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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1296
한자 婚禮
영어의미역 Marriage Ceremony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평생의례|통과의례

[정의]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혼인과 관련하여 행해지는 일련의 의례.

[개설]

혼례(婚禮)는 청춘 남녀가 한 가정을 꾸리기 위한 혼인에 따르는 모든 의례와 절차이다. 일생의례 중에서도 혼인은 ‘대사(大事)친다’는 말이 있듯이 중대한 행사 중의 하나였다. 혼인의 어원을 찾아보면 ‘혼(婚)’은 원래 ‘혼(昏)’으로서 해가 진 뒤에 예를 치른다는 뜻이고, ‘인(姻)’은 여자가 남자로 말미암아 성례한다는 뜻이다. 남녀가 일정한 혼례를 거행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오늘날에는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라서 중매결혼·연애결혼 등 다양한 혼례의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과거에는 혼례를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할 정도로 중요시하여 일정한 절차와 의식에 따라 행하였다. 광명 지역에서는 최근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970년대 이전에는 가정에서 전통 혼례식을 주로 했으나 이후 변모되었다.

[연원 및 변천]

1970년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이전에 농경 생활을 주로 하던 광명 지역에서는 전통 혼례식을 했으나 그 후에는 예식장에서 혼례식을 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따라서 과거 전통 혼례식을 하면서 행해졌던 잿꾸러미와 같은 풍속들은 오늘날 볼 수 없다.

[절차]

광명시 학온동 능촌마을 주민 송정옥의 사례를 통해 전통 혼례식의 일면을 소개해 본다. 인천 송도가 친정인 송정옥은 능촌마을로 먼저 시집을 온 사촌 언니의 중매로 혼인이 성사되었다. 중매가 된 후 궁합을 보고 사주단자를 보냈다. 이어서 혼례식 전날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함을 보냈다. 신랑이 신부의 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청년들이 ‘잿꾸러미’라고 하여 재를 신랑에게 뿌린다. 그리고 신랑이 신부 집에 들어가면 신랑을 부엌으로 데리고 가서 왼발을 부뚜막 위에 올려놓게 한 후 국수를 먹인다. 신부 집에서는 혼례를 한 후 신랑에게 신랑상을 차려 준다.

신부 집에서 예식을 마치고 나면 신랑 집으로 가게 되는데, 당시 송도에서 능촌까지는 길이 멀어 차를 타고 왔다. 송정옥 보다 먼저 시집을 온 그녀의 사촌 언니 때는 차가 없어 가마와 말을 타고 신랑·신부가 능촌까지 왔다. 신부가 신랑 집에 와서 가마에서 내리면 솥뚜껑을 바닥에 엎어 놓고 신부의 손에 숟가락을 한 줌 쥐어 주어 그것을 솥뚜껑 위에 던지게 한다. 이러한 행위들은 액과 살을 막기 위한 혼례 때의 풍속이다.

신랑 집에서는 신부에게 색시 상을 차려 준다. 이어서 시댁의 조상님께 사당 차례라고 하여 제사를 드린다. 조상님들께 혼례를 하였음을 고하는 것이다. 사당 차례는 요즘도 행해지는 풍습이다. 이어서 폐백을 한다. 신랑과 신부의 첫날밤에는 신방에 주안상을 차려 놓는다. 술과 음식, 물 등을 차려 놓고 첫날밤에 신랑이 밖을 나오지 못하게 한다.

혼례식을 치루고 3일이 지난 후 부부가 함께 신부 집에 간다. 이때는 신랑 집에서 엿, 인절미 등의 음식을 잔뜩 보낸다. 이날 밤 신부 집 마을의 청년들은 신랑을 달아 매놓고 발바닥을 때리며 장난을 치는 ‘신랑다루기’를 한다. 혼례식 후 3일째 신부 집에 못가면 근친 때 가기도 한다. 친정집에서 올 때도 시댁에 보내기 위해 음식을 잔뜩 보낸다. 송정옥의 경우에는 이렇게 전통 혼례식을 했지만 1970년 이후 능촌에서 전통 혼례식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참고문헌]
  • 『광명시지』 (광명시지편찬위원회, 1993)
  • 인터뷰(학온동 능촌마을 주민 송정옥, 여, 7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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