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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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의 자연 마을인 설월리와 도고내고개, 가학광산, 괭메를 조사 기록한 자료집. 푸른광명21실천협의회 문화교육위원회는 의제약속24 ‘역사, 문화 만들기’ 추진 사업을 재검토하면서 지역 실정에 맞는 의제로 재작성하는 과정에서 보다 현실적인 대안과 지역에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는 사업으로 전환하는 논의를 진행하였다. 광명문화원은 국비 지원 사업인 2009 어르신문화학교를 ‘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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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1동에 있는 자연마을. 풍수지리상 마을 앞이 허해서 복이 나가고 재앙이 들어오는 형국이어서 마을과 삼거리에 소나무·버드나무 등을 심어 마을 앞을 가려서 가리대라고 하였다는 설, ‘설월리에서 갈라진 마을’이라는 뜻에서 가리 또는 가리대라고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조선 말기 시흥군 서면 가리대리였고, 1914년 시흥군 서면 소하리에 속하였다. 1964년 시흥군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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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1동 가리대삼거리에 있던 보도 육교. 이곳은 풍수로 보아 마을 앞이 허해서 복(福)이 나가고 재앙이 들어온다 하여 마을과 가리대삼거리 사이에 소나무와 버드나무 등을 심어 마을 앞을 가렸다 하여 가리대리라 했다는 유래와 서러리[설월리]마을에서 갈라져 나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유래가 전하고 있다. 일설에 처음에는 10호가 살다가 호수가 점차 불어났다고 하여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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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소개하는 두 분은 외지에서 설월리로 시집와서 50년 혹은 그 이상을 사신 분들이다. 설월리의 여느 주민들처럼 이분들은 농사일을 하며 가족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이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생동감 있는 설월리의 지난 세월을 들여다보자. 설순금[1921년생] 씨는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에 가마를 타고 이곳 설월리로 시집을 왔다. 와서 보니 시부모와 남편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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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에 광명시 소하동의 가리대와 설월리가 제1종 일반 주택 주거지로 용도가 변경되면서 개발이 가능해졌다. 가리대와 설월리 일대 74만 6000여㎡이 녹지 지역에서 제1종 일반 주거 지역으로 용도 변경되면서, 단독 주택의 경우 건폐율 60%, 용적율 150% 이하, 3층 이하로 건물을 신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풀어야 문제가 많다. 농경지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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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지역은 남북으로 가학산과 서독산, 구름산, 도덕산이 길게 시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형성된 지역이다. 이 산들을 중심으로 광명동과 철산동, 하안동, 소하동, 일직동, 가학동, 노온사동에 속한 자연마을에 깃들여 많은 사람들이 누대에 걸쳐 살아왔다. 그러나 도덕산 자락의 철산동과 하안동, 광명동 지역은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급격하게 진행된 도시화로 본 모습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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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시작된 개발 열풍 속에 도시가 무분별하게 개발되고 팽창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971년 7월 30일 「도시계획법」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이 「도시계획법」으로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고, 도시 주변의 자연 환경을 보전할 수 있도록 도시 주변 지역에 대한 개발 제한 구역이 정해지게 되면서 서울 근교에 위치한 시흥군 소하읍은 개발 제한 구역[그린벨트]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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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전래되던 상부상조(相扶相助)의 민간 협동 조직. 광명의 계(契)는 주로 광명시에서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받거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만든 전래의 민간 협동체이다. 계는 동일 지방에 있어서 수인 혹은 수십 인이 모여 동일한 목적 아래 일정한 규약을 설정하고 서로 금품을 각출하여, 그것을 자본으로 삼아 경제상의 복리를 증진하거나 사회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조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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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월리에서는 1927년에 서면공립보통학교[현 서면초등학교]가 개교하여 근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교육이 필요한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청소년들을 비롯해 일반 성인들 중에도 문맹자가 많았다. 1920~1930년대에 걸쳐 광명 지역에서는 문맹 퇴치를 위한 계몽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데, 이는 당시 사회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192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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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리 사람들 이야기는 광명시 개청의 모태가 된 광명동 지역과 관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엮었다. 광명리의 도시개발과 그에 따른 변화는 이후 전개되는 광명의 여러 지역의 도시화의 기본 모델이기 때문이다. 