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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458
한자 李億載墓
영어의미역 Tomb of Yi Eokja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산 137-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권만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능묘
건립시기/일시 조선 전기
관련인물 이원익
소재지 주소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산 137-1

[정의]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조선 전기 종친 이억재의 묘소.

[개설]

이억재[1503~1585]는 본관이 전주, 자는 대년(大年)이다. 할아버지는 태종의 손자 수천군(秀泉君) 이정은(李貞恩)이며, 아버지는 청기군(靑杞君) 이표(李彪)이다. 어머니는 국자생원(國子生員) 조경(趙璟)의 딸이다. 부인 우씨와 혼인하였으나 자식이 없었고, 뒤에 감찰 정치(鄭錙)의 딸과 혼인하여 2남 1녀를 낳았는데, 그중 둘째 아들이 문충공 이원익(李元翼)이다.

처음에 종직(宗直)으로 함천부수(咸川副守)에 제수되었고, 1535년(중종 30) 시예(試藝)에 선발되어 창선정(彰善正)으로 승진되었다. 1544년(중종 39) 중종이 죽자 혼전(魂殿)의 수직(守直)으로 선발되었고, 3년 뒤 명선부정에 올랐다. 1582년(선조 15) 정의대부로 승진하고 함천군에 봉해졌다.

이원익이 공신이 되자 사후 순충적덕보조공신(純忠積德補祚功臣)에 증직되고 현록대부(顯祿大夫)의 품계를 받았다. 평소 음악에 조예가 깊었으며, 오행의 운행을 잘 추산하였다. 1585년 8월 13일 8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그해 10월 금천현 소하리[지금의 광명시 소하동]에 묻혔다. 묘비명은 김귀영이 짓고, 김응남이 썼다.

[위치]

이억재 묘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산137-1, 충현박물관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함천군에 대하여 동계(桐溪) 정온(鄭蘊)에 따르면, “익령군에서 함천군까지 4대 동안 국왕과 가까운 종친이었기 때문에 조정에 나아가 벼슬할 수 없어서 그 명성이 드러날 기회가 없었으나, 대대로 유학으로 다져진 종친 집안으로 학문과 위의가 있는 행동을 보였고, 의리로서 뒷사람들을 계발시켜 학문과 덕행의 근원은 깊고 오래되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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