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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012
한자 -市場-穩全-光明-在來市場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철원

[개설]

광명 지역 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시장은 재래시장과 상가형 시장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재래시장은 예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 시장을 말하며, 상가형 시장은 아파트 건설이나 택지 개발로 새로이 설립된 대규모 상권에 자리 잡은 상가를 말한다. 광명 지역에 자리한 전통 시장으로 대표적인 곳은 광명시장새마을시장이며, 상가형 시장은 철산중앙시장2001아울렛 철산점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광명 시민들과 애환을 함께해 온 광명시장새마을시장, 철산중앙시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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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장]

광명사거리에 자리 잡은 광명시장은 1972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 광명리[현 광명시 광명동] 지역이 개발되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재래시장이다. 그 후 시장 건물이 들어서고 상인들이 입주하면서 번창하기 시작했으며, 1981년 광명시로 승격되고 현재 광명사거리를 가로지르는 광덕로가 복개되면서 시장으로서의 확고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또한 2000년에 지하철 7호선 광명역[현 광명사거리역]이 개통되면서 광명시장은 더욱 성업 중인데, 광명사거리에 인접한 광명2동광명3동, 광명4동에 걸쳐 형성된 의류 상권과 가구점, 먹자골목, 금융 기관, 병원까지 들어서면서 광명시장은 이제 더 이상 하루 끼니를 위해 반찬을 사기 위한 재래시장으로서의 기능에 그치지 않고 한 군데서 생활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그야말로 만능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 광명시장은 수많은 위기를 넘겨야 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1995년 12월 31일에 일어난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형 화재이다. 광명시장 내에 있는 중앙상가에서 시작된 불로 4명이 중화상을 입고 중앙상가 125개 상점과 광명시장 47개 점포가 소실되는 등 소방서 추산 20여억 원[상인들은 200여억 원으로 주장]의 재산 피해를 내는 등 큰 손해를 보았다.

중앙상가는 2층 건물로 1971년 건립된 뒤 준공 검사를 받지 못하고 있다가, 1985년 8월 특정 건물 양성화 조치에 의해 준공 검사를 마쳤으며, 의류·신발·포목 등 생필품을 파는 점포 143개가 있는 곳이었다. 이 사건으로 많은 상인들이 재기하지 못하고 시장을 떠나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현재 크로앙스라는 대규모 점포가 들어서 있다.

2004년 7월 광명시장은 그동안의 오랜 숙원이었던 비와 눈, 햇빛으로부터 상품을 보호하고 이용객들의 불편 해소는 물론 전천후 쇼핑이 가능하도록 총 69억 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광명시장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2006년 공중 화장실 건립을 포함해 아케이드[비 가리개 시설]와 도로 포장, 상하수도 정비 등 환경 개선 사업과 통합 콜센터를 구축하였다. 이후 광명시장은 청결하고 깨끗한 시장, 쾌적한 보행 환경 및 휴게·편의 시설을 제공하면서 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장답게 저렴한 가격의 다양한 상품을 구비하여 장보기의 재미를 더해 주는 곳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광명시장 조합원들은 2005년 초 기존의 시장번영회를 해체하고 새롭게 광명시장 상권 및 지역경제활성화사업의 건전한 발전과 조합원 상호간의 협동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복리 증진을 도모하고자 광명시장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을 출범시켰다. 또한 「전통시장육성특별법」에 의거하여 2008년 12월에는 ‘인정시장’으로 등록되기도 하였다.

