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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광명문화대전 > 광명의 마을 이야기 > 철산동 > 위성 도시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 시로 승격되고도 여전히

  • 잊을 만하면 찾아오던 수해 그리고 극복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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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산리가 속해 있는 광명시청이 개청 이후 가장 먼저 맞은 지역 문제는 홍수였다. 1981년 7월 2일 새벽, 광명시민들이 광명시청 개청으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곤히 잠들어 있던 시각, 수도권 일대에 내린 집중 호우로 213가구가 침수되고 833명이 인근 학교로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당시 철산리를 포함한 광명 지역은 안양천이 동쪽으로 흐르고 시 북쪽 끝에서는 부천 지역에서...

  • 광명 속의 서울특별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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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디지털산업단지[구로공단]에 직장을 마련한 지현 씨는 가까운 지역에 방을 얻으려고 알아보았다. 하지만 지현 씨가 받는 월급에 비해 주거와 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고민이 많았다. 경기도 쪽은 좀 나을까 싶어 광명시 쪽을 검색하던 중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시립미혼여성임대아파트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서울특별시립근로청소년복지관의 부속 시설인 서울시립미혼여성임대아파...

  • 버스가 없어서 구로공단까지 걸어 갔었지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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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후반까지도 광명 시민이라면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들어오다가 시외 지역 요금 할증 문제로 택시 기사와 말다툼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광명시는 안양천·목감천이라는 작은 하천을 사이에 두고 행정 구역이 서울에서 경기도로 바뀐다. 그러나 서울 지역과 거의 같은 기간 시설을 이용하고 살아 왔기 때문에 평소에도 광명이 경기도 지역이란 점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대...

  • 도시화의 뒤편, 철산4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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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제천이 고향인 정운하[1959년생] 씨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70년에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서울로 올라와 철산리, 지금의 광명시청 건너편 철산주유소 자리에 정착했다. 당시 그곳에는 정운하 씨 집을 비롯해 20여 가구가 무허가 땅에 벽돌로 집을 짓고 옹기종기 붙어살았다. 정운하 씨 아버지는 광명사거리에서 동그마니[곡식을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서 만든 넓고 납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