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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오리선생집·오리선생속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1490
한자 梧里集
영어의미역 The Writings of Yi Wonik
이칭/별칭 『오리선생문집(梧里先生文集)』,『오리속집(梧里續集)』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상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10년 3월 23일연표보기 - 광명 오리선생집·오리선생속집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5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광명 오리선생집·오리선생속집 경기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성격 문집
관련인물 이원익|이상현|이존도|이수강|이희년|허목|권유|이서우|강영|이인복|김연
저자 이원익
간행자 이상현[원집]|이존도[속집]
간행연도/일시 1691년[원집]|1705년[속집]연표보기연표보기
권수 6권·부록 5권·보유 1권[원집]|2권·별집 2권·부록 2권[속집]
책수 4책[원집]|3책[속집]
사용활자 목판본
가로 16.8㎝[원집]|16.8㎝[속집]
세로 23.8㎝[원집]|22.6㎝[속집]
표제 梧里先生文集[원집]|梧里續集[속집]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원집]|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속집]
소장처 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산60-1[반포대로 201][원집]|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103동[관악로 1][속집]
문화재 지정번호 경기도 문화재자료

[정의]

조선 후기 간행된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이원익(李元翼)의 문집.

[편찬/발간경위]

『오리집(梧里集)』을 책으로 간행하기 처음으로 정리를 시작한 사람은 이원익[1547~1634]의 친손인 이수강과 조카사위 이희년이었다. 달성도호부사였던 이수강은 이희년과 함께 소답, 일기, 연보, 잡저 10권에 『궤장연창수시』 1권을 덧붙인 뒤 이를 간행하기 위해 공인과 판목을 모으는 등 문집 간행을 구체적으로 진행하였다. 여기에 손자사위 허목(許穆)이 1635년(인조 13) 이원익의 묘비명을 짓고, 1661년(현종 2)에는 연보를 완성했다. 또한 1664년(현종 5)에 유서를 쓰고, 1672년(현종 13)에는 유권서(遺卷序)를 짓는 등 이원익의 문헌 정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오리이문충공유권서」에 의하면, 허목은 유고를 소차 4권, 일기 4권, 일기별록 1권, 유문 1권, 연보 1권, 언행록 1권, 부록 2권 등 총 14권으로 편차하였다. 그러나 광명 오리선생집·오리선생속집이 처음으로 간행된 것은 1691년(숙종 17)이고, 속집은 1705년(숙종 31)에 간행되었다. 원집은 증손 이상현(李象賢)이 허목과 권유(權愈)의 서문을 받아 함경도관찰사 이서우(李瑞雨)의 협조로 간행하였다. 이것은 총 4책으로 간행된 것 가운데 일부인 제3책에 해당하는 것으로, 연보·묘지·일사장(逸事狀)·시장(諡狀)·유사(遺事)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속집은 현손인 이존도(李存道)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중에서 저자의 입조 사적(立朝 事蹟)을 가려 뽑아 1질을 만들고, 누락된 시문 등을 채집하여 첨부한 것이다. 소차(疏箚)[상소와 차자, 즉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문]와 인견주사(引見奏事) 등을 모으고 연보 등을 부록으로 붙인 뒤 이서우의 서문과 강영(姜楧)의 발문을 첨부하였다. 간행은 내형(內兄)인 경상도관찰사 김연(金演)에게 부탁하였다.

한편,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에서는 확인되지 않지만, 1722년(경종 2) 이원익의 5세손 이인복(李仁復)이 안동부사로 있을 때 쓴 발문이 있는 판본이 있다. 이인복이 쓴 발문은 속집 목록 다음에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전집의 판목은 공주에 있고, 속집과 별집의 판목은 대구에 있었다가 자신이 병산서원(屛山書院)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또한 낙판과 결자가 많아 교정을 하고, 습유(拾遺)의 시문과 서독 몇 편을 보충하여 추가로 판각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 점으로 보아 처음에 원집이 간행되고, 이후 속집과 별집이 간행되었으며, 이후 다시 이인복에 의해 없어지거나 낡은 판목을 보완하여 간행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인복의 작업은 새로 간행한 것이라기보다는 보완의 차원에서 작업한 것이기에 그의 발문은 속집 목록 다음에 짧게 그 간행 경위만을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이 판본은 현재 병산서원에 판목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지적 상황]

본서의 저본은 원집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속집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이다. 2010년 3월 23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목판본으로, 원집인 『오리선생문집』은 권6, 부록 권5, 보유(補遺)까지 총 4책이며, 속집(續集)인 『오리속집』은 권2, 별집(別集) 권2, 속집 부록 권2까지 총 3책이다. 표제는 원집은 ‘오리선생문집(梧里先生文集)’, 속집은 ‘오리속집(梧里續集)’이다. 크기는 원집이 가로 16.8㎝, 세로 23.8㎝이고, 속집은 가로 16.8㎝, 세로 22.6㎝이다. 원집과 속집 모두 행수는 10행, 한 행의 자수는 20자이다.