2010년 현재 광명시장은 1만 9,223㎡의 대지에 388개 점포가 성업 중이다. 가장 많은 시민이 출입하는 주 출입구에서부터 약 260m에 이르는 길을 따라 상가가 가지치기를 하듯이 골목마다 이어져 있다. 광명시장이 가장 붐비는 시간은 오후 4시부터 7시 사이이며 7시 이후에는 저렴한 가격에 빈대떡을 안주로 파는 막걸리집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하루의 피로를 동동주 한 잔과 빈대떡 한 장으로 달래기도 한다. 광명시장에 빈대떡집이 성업 중인 이유는 25년 전통의 할머니 빈대떡집이 유명세를 타면서부터이다. 빈대떡집을 비롯해 칼국수집, 족발집 등은 광명시민 외에 타 지역 사람들도 많이 찾고 있으며, 블로그 등을 통해 저마다의 방문기를 확인할 수도 있다.

광명시장에는 오랜 세월동안 영업을 하며 삶을 가꿔온 상인들이 유독 많아 방문객들에게 가족 같은 끈끈한 정을 느끼게 한다. 침구 가게를 운영하는 이숙경[가명] 씨에 의하면 자신처럼 광명시장 상인들 중에는 40여 년을 장사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점포도 그대로이고 사람들도 그대로이니 오랜 단골들이 계속 찾아오게 되고, 어릴 적 엄마 손을 꼭 붙들고 찾아오던 아이들도 성인이 되어 장을 보러 다시 찾는, 광명시장은 그런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곳이 되었다.

[새마을시장]

새마을시장은 1986년 광명시 광명6동 262번지 및 263번지 일대 2,120㎡의 대지에 조성된 재래시장이다. 2004년 5월 11억 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아케이드를 시설하고 도로 포장, 상하수도 정비, 전기·소방 공사 등 재래시장의 현대화를 추진, 완공하였다. 새마을시장의 조합원들은 상점들 간의 건전한 발전과 조합원 상호간의 복리 증진을 도모하고 협동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조합원들의 경제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광명새마을시장상점가 진흥사업협동조합을 설립하였다. 2010년 현재 157여 개의 점포가 성업 중인 새마을시장은 온갖 식료품과 생활필수품 및 채소·과일 등을 싼값에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분기별로 경품 행사도 열고 있어 주변 지역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철산중앙시장]

철산중앙시장은 1971년 철산리[현 철산동] 시절 광명광덕초등학교 옆쪽으로 길게 형성되었던 철산시장이라 불리던 상가가 전신이다. 이후 철산동 지역이 개발되면서 철산상업지구[440번지 일원] 약 1,785.12㎡[540여 평]의 대지에 지하 2층에서 지상 3층까지 연 건축 면적 6,016.53㎡[1820평]의 상가 건물을 1987년 초 준공하면서 시장이 형성되었다. 현재 206개의 점포가 입주하여 영업 중이다.

[어느 광명시장 상인의 이야기]

광명시장에서 40여 년 간 장사를 한 이숙경 씨는 전라남도 나주 출신이다. 남편은 광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였는데, 더 넓은 곳으로 간다고 서울로 함께 올라왔다. 광명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친척이 이곳에 살았고, 광명 지역이 곧 개발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숙경 씨의 이야기를 통해 광명시장의 변천사에 대해 살펴보겠다.

내가[이숙경, 이하 생략] 처음 와서 산 곳은 지금의 도덕파크가 있는 자리 아래쪽으로 철산약국의 맞은편쯤 된다. 당시는 집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부엌 하나, 방 하나 있는 집을 얻어 세를 살았다. 가난했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했고,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광명시장에 수예점을 연 것이 1973년 10월이다. 광명사거리 크로앙스 자리가 광명중앙상가였는데, 돈이 없었기 때문에 번듯한 점포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하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공간인 한 평 반 정도의 자리에 수예점을 열었다.

당시는 스킬자수가 잘 나갔는데, 스킬자수를 직접 짜서 팔거나 도매로 사다가 팔기도 하고 수예품 노리개나 방석 같은 제품도 팔았다. 장사는 꾸준히 잘되어, 3년 후에는 내 점포를 마련하여 이사했다. 이때부터 이불과 침구를 곁들여 팔기 시작했다. 수예품만으로는 품목이 적었기 때문에 곧 침구 전문점으로 변경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N침구사라는 유명 브랜드 대리점을 열고 영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인지도 있는 물건을 파는 것이 나도 좋았고, 좋은 품질을 찾는 소비자에게도 이득이 되었다.