광명시의 도시화는 전통적인 모습을 간직한 자연마을이 조금씩 확대되면서 서서히 진행된 것이 아니다. 서울특별시의 주택과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서울특별시의 택지개발계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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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의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소하2동은 소하동 일부 및 일직동으로 이루어진 동이다. 면적은 7.2㎢로, 광명시 전체의 18.7%에 이르는 도·농 복합 지역으로, 전체 면적 중 69.4%가 그린벨트 등으로 다양한 행정 수요를 필요로 하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1981년 광명시 탄생에 이르기까지 설월리는 옛 시흥군 서면의 행정 중심지로 번성했던 소하리의 대표적인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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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월리를 멀리서 보면 마치 마을 전체가 높이 237m의 구름산에 포근히 안겨 있는 듯하다. 설월리의 풍수는 이 구름산에서 시작되었다는 풍수 전문가들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이 만든 『산경표(山經表)』를 보면, 구름산은 죽산(竹山)에서 북서쪽으로 돌아 안성·용인·안산·김포에 이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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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1동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뿌리를 내린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지역을 섬기며, 기독교 문화를 창출함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아가고자 하는 생명 살림의 푸르고 푸른 생명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이다. 구름산교회는 6·25전쟁 이후 황폐화된 지역 사회에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여 국민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심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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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7월 30일 「도시계획법」이 제정되면서 시흥군 소하읍이 개발 제한 구역[그린벨트]으로 지정되자 소하리는 자동으로 그린벨트에 포함되었다. 그리하여 지난 40여 년간 설월리 일대는 건축물의 신축이나·증축, 용도 변경, 토지의 형질 변경 및 토지 분할 등의 행위가 엄격히 제한 당했다. 당연히 설월리 주민들은 불편한 주거 환경과 재산상의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마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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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끝나고 1960년대까지 설월리 일대 사람들은 여전히 논농사를 생업으로 꾸려 나가고 있었다. 현재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이 들어선 자리는 ‘멍석뜰’이라 불리던 논자리로, 구름산과 도고산에서 내려오는 한내와 한강으로 흘러드는 안양천이 자리하고 있는 그야말로 천혜의 입지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그렇다고 설월리 사람들이 논농사에만 매달렸던 것은 아니다. 부농도 있었지만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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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산업은 1970년 11월 경기도 시흥군 서면 소하리에 국내 최초의 대단위 종합 자동차 공장 건설에 착수하였다. 소하리공장은 영등포와 부산, 시흥에 이은 네 번째 공장인데, 엄격한 의미에서 소하리공장은 자동차 생산을 위한 최초의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아산업은 창업 이래 영등포, 부산, 시흥 공장을 거치면서 약 30년 동안 자전거와 2륜 오토바이, 3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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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이 독 안처럼 생겨 독안이라 하였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발음이 변하여 도구내가 되었다는 설, 서독산을 넘어 소하동으로 가는 고갯마루에서 발원한 작은 내의 이름인 도고내[道高川]에서 따 온 이름이라는 설이 전한다.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도 지도와 함께 도고내라는 하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오래전부터 도고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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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당(禱堂)은 수호신을 제사하는 단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굿이 개인의 무병장수나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해 행해지는 것과 달리 도당굿은 신목(神木)인 소나무에 띠를 두르고 제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굿판이다. 마을 전체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다. 광명시 소하2동 설월리 마을에서는 이웃한 오리동, 영당말 주민들과 함께 매해 음력 7월 1일 마을 축제이기도 한 도당고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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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지역에서 3·1만세 운동이 처음 일어난 시기는 3월 27일이다. 당시 서면 소하리에 거주하고 있던 이정석(李貞石)이 노온사리 주재소 부근에서 만세 시위를 선동하다가 28일 아침 출동한 일본 경찰에 강제 연행되어 치안법 위반자로 노온사리 경찰관 주재소에 구금되었다. 이에 서면 지역 주민들이 이정석을 구출할 계획을 세움으로써 이 지역에서 3월 28일 200여 명이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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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와 1930년대 설월리의 모습을 비교적 상세히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1932년 2월 서면공립보통학교 교장 기타야마 와카니치[北山若二]와 교사 성만용(成萬鏞)이 편찬한 『서면향토지』다. 