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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된 바깥말래 성황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E010104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
집필자 신상구

두천1리 바깥말래에서는 골마와 주막거리에 위치한 할매와 할배에서 각각 제를 올렸다. 큰 마을인 골말은 할배를 모신다고 하여 이곳의 당은 ‘큰당’이라 불렀으며, 주막거리는 할매를 모신다고 하여 ‘할매’라 부른다. 그리고 할배당에서는 음력 정월 15일, 할매당에서는 다음날이 16일에 각기 따로 제를 올렸다. 두 마을이 따로 제를 올렸지만 동제에 관련된 모든 행사 및 문서는 함께 관리를 하였다. 음력 11월 25일이 되면 골마와 주막거리 사람 모두가 이장집에 모여 ‘당계공사’를 행한다. 당계공사는 당제에 관련된 일을 의논하고 제주는 선출하는 것으로 제사를 주관한 제관은 각 마을에서 3명씩 선출한다. 제를 지낼 당시만 하여도 제관을 선출하는 것은 엄격한 규칙에 따랐다. 집에 임신한 여자나 또는 월경을 하는 사람도 없어야 했는데, 비단 여자만이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 우마도 임신하지 않아야 했으며, 상주가 있는 집은 더욱더 허락되지 않았다. 생기를 맞추는 것은 기본이며 부부간에도 사이가 좋고 효도하는 말 그대로 평판이 좋은 사람이 선정되었다.

제주가 선정이 되면 3명 가운데 제관을 주도할 사람과 옆에서 이를 도와줄 사람을 구분한다. 그러나 제주로 선정된 3명 모두는 제일까지 개고기를 먹어서도 안되며, 바깥출입을 금하며 몸을 깨끗이 한다.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금기사항은 3일동안 지키는 것으로 간소화되기도 하였다.

제주는 제를 지내기 1주일 전 새벽 제주 3명이 모여서 왼새끼로 금줄을 만들고 이를 성황당 주변과 자신의 집 그리고 입구에 친다. 그리고 마을의 주산인 ‘악구산’ 양지바른 곳에서 황토를 퍼 성황사 주변을 뿌리고 자신의 집에도 뿌려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 제일 하루 전 울진장에 가서 제물을 구입하는데, 과일(삼실과), 채소국, 밥, 탕, 백설기, 고기(치자가 들어가지 않은 물고기)를 구입한다. 두천에서 울진까지는 걸어서 꼬박 하루가 걸리는 먼 거리이기 때문에 다른 마을과 같이 당일 새벽이 아닌 전날 물품을 구입하며 구입한 물품은 제주 중 제를 주관하는 이의 집에 갖다 놓는다.

제일이 되면 저녁 7시 경에 준비된 제물을 지게에 지고 성황당으로 향한다. 제일 저녁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는데, 혹여나 제물을 지고 가는 제관과 부딪히게 되어 부정을 탈 것을 의식해서이다. 제물을 지고 도착한 제관들은 먼저 주변에 숯을 묻고 물과 소금을 뿌려서 부정을 친다. 이후 제물을 제단에 진설하고, 제주가 술을 올리며 축을 읽는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축이 없어져 간단한 고축으로 끝내며, 이후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동네소지-성씨별소지-우마소지-외지로 나간 젊은이 소지 순으로 행하며 간단한 음복으로 제를 끝낸다. 제를 마친 후 한지로 약간의 음식을 싸서 제당에 놓아두며 나머지 음식은 다시 제관의 집으로 가져 오는데, 정월 보름 아침이 되면 골말 사람들만 모여서 함께 음복한다. 주막거리 제의도 이와 유사한 순의 진행되며, 마찬가지로 16일 제가 끝난 17일 아침이 되면 주막거리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음복을 한다.

현재 골말과 주막거리 모두 동제가 중단되었다. 골말은 주막거리보다 약 10년 앞선 1990년대에 중단되었으며, 주막거리는 2001년 마지막 제를 올리고 중단되었다.

골말이 중단한 이후 함께 행하던 당계공사는 주막거리에서만 행하였으며, 두천리 마을기금으로 운영되던 동제는 주막거리 주민들이 얼마씩 각출하여 제비를 마련하였다. 두 마을 모두 동제가 중단된 것은 인구 이동에 따른 젊은 사람의 부재가 원인이다. 여러 가지 금기사항을 지키고 그것을 지킬 만큼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던 사람들은 곧 성황제가 번거로움을 다가왔고 그리고 신성성을 부여해서 지키지 않을 것에 대한 부담감에 성황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동제에 대한 마지막 제를 올릴 때 그들은 ‘이제 훨훨 날아가십시오. 천년만년 뒤에 만납시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의 책임감에서 자유롭게 놓아준다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더 이상 모시지 않아도 된다는 의무감에서 해방되고자 하였다. 두천1리 바깥말래에서는 2001년 현재 기억속으로만 동제가 남았으며,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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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천1리 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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