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E020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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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 |
집필자 | 신상구 |
선질꾼이 지난 자리는 도부꾼이 이어 받는다. 도부꾼은 주로 여자들이 하는데, 한국전쟁이 발발 후 미망인들이 많이 생겨나고 생계를 위해 그들은 울진의 생산물을 가지고 직접 십이령을 넘어 각종 곡식으로 바꿔 시장에 내다 팔았다.
한국전쟁이 발발 후 남성들로 이루어진 선질꾼의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 자리는 대신 전쟁에서 살아남은 하지만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도부꾼들이 자리 잡게 된다. 그들은 먼길 봉화까지 가지는 않았다. 가져온 물품이 산골에서 곡식으로 바꿔진다면 그 자리에서 숙박 후 울진읍으로 돌아왔으며, 종종 물건을 모두 팔기 위하여 집집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울진~샛재~소광리~봉화를 도보로 왕래하며 장사를 하였지만 국도 36호선이 들어선 1986년 이후에는 버스를 타고 장사를 다녔다. 완행버스를 이용하면서 울진과 봉화를 오가며 그들은 물건을 팔았는데, 이 속에는 미역, 소금, 생선 등이 있었으며 돌아오는 버스에는 쌀과 잡곡, 고추, 감자 등이 있었다.
십이령마을에서 도부꾼들은 종종 선질꾼과 구분되어 다른 인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두천마을에서 도부꾼들은 도보꾼이라고도 불리면서 그들은 소를 몰고 다니면서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도보꾼들은 주로 남성을 지칭하며, 주막에서는 주로 투전으로 시간을 보내는 도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마을에서는 도부꾼들이었다. 일명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앞서 설명되는 도부꾼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도부꾼에 대한 이러한 인상은 일부 사람들에게 전해져 오는 것으로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말이 와전되어 잘못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울진과 봉화를 오가며 상거래를 행한 도부꾼은 앞서 주로 여자들이 담당하는 등짐장사와 유사한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선질꾼을 대신하여 십이령 고개길 마을 주민들이 필요한 물건들을 팔았으며, 내륙과 거리가 있는 울진읍에 필요한 물건들을 대신 나르는 일을 이 도부꾼들이 맡아서 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