『서면향토지』에 따르면 과거 서면의 면소재지였던 설월리는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순전한 농촌 지역’이었다. 수림이 울창해 도내 모범림으로 선정된 적도 있고, 서울서 송이를 채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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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면초등학교의 연원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으로 올라간다. 1908년 오리 이원익의 후손 이연철(李淵哲)이 사재를 털어서 서면 소하리 883번지[현 소하리 883-13번지]의 현 광명감리교회 자리에 세운 운양의숙이 서면초등학교의 모태이다. 당시는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된 후 1910년까지 일제가 조선의 식민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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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까지도 광명 시민이라면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들어오다가 시외 지역 요금 할증 문제로 택시 기사와 말다툼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광명시는 안양천·목감천이라는 작은 하천을 사이에 두고 행정 구역이 서울에서 경기도로 바뀐다. 그러나 서울 지역과 거의 같은 기간 시설을 이용하고 살아 왔기 때문에 평소에도 광명이 경기도 지역이란 점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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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광명 지역에 불교가 언제 들어왔는지는 정확하게 남아 있는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 오래된 전통 사찰은 없지만 절골, 혹은 노온사 터 등의 지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이들 지역에 사찰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광명 지역에는 역사가 깊고 이름난 사찰은 없다. 인근 관악산 기슭 안양에 오래된 사찰이 적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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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1동에 있는 자연마을. 40동마을은 1960년대 말 가옥 40동을 지어 마을을 이루었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경기도 시흥군 서면 소하3리에 속했던 지역으로 1960년대 말 건축업자가 처음으로 집을 지었으나 실패하였고, 이후 다른 사업자가 인수해 마을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입주자가 늘어나면서 가옥이 40동에 이르렀고, 1974년 그린벨트 지역에 포함되면서 건축이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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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90세가 되는 임정동[1921년생] 씨와 79세가 되는 김정관[1932년생] 씨는 설월리에서 행해졌던 장례풍습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었다. 임정동 씨는 상여 소리꾼이었고 김정관 씨는 그와 함께 소리를 받고 장례 절차를 직접 수행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최문락 씨가 제공한 사진들과 함께 두 분이 증언한 설월리의 장례풍습을 채록해 보았다. 김정관 씨에 따르면, 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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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1979년 이전까지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지역에 있던 면사무소. 현 광명시 소하2동은 1979년 이전까지 경기도 시흥군 서면이라는 행정 구역이었는데, 서면사무소는 서면 지역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 기관이었다. 서면사무소가 생기면서 이 지역에는 취락이 발달하였고,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1927년에는 근대적인 의미에서 광명시의 첫 교육 기관인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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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하2동주민센터 를 출발해서 설월리 길을 지나다 보면 돌담에 둘러싸인 오래된 옛 집들을 만나게 된다. 설월2길로 접어들면 오랜 설월리의 더 많은 흔적들이 우리 눈에 들어온다. 설월리의 최고령자 설순금 씨가 사는 집과 소하동성당 한마음공소를 지나쳐 약 100m를 오르면 금강정사에 다다른다. 제법 많은 참배 차량들이 금강정사에 진입하는 것을 보며 또 약 100m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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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자연마을. 조선 중기의 명재상이었던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이 관직에서 물러나 영당말에 살면서 호미로 농사를 지었다고 하여 ‘호미 서(鋤)’자를 써서 서월리(鋤月里)라 하였다가 발음이 변하여 서러리라 하였다는 설, 이원익이 눈 오는 밤에 마을길을 걸으면서 사색에 잠기곤 했다 하여 설월리(雪月里)라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조선시대에 시흥군 서면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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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월리에는 마을의 토박이 주민들 중에 연령이 비슷한 또래끼리 모여서 만든 ‘설동회’, ‘설송회’, ‘설친회’ 등의 친목회가 있다. 이들 모임은 대부분 마을회관에 사무실을 두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 설동회는 30대, 설송회는 40~50대, 설친회는 60대가 모인 조직이다. 