광명시장도 계속해서 성장했다. 광명 지역의 인구는 점점 늘고 유동 인구도 많으니 당연하다 생각할 수 있으나, 광명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광명시장의 물건이 좋기 때문에 멀리서도 찾는 것이라고 한다. 광명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광명 지역 사람뿐만이 아니다. 인근 개봉동, 오류동, 궁동, 항동 뿐 아니라 안양, 안산, 시흥, 금천에서도 오고, 지하철 7호선이 개통된 후부터는 신림동 지역에서도 온다. 광명에서 살다 타지로 이사한 사람들이 광명시장을 잊지 못해서 오기도 하지만, 물건의 품질, 특히 채소의 품질이 좋아서 온다는 타 지역 사람들도 많다.

나도 광명시장에서 40여 년을 장사하고 있지만, 광명시장의 상인들 중에는 이 정도 장사한 사람들이 흔하다. 점포가 바뀌지 않고 상인들이 그대로 있으니, 오랜 단골들이 계속 찾아오게 되고, 어릴 때 엄마 손잡고 오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장을 보러 다시 찾는 곳이 광명시장이다. 시장이 시장답고 물건이 싸고 품질도 좋으니 서민들이 살기 좋은 곳이 이곳이 아닌가? 그래서 이대로 변하지 않고 재래시장의 모습으로 남았으면 한다.

광명시장에도 위기가 있었다. 1995년 12월 그믐날 광명중앙상가에 화재가 나서 대부분의 점포가 불에 타버렸다. 나도 중앙상가 1층에서 침구사를 운영하고 있던 때라 이때의 화재로 상점 안의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층의 창고가 불에 타지 않고 남아 있어서 온전했던 제품을 반값에 내다 팔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많은 상인들이 광명시장을 떠났다. 인근에 점포를 얻은 몇몇은 지금도 장사를 하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문을 닫거나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그러나 이후에도 광명시장은 계속 번창했다.

나는 광명시장을 떠날 수가 없어서 인근 개인 건물에 다시 점포를 냈다. 건물 주인들이 보증금을 40% 더 주고 보상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광명시장이 활성화되어 프리미엄도 받을 수 있었지만, 건물주는 건물이 없어진 형편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곳에서 10년 동안 영업을 하고 건물 리모델링 한다 하여 25평으로 점포를 늘려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대리점을 오래 하면서 회사가 잘 되어야 나도 잘된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보니 회사에서 주는 판매상도 여러 차례 받았다. 올해 2010년에는 전국 130여 대리점주 중에서 5명에게만 주는 상도 받았다.

광명시장에서 일하면서 1남 2녀를 낳아 키웠고 모두 장성하여 자기 몫을 잘해내고 있다. 광명시장에서 일하던 엄마들의 자녀들이 잘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엄마들이 밥만 먹고 부지런히 일했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성실히 살고 사랑을 듬뿍 주면 자녀들은 부모의 본을 받아 훌륭히 성장하는 것이다. 큰 꿈을 안고 광명으로 이사 왔고, 젊은 시절에 수예점으로 시작해 자식들을 다 키워내며 40여 년을 함께한 광명시장. 한 곳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다 보니 오랜 단골들이 안방 같은 내 점포로 찾아오곤 한다. 이렇게 마음이 편하니 광명시장을 떠나고 싶지 않다.

[의의]

광명 지역에 설립된 재래시장은 현대 광명 지역의 성장과 함께 형성된 곳으로 광명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 주는 박물관과도 같은 곳이다. 재래시장의 경우 2000년대로 들어서 시장 시설 개선 공사를 완료해 방문객들이 찾기에 더욱 편리하도록 서비스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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