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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503
한자 驪興閔氏
영어의미역 Yeoheung Mi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광명시
집필자 권만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집성촌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성씨시조 민칭도
입향시조 민해

[정의]

민칭도를 시조로 하고 민해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연원]

여흥민씨(驪興閔氏)는 고려시대 상의봉어(尙衣奉御)를 지낸 민칭도(閔稱道)를 시조로 한다. 민칭도는 공자의 제자인 민손(閔損)의 후손으로 고려 중기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여흥에 정착하였다. 고려 말기부터 명문의 지위를 굳혀 온 여흥민씨는 크게 3차에 걸쳐 가문의 위세를 떨쳤다.

1차 시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기간이다. 민칭도의 증손 민영모(閔令謨)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을 거쳐 명종 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태자태사(太子太師)를 지냈다. 민영모의 아들 민식(閔湜)민공규(閔公珪)는 각각 형부상서와 판병부사(判兵部事)를 지내면서 가세를 크게 일으켰다. 민식의 증손 민지(閔漬)원종 때 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첨의정승을 지냈고, 1321년(충숙왕 8년) 여흥군(驪興君)에 봉해졌다. 문장에도 뛰어나 『세대편년절요(世代編年節要)』와 『본국편년강목(本國編年綱目)』을 저술했으나 모두 전하지 않는다.

2차 시기는 숙종 대에서 영조 대에 걸친 기간이다. 인현왕후의 동생인 민진원(閔鎭遠)은 1691년(숙종 17) 문과에 급제한 뒤 영조 대까지 병조정랑·사복시정(司僕寺正)·전라관찰사·우의정·좌의정·판중추부사를 지냈다. 노론의 영수로 활약하였고 『숙종실록(肅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후 봉조하(奉朝賀)가 되었으며 문장과 글씨로도 이름을 떨쳤다.

3차 시기는 구한말 고종 연간이다. 민치록(閔致祿)은 딸이 고종의 비가 되자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에 봉해졌고, 민치록의 딸 명성황후흥선대원군과 대립하면서 고종의 친정(親政)을 실현하였다. 민겸호(閔謙鎬)는 판돈령부사를 지낸 뒤 정치 제도 개혁을 주도하였고, 선혜청 당상관에 올라 영의정 민규호(閔奎鎬)와 함께 가문을 크게 일으켰다. 민겸호의 아들 민영환(閔泳煥)은 승정원동부승지·성균관대사성·예조판서·형조판서·병조판서·한성부판윤 등을 지냈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자결하였다.

[입향경위]

절위상호군(折衛上護軍)을 지낸 13세손 민해(閔解)가 광명시 철산동 모세[일명 연서(淵西)]에 정착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14세손 민사건(閔師騫)은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교리·충청감사·승정원동부승지·공조참의·충청감찰사겸병마수군절도사를 지냈으며, 감사공파(監司公派)의 파조가 되었다. 15세손 민념(閔恬)은 곡산군수를 지냈고, 18세손 민익원(閔翼元)은 생원을 지냈으며 사후에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22세손 민진태는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민병욱은 시흥농민봉기 때 성우경과 함께 독립 운동을 하였고, 민진식은 광명시와 시흥시에서 오랜 공직 생활을 하며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였다.

[현황]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1985년 11월 당시 경기도 광명시에 거주한 여흥민씨는 총 236가구에 854명이었다. 광명시 철산동 모세는 한때 민씨촌으로 불릴 정도로 번성하였고, 현충탑공원 자리에 여흥민씨의 선산이 있었다.

이용자 의견
관리자 디지털광명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흥은 여주의 옛 명칭으로 1469년 개칭되었으며, 여흥 민씨가 광명시 철산동에 정착하여 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광명 세거성씨가 된 것이므로 여흥이 광명시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2013.06.17
민진홍 여흥은 여주군의 옛 명칭인줄로 아는데요 2013.06.15
관리자 디지털광명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3.04.23
최영수 어머니 본관이 원경왕후, 인현왕후, 명성왕후와 같은 '여흥 민씨' 라 '여흥'이라는 곳이 북한인줄 알았는데 네이버로 검색해보니 경기도 광명시였네요~ 2013.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