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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속의 서울특별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C020102
지역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민성혜

[서울시립미혼여성임대아파트에 사는 지현 씨]

서울디지털산업단지[구로공단]에 직장을 마련한 지현 씨는 가까운 지역에 방을 얻으려고 알아보았다. 하지만 지현 씨가 받는 월급에 비해 주거와 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고민이 많았다. 경기도 쪽은 좀 나을까 싶어 광명시 쪽을 검색하던 중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시립미혼여성임대아파트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서울특별시립근로청소년복지관의 부속 시설인 서울시립미혼여성임대아파트는 서울에 직장을 가진 만 26세 미만의 미혼 여성만이 입주할 수 있는 주거 시설이다.

경기도인 광명시에서 왜 서울에 직장이 있는 여성만 입주시키는지 의아하긴 했지만, 월 2만 2000원에서 4만 8000원 정도의 임대료 조건을 보고는 이것저것 따질 겨를도 없이 입주 서류를 제출했다. 아파트 생활 안내서가 9쪽에 이를 정도로, 입주 후의 생활은 기숙사 생활 이상으로 까다로웠다. 귀가 시간이 통제되고 어머니와 여자 형제 이외의 외부인은 아파트 안에서 머무를 수 없으며, 자치회 활동까지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등 엄격하다. 내심 자유로운 생활을 기대했던 지현 씨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물가가 비싼 서울 수도권에서 생활하기 위해선 기타의 까다로운 조건은 감수하기로 결정하였다.

9개 동 450세대로 이루어진 서울시립미혼여성임대아파트는 A형·B형으로 나뉘어 다인실과 1인실로 구별되는데, 첫 입소자인 지현 씨에게는 다인실이 배정되었다. 함께 지내게 될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니 모두 근방에 직장을 마련하고 생활비를 아껴 꿈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또래들이었다. 지현 씨는 의무이기도 하지만, 공동생활을 위한 자치회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자치회 활동을 통해 낯선 타지 생활, 쉽지 않은 직장 생활에 대한 애환을 나누며 가까워지게 되니 함께 사는 불편함보다는 서로 의지가 되었다.

지현 씨는 룸메이트와 옆 건물인 근로청소년복지관에서 복지관의 미용실이나 운동 시설, 컴퓨터실 등을 이용하는데, 복지관 프로그램 안내서를 살펴보니 저녁 시간과 토요일을 이용해 취미와 건강, 자격증 프로그램을 수강할 수 있어 1석2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현 씨는 상담실에서 실시하는 성격과 적성 검사를 받은 후 자신에게 맞는 요리자격증 반을 신청하고, 건강을 위해 요가도 수강하기로 했다.

철저한 금남의 집인 아파트에서는 매년 5월이면 오픈하우스 행사를 열어 축제 기간 동안 아파트를 공개하는 전통이 있다. 지현 씨는 서울로 딸을 보내 놓고 걱정하실 부모님께 씩씩하게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 드리기 위해 야무진 다짐을 하는 한편, 5월 전에는 멋진 남자 친구를 만나 오픈하우스에 초대할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 글은 서울특별시립근로청소년복지관 아파트 생활 안내서와 복지관 프로그램 자료집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구로공단 배후 도시로 탄생한 철산동 들여다보기]

철산역에서 하안동 방향으로 지나가다 보면 분홍색 철제 담장으로 둘러싸인 미혼여성임대아파트와 서울특별시립근로청소년복지관, 인조 잔디 구장을 볼 수 있다. 무심코 지나는 이 시설은 알고 보면 서울특별시가 운영하는 ‘광명 속의 서울’이다.

행정 구역으로는 하안동이지만, 철산동이 형성되던 시기에 함께 설립된 서울특별시립근로청소년복지관과서울시립 미혼여성임대아파트[구 복지아파트]가 설립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구로공단의 배후 도시로 형성된 철산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1960년대 작은 농촌 마을이던 철산리안양천 건너편 구로동에서는 수출 중심의 산업을 키우기 위해 공업 단지가 조성되는데, 이것이 바로 ‘구로공단’으로 불리던 ‘한국수출산업공단’이었다. 그리고 1969년 10월, 가리봉동과 시흥군 철산리 일원 36만 평에 수출공단 제3단지가 조성되면서 철산동구로공단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출이 활성화되면서 공단 일대 하청 업체와 원자재 공급 업체가 번창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자리를 찾아오는 근로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인구 유입으로 인한 주거 문제가 심각해졌고, 구로3동 일대에는 속칭 ‘벌집촌’이라 불리던 쪽방촌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구로동 일대 주거 지역은 구로공단 근로자를 비롯한 근로 계층의 인구가 밀집되어 공단 조성 당시 2만 8000여 명이었던 인구가 17만 여 명으로 증가하는 등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구로동 지역에서는 대단위 주거 시설을 확보할 공간이 없었다. 서울시는 공단 지역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이미 많은 공단 근로자가 거주하던 안양천 건너 ‘철산리’에 주목하였다.

이 지역을 서울시로 편입하고, 학교와 공원, 종합 의료 시설을 갖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여 구로공단 근로자들과 가족을 정착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수도권 인구 집중 방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진행되던 철산리의 서울시 편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게다가 복지 시설의 경우, 설립 초기의 계획은 1000여 명의 근로자가 기숙사와 같은 종합 복지관에 살도록 하는 ‘복지 타운’을 건설하는 것이었으나, 당시의 사회적 여건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어 실제로 반영되지는 못하였다.

1980년 3월 12일 철산리에 근로자 아파트 8000가구를 짓고 1982년까지 인구 5만 명 규모의 위성 도시를 건설한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철산리서울특별시립근로청소년복지관은 일대 전환을 맞게 된다.

그러나 1980년 대 당초 계획을 변경해 일반 분양을 대폭 늘리면서 근로자 기숙사용 아파트의 규모는 축소되었고, 서울특별시립근로청소년복지관은 현재와 같은 프로그램 위주의 복지관으로 개관하게 되었다. 서울특별시립근로청소년복지관은 서울시와 한국청소년연맹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광명 시민들도 복지관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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