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E02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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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 |
집필자 | 신상구 |
십이령을 넘나들며 울진과 봉화 지역을 누볐던 선질꾼에 대한 명칭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등금쟁이, 바지게꾼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선질꾼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행동과 또는 생김새에서 비롯된 새로운 용어이다. 김도현은 「울진 12령을 넘나든 선질꾼과 그 문화연구」에서 이들을 부르는 명칭은 선질꾼이었으며, 바지게꾼은 후대에 새로 생성되었고, 등금쟁이는 일부 마을에서 부르는 명칭이 구전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이러한 명칭에 대한 입장은 두천리 마을사람들을 통해서도 확인되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이전부터 선질꾼이라 지칭하였고, 오늘날에 바지게꾼놀이에 의해 바지게라는 명칭을 알게 되었다고 평한다.
선질꾼이란 명칭은 ‘지게를 받쳐놓고 쉰다하여 선질꾼’, ‘질서있게 길을 간다고 하여 선질꾼’, ‘계속 장사를 다니다고 하여 선질꾼’에서 비롯되었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행동양식과 모양새 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유추한다. 이외 등금쟁이는 ‘등에 지고 다니며 물건을 판다고 하여 등금쟁이’, ‘등짐을 지고 다닌다고 하여 등금쟁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 역시 등에 짐을 가득 싣고 다니는 그들의 모양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바지게꾼은 ‘행상꾼들이 바지게를 지고 다닌다고 하여 바지게꾼’이라 부르는데 이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없는 반면 오늘날 일반화된 것은 ‘12령바지게꾼놀이’가 보급화되면서 일반화된 용어로 보인다. 하지만 선질꾼에 대한 용어는 ‘지게를 받쳐놓고 쉰다’에서 비롯된 어휘로 판단된다. 이는 선질(立負) 즉 서서 지게짐을 지고 있다는 뜻으로 선질꾼의 특징을 잘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게꾼의 경우 쪼그리고 앉아서 지게짐을 지는 반면 쉴 때도 앉아서 쉬는 것이 보통인데, 선질꾼은 그렇지 못하고 서서 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판단된다.‘길을 가다가 쉴 때는 지게를 풀어 내려 놓지 않고 진 채 긴 지게 막대기를 이용하여 이를 가로질러 지게에 맨 짐을 밭치면서 쉬었다’, ‘쉴 때 물미 작대기를 똥구멍에다 받쳐서 놓고 쉬었다’등 마을 사람들이 기억하는 선질꾼도 이 이름을 뒷받침한다.
그들의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광목으로 머리 수건을 두르고 이 때 머리에 동여맨 수건은 매듭을 길게 하여 옆으로 오게 하여 흐르는 땀을 닦는다. 아래위로 흰 광목으로 된 옷을 입고 겨울에는 두툼한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여분의 짚신을 쪽지게에 달고 겨울에는 발에다 감발(짚신을 신기 전 발에 천을 감는 것)을 감고 다닌다. 마을 사람들이 기억하는 선질꾼의 모습은 비슷한 상을 가진다. 하지만 그들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마을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상투를 틀지 않은 늙은 총각들이 많았다’, ‘약간 젊으면 30~40대이고, 대부분 40대 이상이었다’, ‘60대가 넘는 노인들이 꽤 있었다’ 등의 이야기는 당시 선질꾼들의 평균 나이가 꽤 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하루를 꼬박 등짐을 지고 걸어서 온 이들이며 오랫동안 햇빛에 노출되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보기보다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외모로서 나이를 판단하기는 힘들다. ‘덩치나 체력이 좋았던 사람들’, ‘기운이 매우 쌤’등 건장한 체격의 선질꾼에 대한 기억도 사람들은 동시에 가진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선질꾼의 나이를 장담하기는 힘들며, 추정하건데 그들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건장한 체격 소유자들로 생각 들며, 종종 60대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질꾼의 외모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의견이 더 분분하다. 건장한 외간 사내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던 아낙들과 판단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그들의 외모에서 많은 것을 판단하였다. ‘아이 잡아먹는 문둥이들’, ‘옷이 더러워 무섭게 보였다’, ‘싸움을 자주 해 무서웠다’ 등 땀과 흙으로 뒤덮인 그들의 옷과 햇빛에 그을린 검은 얼굴은 그들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으며, 결국 ‘자식도 없고 식구도 없어서 그래 사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선질꾼’이라는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반면 그들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대면했던 마을의 남자들과 주막을 운영했던 사람은 ‘의리있고 마음씨 좋은 사람’, ‘건들지 않으면 좋은’ 우직한 남성상으로써 그들을 기억하기도 한다.
두천을 지나가며 머물렀던 선질꾼의 모습은 마을 주민들의 경험에 의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선질꾼과 나쁜 기억이 있거나 또는 그들을 멀리서만 바라보았던 이들에게 선질꾼은 지저분하고 무섭고 싸움패 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반면 가까이서 한번 정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졌던 이들에게 선질꾼은 우직하게 생계를 위해서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다니는 사람으로 비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