이러한 조직은 대개 성인으로 성숙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위치인 3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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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월리는 1970년대까지 150여 호가 모여 살던 면소재지로서 광명 일대에서 가장 전통 있고 번성했던 마을이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고 전국이 개발로 몸살을 앓기 전까지 설월리 주민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했다. 다음에 소개하는 세 분은 설월리에서 태어나서 현재까지 설월리를 떠나지 않고 평생을 살아온 분들이다. 이들은 살아 온 방식들은 서로 다르지만 지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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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월리는 광명시의 진산인 구름산을 등지고 그 앞으로 안양천이 흘러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마을이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설월리 주민들은 소하동 너른 벌판을 일구며 멀리 관악산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이곳은 또 예전부터 안산과 시흥 사람들이 서울에 가려면 반드시 경유해야 했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그만큼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산세와 부족하지 않은 물자가 생산되어 제법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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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소하동은 개발 제한 구역이 면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도농 복합 지역이며 최근 소하1동은 소하택지개발사업과 신촌마을 주거지환경개선사업으로 신시가지로 변모 중이다.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현내면의 아랫동네이므로 소하라 하였다. 소하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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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일직동과 소하동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동.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현내면의 아랫동네이므로 소하라 하였다. 소하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합해 금양현(衿陽縣)이 되었고, 1416년(태종 16)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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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2월 서면공립보통학교 교장 기타야마 와카니치(北山若二)와 교사 성만용(成萬鏞)이 편찬한 『서면향토지』를 통해 읽혀지는 설월리는, 서면의 면소재지임에도 상가나 유흥 시설, 금융 기관, 병원 등의 시설들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여타 지역의 면소재지와 비교해 보면 사뭇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서면향토지』는 1927년 서면공립보통학교의 초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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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고내고개 는 서독산과 구름산 사이에 있는 가학산을 끼고 도는 고개로 학온동[옛 가학동]에서 설월리로 넘어오는 길목으로, 안산이나 시흥 방면에서 오는 사람들이 서울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기도 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은 고개일수록 애환도 깊은 법이다. 도고내고개에 얽힌 사연을 들어 보자. 설월리 토박이 김정관[1932년생] 씨에 따르면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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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자연마을. 조선시대 선조·광해군·인조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영정(影幀)을 모신 사당이 있어서 영당말[影堂洞]이라 하였다. 광복 직후까지 전주이씨 익녕군파만 살아 인근에서는 이씨촌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영당말은 조선 전기 태종의 손자 익녕군의 부인인 평양조씨의 묘를 마을 뒤[소하동 산137번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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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광명3동 천왕교에서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박달동에 연결되는 도로. 2009년에 광명시에서 도로명을 재정비하면서 기존의 광덕로 구간 중 광명경찰서에서 철산대교에 이르는 도로를 디지털로로 변경하고, 천왕교에서 광명경찰서까지의 기존의 광덕로 구간을 오리로에 포함시키면서 도로명을 오리로로 변경하였다. 오리로는 광명 지역의 인물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의 호를 따서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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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발의 묘. 이발(李潑)[1544~1589]은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을 계기로 일어난 기축옥사에서 모반에 가담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고문을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때 82세의 노모와 8세 아들도 형벌 끝에 죽음을 당하였는데, 형 이급(李汲), 아우 이길(李洁)도 죽음을 당하였다. 당시 노모는 형벌이 너무 지나치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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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광명시는 경기도의 남서부 중앙에 자리하여 북쪽과 북동쪽은 서울특별시 구로구와 금천구 시흥동, 남동쪽과 남서쪽은 경기도 안양시, 시흥시와 경계를 이룬다. 