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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1659
한자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인학

[정의]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전래되던 상부상조(相扶相助)의 민간 협동 조직.

[개설]

광명의 계(契)는 주로 광명시에서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받거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만든 전래의 민간 협동체이다. 계는 동일 지방에 있어서 수인 혹은 수십 인이 모여 동일한 목적 아래 일정한 규약을 설정하고 서로 금품을 각출하여, 그것을 자본으로 삼아 경제상의 복리를 증진하거나 사회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조직이다. 광명 지역에서는 다양한 계의 종류가 조사되었는데, 특히 세찬계(歲饌契)와 초상계(初喪契)가 많이 분포되어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연원 및 변천]

계는 삼한시대(三韓時代)에까지 소급되는 공동 행사의 하나로 상호 부조라는 목적 아래 공동 유희·제례(祭禮)·회음(會飮) 등이 성행하였다. 신라 때에는 여자들의 길쌈내기인 가배(嘉俳), 화랑들의 조직체인 향도(香徒) 등이 있었다. 그 후 고려시대에도 보는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이익 사회적 조직이어서 공동 사회적인 계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계가 다방면으로 이용되어 공동생활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조선 중기에도 친목과 공제(共濟)를 목적으로 한 종계(宗契)·혼상계(婚喪契) 등으로 성황을 이루었는데, 점차 경제적인 곤란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호포계(戶布契)·농구계(農具契) 등이 성립하였다.

[세찬계]

세찬계는 세밑에 소를 잡아먹기 위해 운용하는 계이다. 사들마을에서는 음력 정월에는 개인이나 마을 모두가 제사를 지내야 하고, 이때 소요되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개인으로는 구입하기 힘들어 공동으로 마련하기 위해 세찬계를 이용한다. 세찬계는 정월 초순께 계금(契金)을 내는 사람과 이자만을 내는 사람으로 일단 구분하여, 이자만을 내는 사람은 원금의 두 배를 내게 하였다. 세찬계가 이자놀이까지 하여 원금이 많이 확충될 경우는 900만 원까지 가능했으나, 지금은 이자놀이는 하지 않고 돈을 한꺼번에 걷어 약 500만 원을 적립한다고 한다.

적립된 돈은 계주가 관리하며, 계주는 정월에 소를 쓰기 위해 섣달에 인근 수원이나 신천 등의 우시장에 가서 소를 사온다. 소고기는 계원들 간에 공평하게 나누고, 소머리는 정월 초이틀에 지내는 군웅제의 제물로 바친다. 노온사동 사들 이외에도 일직동 자경리, 가학동 노리실, 광명동 원광명, 소하동 오리동 등지에서도 보인다.

[초상계]

초상계는 마을에 초상이 난 경우 쌀을 약간씩 수합하여 부조하는 계이다. 가리대마을의 경우 초상이 나면 쌀 1가마 또는 1가마 반으로 베를 사고, 음식 등을 상가에 장만하여 주었다. 그리고 계원 각자 종이와 초를 상가에 후원하였고, 상여를 계원들이 메어줌으로써 직접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이밖에 초상계는 노온사동 사들, 광명동 원광명, 하안동 밤일, 소하동 설월리 등지에서도 보인다.

[기타]

광명 지역에는 이외에도 다양한 계가 있다. 설월리에서는 혼상계라 하여 초상이 있는 경우, 집집마다 쌀 두 되씩을 모아 부조하였다. 자경리마을은 1949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1950년 6·25전쟁이 나기 직전에 완성된 일직저수지와 관련된 저수계(貯水契)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양지편과 자경리의 농사계(農事契), 원광명의 혼인계(婚姻契)과 대동계(大洞契) 등이 있었다. 이러한 계는 생활환경이 좋아지면서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10.30 항목명 변경 광명의 계 ->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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