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상여꾼이 들려주는 설월리 장례풍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A010203
한자 喪輿-雪月里葬禮風習
지역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설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학

올해로 90세가 되는 임정동[1921년생] 씨와 79세가 되는 김정관[1932년생] 씨는 설월리에서 행해졌던 장례풍습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었다. 임정동 씨는 상여 소리꾼이었고 김정관 씨는 그와 함께 소리를 받고 장례 절차를 직접 수행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최문락 씨가 제공한 사진들과 함께 두 분이 증언한 설월리의 장례풍습을 채록해 보았다.

[초상이 나면 동네 사람들이 궂은일 다했지]

김정관 씨에 따르면, 예전에는 동네에서 초상이 나면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모든 일을 다 해 주었단다.

“동네에 초상이 나서 빈소가 마련되면 막걸리 한 되씩 들고 가서, 각자 가져온 걸로 먹으며 밤새워 일을 봅니다. 남자가 죽으면 동네에서 염습하는 사람이 하고 여자가 죽으면 집안 친척들 중에서 하고 남들한테 맡기지는 않았어요. 이 동네에서도 염을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선배들이 주로 염을 하고 나는 주로 산에서 하는 일을 많이 했어요. 땅을 파서 속 광장 짓는 일. 이 동네에서는 내가 거의 모두 했어요.

경제력이 있는 사람은 지관이 와서 산소 자리, 방향, 봉분 쌓는 것을 지시하고, 없는 사람들은 공동묘지에 가서 빈자리를 찾아 방향을 보고 합니다. 직접 삽으로 겉 광장, 속 광장을 파곤 했어요. 관째 쓰는 사람도 있지만, 공동묘지에 쓰는 사람은 관째 묻는 사람은 없었어요. 시체는 모시고 관은 불태웠습니다.

시체 위에 홍대 덮고 흙으로 채우는데, 걸리는 시간은 거의 하루 종일, 3~4시까지예요. 많으면 6명, 보통 4명. 주로 4명이 2명씩 조를 짜서 일하고 쉬고 교대로 산일을 했어요. 설월리 산일은 거의 다 했습니다.”

[없는 집은 상여 비용까지 도로 줬지]

설월리에서 상여 소리꾼으로 따를 사람이 없었던 임정동 씨는, 그래서 마을에 초상이 나면 누구보다 바빴다고 옛날을 회고하였다.

“초상이 나면 이장들하고 동네 사람 몇몇이 모여 합의를 해요. 화장할까, 묻을까를 정해. 산에 가서 산소를 쓴다 하면 상여 준비하고. 젊은 분들이 준비하지. 그날은 내가 어딜 못 가. 동네 이장이 불러. 상여 나갈 때 내가 요령 들고 선소리 주고. 산소 쓸 때에 북도 치고. 선소리를 줘야 달구방아를 찧지. 나무때기 들고 달구방아를 치죠. 달구방아를.”

김정관 씨에 따르면, 설월리에서는 1990년대 초까지 초상이 나면 마을 안에서 자체적으로 상을 치렀다고 한다.

“상여 쓰고, 소리 줘서 나가고 한 지도 얼마 안 됐어요. 없어진 지가. 소리 주는 분[임정동 씨]이 저 너머 사는데 지금 연세가 아흔이 됐어요. 요령 흔들어서 소리 주고 산에서 소리하고 달고 받고. 소리 주는 사람한테 따로 맡기니까. 우리는 뒤에서 따라 달고 받고 하지…… 여가 없어진 지 얼마 안 됐어요. 지하에 다 보관했었는데. 여기는 큰 상여로 열둘이 들어요. 대중없어요. 여덟도 들고, 보통 열둘이 많아요.”

설월리에서는 상여가 나가면 상갓집에서는 수고비로 돈을 봉투에 넣어서 상여를 묶은 새끼줄에 끼워 넣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돈을 모아서 상여를 메고 간 사람들이 수고비 조로 나눠 가졌는데, 어느 해인가 임정동 씨가 형편이 어려운 상주한테는 돌려주자고 한 뒤로는 관행처럼 돌려주었다고 한다.

“상여가 나가면 그 집 사위라던가 집안네들, 후장꾼들이 죽 따라오는데, 자기들 마음대로 돈을 봉투에 넣어서 내가 상여에 길게 매달고 잡고 가던 새끼줄에 끼어 넣어요. 많이 나올 땐 몇 십만 원이 나오죠. 아 옛날에는 메고 간 사람들이 나눠 먹었어. 근데 내가 딴 의견을 말했지, 우리기 쓰지 말고 모두 걷어서 상주를 주자고. 그러고 제삿날 그 돈으로 돼지라도 잡아서 술이라도 먹자. 이래 가지고 상주를 다 주었어. 그런데 소용없어, 그만이야. 나중에 아무것도 없어. 괜히 헛일한 거여. 그것도 저것도 없어지고. [「상여 소리」는] 내가 60살 넘도록은 했어. 내가 칠십 넘으며 자연스레 없어졌어. 경로당 짓고도 상여가 있었는데 그 뒤로 없어진 거야. 지금은 다 병원에서 죽으면 영구차로 다하지 뭐. 그렇게 없어졌어.”

한 번 상을 치를 때면 대강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김정관 씨가 옛 기억을 더듬었다.

“[상여 비용은] 대중없으나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 그리고 없는 집은 돈이 나와도 일을 다 치르고, 나온 돈을 도로 줍니다.”

[정보제공]

  • •  임정동(남, 1921년생, 소하2동 설월리 주민, 1945년부터 설월리 거주)
  • •  김정관(남, 1932년생, 소하2동 설월리 주민)
  • •  최문락(남, 1939년생, 소하2동 설월리 주민, 동정자문위원장)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