 해당하는 하급 경리(警吏)인 순교가 소속되어 있었다. 순교청은 1898년 8월 23일에 일어난 1차 시흥농민봉기와 1904년 9월 14일에 일어난 2차 시흥...

  • 유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근대 개항기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농민 봉기를 주도한, 벼슬하지 않은 유생(儒生). 유학(幼學)은 조선시대에 벼슬을 하지 않은 양반의 자손이나 사족(士族)의 신분을 표시하는 말이다. 이들 유학은 유교를 신봉하고 유교 도덕을 실천하는 사람이며, 생업에 종사하는 일없이 책만 읽는 독서인이자 한문을 자유로이 구사하는 지식인 계급이었다. 또한 성균관이나 향교에서 실시하는 석전(釋奠) 등에...

  • 읍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경기도 광명 지역의 향리들이 모여 고을의 사무를 처리하던 통치 기구. 읍사(邑司)는 지방 향리 조직의 기반이 되는 수령의 하부 행정 체계로서 제1차 시흥농민봉기 때 광명 지역에 있던 농민의 집합 장소로 사용된 관청이다. 읍사는 군현 단위로 설치된 곳들의 총칭이며, 실제로는 해당 군현의 격에 따라 주사(州司)·부사(府司)·군사(郡司)·현사(縣司)·진사(鎭司) 등으로 불렸다....

  • 진휼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기 위하여 나라에서 지급한 돈. 진휼금은 흉년이나 재난을 당한 농민에게 최소한의 생산과 재생산이 가능하도록 국가가 주는 돈이다. 국가 경제의 중심이 농업에 있었던 조선시대에는 흉년과 기근 등으로 국가의 통치 기반이 동요하지 않도록 진휼청을 설치하고 진휼 정책을 실시해왔다. 이러한 진휼 방법은 초기에는 일반적으로 환곡 제도를 이용하...

  • 집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근대 개항기 광명 지역 자치조직의 우두머리. 조선시대에는 중앙에서 지방관을 파견하는 지방 행정 단위는 현(縣)까지였고, 그 아래로는 지방의 자치 조직으로 면·방·사, 그 밑에 이(里)·촌(村)·동(洞)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면(面), 방(坊), 사(社)의 우두머리가 집강(執綱)이다. 지금의 면장이나 읍장에 해당된다. 이들은 향소의 좌수나 별감의 천거에 의해 수령이 임명하여 행정...

  • 향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시대 광명 지역에 거주하는 사족(士族)이 중심이 되어 운영한 지방 자치 회의기구. 향회(鄕會)는 조선시대 사족의 향촌 지배 기구로서 제1차 시흥농민봉기 때 광명 지역의 농민이 모여 봉기를 일으키게 된 빌미가 된 지역 모임이다. 향회에서 ‘향(鄕)’은 1개의 관읍을 상징한다. 따라서 향회는 군현(郡縣) 단위에서 공론을 수렴하는 회의체이다. 향회는 조선 전기부터 군현 단위에서 시행...

  • 한일의정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04년 제2차 시흥농민봉기의 간접적 원인이 된, 한일간 체결한 외교 문서. 한일의정서는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조선의 식민지 지배에 배타적 우위를 확보한 일제가 러일전쟁 중인 1904년 2월에 무력으로 조선에 강요한 협약서이다. 이를 ‘대조선대일본양국맹약’이라고도 한다. 한일의정서로 일제는 조선에 대한 정치적·군사적 간섭을 합법화하였으며, 그 결과 광명 지역의 토지...

  • 광명농지차작소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01년 광명 지역에서 발생한 차작지 관련 소송사건. 근대 전환기 관속들의 탐학과 부패라는 사회적 문제와 농민 토지의 경작이 연결된 사건이다. 원고 신석준은 자신이 5~6년간 경작하던 경기도 시흥군 서면[지금의 광명시] 소재 친군영의 둔답을 장덕환이 빼앗으려 하자 경작권을 지키기 위한 소송을 내장원(內藏院)에 제기하였다. 1901년(고종 38) 3월의 소장에 따르면 원고 신석준은...

  • 일제강점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경기도 광명 지역의 역사.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동안 광명 지역은 시흥군 서면과 남면으로 편제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를 겪지 않으면서 현 광명시의 전신으로서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광명 지역에서도 일제의 가혹한 수탈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서 항일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으며, 3·...

  • 항일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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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독립 운동. 1910년 일제의 강제에 의하여 조선은 식민지가 되었고, 1945년 광복까지 끊임없는 항일운동이 전 민족적으로 펼쳐졌다. 광명지역에서도 항일운동은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주로 3·1운동과 야학 운동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독립에 대한 열망은 광명 지역에서도 대단히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27일, 소하리에 거주하는 이...

  • 독립운동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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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민족 독립을 위해 경기도 광명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운동가들. 대한제국기와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1945년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광명 지역에서는 독립 운동과 항일 운동이 부단하게 전개되었다. 광명지역에서는 여러 명의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하였다. 1866년 시흥군 서면 철두리에서 태어난 장원겸(張元謙)은 충청남도 직산군 일대에서 길찬범(吉贊範) 의병...

