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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하러 노인정에 간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B020202
지역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능말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오늘날 도회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노인정이다. 도회지의 경우 노인정이 따로 독자적인 건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골 마을은 마을회관 한켠에 자리하거나 아예 없는 곳도 있다. 과거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그나마 마을회관이라는 곳도 없었다. 마을 회의가 있으며 방이 큰 부잣집 사랑방을 이용했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된 이후로 각 마을에 마을회관이 생겼지만 그때도 노인정이 들어설 만큼 여유가 있지 못했다. 농촌에 노인정이 들어선 것은 1990년 이후로, 그나마 농촌 인구가 고령화가 심한 관계로 순수하게 농업이 중심인 농촌에는 여전히 노인정이 없거나 노인정이 있어도 이용하는 사람이 적다고 한다.

[변화된 노인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곳]

아방리[능말]처럼 생업이 순수한 농업에서 임대 수입 등과 같은 대체 수입이 있는 경우, 농사일이 줄어든 만큼 여가 생활이 늘어난 노인들이 자주 이용하게 되는 곳이 노인정이다.

아방리[능말]의 노인정은 ‘능촌노인정’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으며 노인회에서 관리한다. 능촌노인회는 1990년 무렵 노인정이 생긴 후 결성되었다. 능촌노인정을 유지하는 비용은 광명시에서 지원되는데, 여기에 매월 남자는 3000원, 여자는 1000원의 회비를 낸다. 또 마을에 수리계가 있어서 매년 몇 십만 원을 노인정에 지급한다. 노인회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여행을 가는데, 이때 마을에 있는 공장에서도 자발적으로 찬조금을 내기도 한다. 우리의 미풍양속인 경로사상과 효사상이 이렇게 현대에도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노인정은 할아버지방과 할머니방, 부엌, 목욕탕, 창고가 있으며 방에는 TV, 에어컨, 소파, 책장, 책상 등의 시설이 있다. 아방리노인회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별도의 조직을 가지고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각각 회장과 총무를 따로 두고 있다. 매월 초하루가 되면 회원들은 함께 모여 식사를 한다. 이날은 이곳에 거주하다가 타지로 이사 간 사람도 계원인 경우 참석한다. 노인들은 평소에도 노인정에서 점심을 함께 먹는다.

집에서 며느리에게 부담을 주거나 또한 독거노인들은 혼자 먹는 것보다 이곳에서 함께 먹는 것이 이롭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것이다. 필자는, 경기도 일대에 있는 상당수의 노인정에서는 이렇게 점심을 공동으로 먹는 것을 다년간 민속조사를 다니면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능촌노인정에서는 쌀은 회비로 구입하며, 반찬은 각자 집에서 가져온다.

한국 사회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젊은이들은 생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낮에는 바쁘게 일을 한다. 하지만 생업이 없는 노인들은 여가 시간이 많아 노인정에서 화투를 치거나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여름철에는 마을의 밭가에 원두막이 몇 곳 있어 그곳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도 있다. 도회지가 가까운 곳에서는 근처에 복지 회관이 있어 그곳에 가서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도 있지만 아방리[능말] 노인들은 시내로 나가려면 차를 타야 되기 때문에 주로 마을 노인정을 이용한다.

마을의 부녀회와 노인회, 청년회는 1년에 한 번 당일로 여행을 다녀온다. 예전에는 광복절에 온신초등학교 운동장에 음식을 장만해 놓고 노인잔치를 벌이며 남녀노소가 모여 한바탕 놀았으나 2000년대 중반부터는 하지 않고 있다.

아방리[능말]에서는 요즘도 단오 잔치는 옛날처럼 크게 한다. 영회원 앞 느티나무에 그네를 매고 음식을 장만해 놓고 논다.

정월 대보름에는 줄다리기를 하고 달집태우기와 널뛰기, 윷놀이도 하면서 신나게 논다. 줄다리기를 할 때는 고사떡과 돼지머리를 차려 놓고 고사를 지낸 후에 시작한다. 이러한 전통과 관련된 민속 행사에서 노인들은 주체적으로 참석하여 그들의 식견과 경험을 발휘한다. 특히 동제는 오랜 옛날부터 노인들이 주관해 왔다. 노인들의 경험을 우대하고 존중하는 마을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경험과 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는 곳]

젊은 사람은 또래들끼리만 어울릴 것이 아니라 때로는 노인들과도 어울려야 한다. 우리 사회의 원로이자 그들이 살아온 경험들은 그 자체가 소중한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책을 통해서도 공부하지만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도 책에서 얻을 수 없는 많은 지식을 터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인정은 수시로 젊은이들이 공부하러 찾아가는 학습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지식이 전승되고 활용될 때 우리 사회는 더욱 풍부하고 다채로운 지식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방리[능말]의 노인정에는 마을 행사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걸려 있어 그동안의 마을 활동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통해 마을의 유래나 민속 등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노인분들의 지난날의 삶의 경험들은 소중한 또 하나의 무형 문화다. 이원복 씨는 “나는 공부하러 박물관에 간다”고 했다. 필자는 공부하러 노인정에 간다.

[정보제공]

  • •  양주옥(남, 1931년생, 노온사동 주민, 할아버지 노인회장)
  • •  김정희(여, 1935년생, 노온사동 주민, 할머니 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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