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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487
한자 安東權氏
영어의미역 Andong Gwo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광명시
집필자 권만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집성촌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성씨시조 권행

[정의]

권행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연원]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시조 권행(權行)은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본명은 김행(金行)인데, 고려 태조와 함께 후백제군을 격파하고 고려 창업에 큰 공을 세운 공로로 태사(太師) 직위에 오르면서 권씨 성을 하사받고 안동을 식읍으로 받았다. 이에 후손들이 안동을 본관으로 삼았으며, 14세손을 전후하여 크게 14파로 나누어졌다. 고려시대 추밀원부사공파(樞密院副使公派) 권수평(權守平)은 청빈한 관리의 표상이 되었고, 권수평의 손자 권부(權溥)와 권부의 아들 5형제, 사위 3명은 모두 군(君)에 봉해져 당대 9봉군(當代九封君)이라는 명성을 떨쳤다. 권한(權漢)은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한 뒤 원나라 만권당(萬卷堂)에서 문명을 떨쳤다.

조선시대에 들어 안동권씨는 크게 번성하여 사시(四始)가 안동권씨에서 비롯되었을 만큼 명성을 떨쳤다. 사시는 첫째, 조선의 첫 문형(文衡), 즉 대제학(大提學) 권근(權近)을 배출했다는 것[典文衡之始], 둘째 정이품 이상을 지낸 국가 원로의 교유 단체인 기영회(耆英會)를 처음 설립했다는 것[耆英會之始], 셋째, 1476년(성종 7) 최초의 족보인 『성화보(成化譜)』를 만들었다는 것[族譜之始], 넷째, 호당(湖堂)에 처음 뽑혔다는 것[湖堂之始]을 말한다.

태종 때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권근은 안동권씨 제1의 석학으로 문장에 뛰어났고 경학에도 능통으며, 왕명으로 『동국사략(東國史略)』을 편찬했다. 권근의 둘째 아들 권제(權踶)는 세종 때 정인지(鄭麟趾) 등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었고, 권절(權節)은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생을 마쳤다. 권찬(權攢)은 세조 때 공조판서에 올랐고 의술이 뛰어나 의서 『의방유취(醫方類聚)』를 저술하였다. 권벌(權橃)은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 때 공을 세워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올랐으나 정순명(鄭順明)의 반대로 삭훈되고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난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권율(權慄)은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을 진두지휘한 명장으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과 비견되는 인물이다.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에 봉해졌다. 오성부원군 이항복(李恒福)이 권율의 사위이다. 권응주(權應株)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나서 예천·문경·학연 등지의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경상도병마절도사겸방어사를 지냈다. 권순장(權順長)은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강화도에서 처절한 전투 끝에 성이 함락되자 좌의정 김상용(金尙容)과 함께 자결하였다.

권용정(權用正)은 조선 후기 안동권씨를 대표하는 화가로 경건한 화법과 청려한 기풍의 산수화를 즐겨 그렸다. 권상연(權尙然)은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이며, 권철신(權哲身)·권득인(權得仁)도 순교했다.

일제강점기에 권종해(權鍾海)는 1906년 강화도에서 이중희 등과 함께 의병을 규합하여 활동하였고, 1908년 강원도 정선에서 800여 명의 일본군을 사살하였다. 그 후 만주로 망명하여 의군부(義軍府) 유격장으로 활동했다. 권덕근(權德根)은 3·1운동에 참여하였고,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단에 들어가 항일 투쟁을 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혹독한 악형과 고문을 받던 중 스스로 혀를 잘라 일경을 놀라게 했다.

권기일(權奇鎰)은 한족회(韓族會) 총무로 활동하다가 봉천(奉天)에서 일경에게 살해되었다. 권준(權晙)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내무부차장과 광복군 제 5지대장 등을 지냈고, 광복 후에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기여했으며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권동진(權東鎭)과 권병덕(權秉悳)은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한 인물로 청주 삼일공원에 두 사람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광복 후에 안동권씨는 네 명의 대학 총장과 장관을 각각 배출하는 등 정계와 학계, 재계에서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권상로(權相老)는 초대 동국대학교 총장을 지냈으며 『팔만대장경』을 번역했고 『한국지명연혁고(韓國地名沿革考)』를 저술하였다. 권중휘(權重輝)는 셰익스피어 명 강의로 유명하였고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냈으며, 한국 최초로 『영한사전(英韓辭典)』을 펴냈다. 권이혁(權彛赫)은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냈고 공중보건학 부문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현황]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1985년 11월 당시 광명시에 거주한 안동권씨는 총 733가구에 2,752명, 2000년에는 1,246가구에 4,276명이었다. 현재 안동권씨광명시 일직동 동촌양진말에 세거해 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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