광명시는 광주산맥 끝자락인 수리산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가학산(駕鶴山)[220.2m], 서독산(書讀山)[180m], 구름산(雲山)[230m], 도덕산(道德山)[183.1m]으로 이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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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전쟁을 겪었던 사람이라면 이 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설월리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기억은 피난민으로, 의용군으로 겪었던 생생한 전쟁의 두려움과 긴장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전쟁 통에서 지켜 낸 자식과 가족, 국가가 있었다. 당시 30세였던 설순금[1921년생] 씨의 전쟁에 대한 기억은 아련하다. “우리 집은 폭격당하지 않았어. 피난민이 외양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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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자연마을. 큰말이라 불리는 설월리에 비해 마을 규모가 작아서 작은말이라 하였다. 작은말은 영당말에 살던 전주이씨 익녕군파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이루어진 마을로 조선 말기 시흥군 서면 소하리에 속하였다. 1964년 시흥군 서면 소하4리에 속하였고, 1981년 시제 실시로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속하였다.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소하2동 5통이다. 시제가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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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최씨가 광명 지역 일대에 뿌리를 내린 것은 약 400년 전이다. 설월리에 전주최씨가 입향한 것은 그 즈음으로, 양주에서 이거(移居)한 전주최씨가 노온사동 장절리로 갔다가 곧이어 일부가 설월리에 정착했다고 한다. 2010년 현재 설월리에는 전주최씨 28대부터 30대 정도가 세거하고 있다. 전주최씨야말로 설월리의 터줏대감인 셈이다. 광명시가 도시화되기 전인 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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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월리에 들어서서 거닐다 보면 그 정겨움에 빙그레 웃음 짓게 하는 것이 있다. 자연을 닮은 모습, 아니 자연 그대로 얼기설기 쌓아 놓은 까만 돌담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담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은 돌담도 많다. 아마도 밭에 나뒹구는 돌들을 집 주위에 둘러 모아 놓은 모습에 가깝다. 이웃이라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저녁 찬거리가 뭔지 곁눈질도 가능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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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광명 지역의 종교 역사는 도시화되기 이전 토박이 주민들이 관습적으로 믿어 왔던 토착 신앙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20세기 초 초가집에서 시작된 개신교 교회, 1956년 소하동에 설립된 불교 사찰, 1975년 설립된 천주교 광명성당 등 지역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점차 다양한 종교들이 교세를 확장하였다. 1981년에는 통일교,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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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 집성촌은 우리나라 전통 사회의 한 특징으로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함께 모여 사는 촌락을 말한다. 집성촌이 형성된 시기는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 보기도 하지만, 조선 전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17세기 이후에 정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집성촌의 형성은 가족 제도와 친족의 범위, 혼인, 상속 제도와 관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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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월리로 들어가는 골목길에서 대로 맞은편으로 보면 서면초등학교가 있다. 평범해 보이는 초등학교지만 역사로 말할 것 같으면 광명시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이다. 1927년 3월에 서면공립보통학교로 출발한 서면초등학교는 그동안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했다. 초창기 졸업생은 이미 작고했거나 생존해 있다면 이미 아흔 살은 훨씬 넘었을 것이다. 소하2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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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자연마을. 1970년대에 새로 지은 58가구와 기존의 구옥을 포함하여 70동마을이라 하였다. 경기도 시흥군 서면 소하4리에 속했던 지역으로, 1970년대 설월리 출신 이영기(李永基)가 포도밭을 일구고 살면서 포도밭에 건물을 짓고자 70가구 건축 허가를 받았으나 58가구만 짓고 중간에 그린벨트 제한 구역에 포함되면서 건축이 제한되었다. 처음에는 텃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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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리[능말]는 동쪽으로는 한치고개를 사이에 두고 하안동 밤일마을과 경계를 이루고, 서쪽으로는 마을 앞에 있는 목감천을 경계로 시흥시와 맞닿아 있다. 또한 북쪽으로는 음배고개를 경계로 원노온사와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동창골과 경계를 짓는다. 이렇듯 아방리[능말]로 통하는 길은 마을 주민들의 동선을 알려 주는 지표가 된다. 주민들이 마을 밖으로 나가는 동선을 중심으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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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가 주업이었던 설월리 마을에서도 여타 농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두레 공동 노동이 마을 공동체의 근간을 이루었다. 보통 20~30여 명이 두레 공동 노동에 참여했는데, 작업 시간은 아침 해가 뜰 무렵인 7시에 시작해서 저녁 해가 질 때까지였다. 설월리에서는 두레 공동 노동 조직의 두레원들을 통솔하는 사람을 ‘수건’이라 했다. 수건은 공동 노동의 지휘와 통솔은 물론 작업 계획까지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