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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처자식 못 델꼬 왔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D030201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4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명동

함경남도 흥원군 삼호면 신성리에서 태어난 심정섭은 1950년 12월 22일날 북한에서 이곳으로 내려왔다. 그의 나이 30살이었다. 함경도의 마을은 어릴 때부터 거주했던 고향이었다. 마을에는 부모님과 형님, 사촌 등 형제들이 살았으며, 그의 어린 자식들과 처가 살고 있었다. ‘내려갔다가 금방 오꾸마’라는 말을 남기며 추운 겨울날 그는 배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못 볼줄 알았다면 절대 놓아두지 않았다. 어떻게든 함께 왔을 것이다. 하지만 추운 겨울 자식들이 혹여나 피난길에 잘못될 것 같아서 그래서 북한에 남겨두었다. 그가 고향을 떠난 것은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서였다.

당시 이북청년회와 서북청년회 사람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청년들을 마구 잡아갔고 그렇게 군대에 끌려갔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배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떠나는 날 금방 온다는 말과 함께 오후 네 시 배에 몸을 실었다. 16척이 함께 출발했는데, 겨울 찬바람에 베옷을 움켜쥐고 배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출발한 배를 향해서 뒤늦게 온 청년회 사람들은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마을에서 가장 높았던 뒷산에서 배를 향해서 총을 쏘는데 그 거리가 약 천미터는 되었다.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으며,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물게끝’이라는 데가 있어 그곳까지 가면 안심하게 바다를 향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날아오는 총을 피해서 바다로 향했다. 그렇게 배는 흘러 무사히 물게끝이라는 곳에 이르게 되었고, 날이 새고 온 곳이 바로 흥남이었다. 흥남의 바다는 온통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당시 피난을 가면서 미군들이 바다에 밀가루를 모두 던져버려서 바다는 온통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였는데 도착한 곳은 포항이다. 포항은 해군하고 해병대가 작전을 하고 있는 곳이라 내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뱃머리를 돌린 곳은 구룡포였다.

구룡포에서 한달간 머물고 거제도로 갔다. 북한군을 피해 남으로 남으로 피난을 간 곳이 거제도였다. 거제도에서 2년을 머물고 다시 죽변으로 올라왔다. 밀리기만 한 남한군이 북한군을 어느 정도 물리치고 북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죽변에 왔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휴전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배운 것이 뱃질인 사람들이 마땅히 살 곳은 죽변말고 없었다. 그나마 죽변은 자신들의 고향 함경도에서 생활환경도 비슷했기 때문에 함께 배를 탄 사람들은 북으로 가기 전까지 죽변에서 살자고 이야기하고 이곳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5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보낸 것이다.

그러나 늘 함경도에 두고 온 가족들의 생각은 머리속 한곳을 자리 잡는다. 북한에 대한 소식이 전해질 때문에 걱정이 앞을 가린다. 먹을 것도 없고, 춥다고 하는데 고향 사람들은 그리고 어린 자식들은 잘 견디고 성장을 했는지 궁금하다. 추워도 데리고 왔어야 하는데 데리고 오지 못함이 늘 한쪽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일년을 정신없이 생활하다가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되면 ‘금방 갔다 오꾸마’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그날이 떠오르면서 고향의 처자식들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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