  • 제령 제정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이 장악하고 있던 법령 제정권.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대한제국은 일본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통치를 받게 되었다. 헌병 경찰 제도로 요약되는 일제의 악랄한 통치 방식은 세계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와 함께 일제는 조선인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막고 한반도를 일본 본토에 종속시키고자 조선 총독에게 거의 무한대의 권력을 부여하였다. 한반도가 일...

  • 조선 하천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하천 이용과 관련하여 광명 지역에 내린 조치. 조선하천령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의 어업 및 하천 이용에 관해 내린 규제 명령으로, 하천을 국토 경영의 일환으로 철저히 관리하려는 목적에서 시행되었다. 조선하천령을 통해 하천이 국유로 규정되었으며, 하천변과 둑 등 하천 구역에 대해서도 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폐천(廢川) 처분의 규정이 없어 폐천...

  • 광명 임야조사사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경기도 광명 지역에 실시한 대규모 임야조사사업. 임야조사사업은 일제가 한반도 내에서 식민지 경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일환으로 전국 임야의 소유권을 재확정하고자 추진한 사업으로, 1916년 시험적인 준비 조사를 거쳐 1917년부터 1924년까지 조사와 측량 등을 마쳤다. 이에 부수하는 심의 처리 등의 사무는 조선총독부 임야조사위원회 주관으로 1919년에 개...

  • 토지조사사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11년 일제가 한국의 토지 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실시한 경제 정책. 일제는 1910년 9월 오키나와와 대만에서 토지를 조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해 9월 30일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관제(朝鮮總督府 臨時土地調査局官制)」를 공포하고 1912년 8월에는 「토지 조사령」을 공포하였다. 일제는 전 근대적인 소유 관계 아래에 놓여 있는 토지 소유 관계를 근...

  • 광명 토지조사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12년 조선총독부에서 토지조사사업을 마친 후에 만든 광명 지역의 토지조사부.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에서는 1910년 3월 15일 칙령 제23호에 따라 1910년 8월 24일 법률 제7호로 「토지 조사법」을 공포했다. 이후 1912년 8월 13일 조선총독부제령 제2호로 「토지 조사령」을 공포하면서 토지조사사업이 시작되었고, 위 법령에 의거하여 전국적으로 ‘토지조사부’가 만들어졌다....

  • 광명분배농지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49년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실시된 농지 개혁 관련 문서. 농지 개혁은 정부 수립 이전인 1948년 3월 중앙토지행정처가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후 정부가 수립되고 헌법이 제정되면서 정책화되었다. 1949년 6월 21일 법률 제31호로 「농지개혁법」이 발효된 후, 1950년 3월 25일 시행령에 이어 농지 시행 규칙이 1950년 4월 28일 제정·공포되었다. 「소하읍 분배농...

  • 시흥청년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광명 지역을 포함한 시흥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 운동단체. 3·1운동 이후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이 소위 문화 정치로 바뀌면서 외형적으로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전국적으로 많은 단체들이 결성되어 활발하게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 경기도에서도 3·1운동 이후 1920년대 말까지 178개의 청년 단체가 20개 군에서 결성되었다. 이 가운데 시흥 지역에서는 1...

  • 광명 소하리 야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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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전개된 교육계몽운동. 야학 운동은 일제하에서 거의 전 계층의 지지와 참여가 있었던 대중 운동으로서,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특히 활발하게 전개된 청년 운동과 농촌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야학 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현 광명시 소하동에서는 문맹 퇴치 운동 차원에서 노동 운동 및 야학...

  • 가학리 광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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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던 광산. 광명 지역에는 일찍이 조선시대부터 은을 채광하던 광산이 있었다. 주로 공물(貢物)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이어 대한제국 시기에도 광명 가학리에서 구리를 채광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가학리 지역의 광산에서 꽤 오랜 시기에 걸쳐 채광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식민지 경제의 주요 특징인 자원 수탈의 일환으로 조선...

  • 서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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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금천현·시흥현·시흥군에 있던 행정구역. 서면은 현재의 경기도 광명시 전역에 해당하던 지역이다. 1914년 남면과 통합하기 이전에는 경기도 광명시의 법정동인 철산동·소하동·하안동·일직동 지역에 해당하고, 남면과 통합한 이후에는 경기도 광명시의 법정동인 광명동·가학동·노온사동을 포함한 지역이다. 조선시대에 금천현(衿川縣) 서쪽에 있었으므로 서면이라고 하였다. 서면은 고려시대 금...

  • 서면사무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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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4년부터 1979년 이전까지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지역에 있던 면사무소. 현 광명시 소하2동은 1979년 이전까지 경기도 시흥군 서면이라는 행정 구역이었는데, 서면사무소는 서면 지역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 기관이었다. 서면사무소가 생기면서 이 지역에는 취락이 발달하였고,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1927년에는 근대적인 의미에서 광명시의 첫 교육 기관인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