[구성/내용]

목차는 춘·하·추·동으로 구분하였고 시(詩)·제(祭)·표(表)·소(疏)·차(箚)·묘지(墓誌) 등의 내용이 실려 있다. 책머리에 1691년 권유가 쓴 서문과 1672년 허목이 쓴 「오리이문충공유권서」 및 ‘세계(世系)’가 전한다.

원집은 상소문인 소차(疏箚)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권1에만 시문이 실려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차이다. 소차는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고, 대부분 소차의 제목 아래 그 소차를 올리게 된 배경을 간략하게 기술했는데, 문맥으로 보아 이원익의 주석도 있고, 편자의 주기도 있다.

권두에는 권유와 허목의 서가 있고, 목록과 세계가 실려 있다. 권1은 시, 제문, 잡저, 대책, 표가 들어 있다. 시는 시체에 관계없이 대략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부터 권6까지는 「변정응태무주문(辨丁應泰誣奏文)」 1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차이다. 권2는 1598년(선조 31) 부터 1604년(선조 37)까지 올린 것이고, 권3은 광해군이 즉위한 1608년부터 영의정에서 체직된 직후 1610년(광해군 2)까지 올린 것이다. 권4는 1611년(광해군 3) 이원익이 다시 영의정에 제수된 이후부터 1615년(광해군 7) 폐모론을 반대하여 홍천에 부처(付處)될 때까지 올린 것이다. 권5와 권6은 인조반정 이후 1624년(인조 2)부터 1632년(인조 10)까지 올린 것이다.

부록은 모두 5권이다. 권1은 허목이 지은 연보와 저자의 유명(遺命)에 따라 이준이 찬한 묘지 및 일사장이 실려 있다. 권2는 조경이 찬한 시장(諡狀)과 허목이 찬한 유사가 수록되어 있으며, 권3에는 저자에게 내린 교유서(敎諭書)가, 권4는 1623년(인조 1) 9월 궤장연(几杖宴)에 수창한 시첩이 수록되어 있다. 이 시첩에는 허목의 서문이 있지만 본집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권5는 평양에 있는 이원익의 생사당(生祠堂) 제문과 금천의 삼현사와 충현서원의 사액 제문, 그리고 한천사의 상량문이 수록되어 있다.

보유는 부록 뒤에 첨부되어 있다. 보유가 이렇듯 부록의 말미에 편차된 까닭은 아마도 함흥본이 재편되고 간행되는 과정에 상당한 시차가 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즉, 함흥본의 편차가 어느 정도 완성된 후에 이 보유가 편집되어 합부된 것으로 추측된다. 보유는 대부분 잡저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여손수약부연풍현(書與孫守約赴延豐縣)」·「서시자손(書示子孫)」·「유계자손(遺戒子孫)」 등은 모두 자손들을 훈계하는 글이다.

속집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속집의 원집에 해당되는 2권의 소차 등과 별집으로 『인견주사』 2권, 그리고 연보를 포함한 부록으로 되어 있다. 『인견주사』를 ‘별집’이라 이름 하여 편차한 것은 그것이 저자의 저술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소차 2권은 원집과는 달리 문체별로 좀 더 자세하게 분류하였다. 권1의 소차는 상소와 차자(箚子)를 시기별로 편차한 것인데, 1624년부터 1632년까지의 것이 대부분으로 내용상 사직소이거나 사은소이다. 따라서 편수는 많지만 한 편의 분량은 짧은 편이며, 그 중요도도 상대적으로 낮은 것들로, 대부분 원집이 편찬될 당시에 산정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권2는 수의(收議), 장계(狀啓) 및 습유(拾遺)로 이루어져 있다. 수의는 1600년(선조 33) 명나라 군대의 철수부터 1628년(인조 6) 포로 교환의 문제까지이며, 장계는 1593년(선조 26) 평안도순찰사로 재직할 때 올린 것과 1596년(선조 29) 4도체찰사로 성주에 주둔하면서 올린 것, 1597년(선조 30) 정유재난 때 올린 것이다. 습유는 공거문을 제외한, 즉 가장(家藏)된 초본을 바탕으로 수집한 저자의 시문을 편차한 것으로 강첨의 묘지, 자신의 생사당에 있던 도상의 발 등이 실려 있다. 별집 2권은 모두 인견주사이다. 부록은 이존도가 재편한 연보와 제문, 만사, 그리고 권유가 찬한 행장과 영당기로 구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광명 오리선생집·오리선생속집의 특징은 소차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특히 저자가 임진왜란 당시 4도체찰사로 활약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자료가 집중되어 있어 임진왜란 연구에 주요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승정원일기』를 열람하여 문집의 내용을 보완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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