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17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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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漢柱 |
영어음역 | Choe Hanj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전인식 |
[정의]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활동사항]
1283년(충렬왕 9)에 원나라 세조가 일본을 정벌할 때 명주군(溟洲君) 최한주(崔漢住)도 종군하게 되었다. 그런데 동해 바다에서 뜻밖의 회오리바람을 만나 쇠닻이 바위틈에 걸려 닻줄이 끊어지려 하자 최한주가 향을 피우면서 하늘에 아뢰기를 “이 한 몸을 희생하여 여럿의 목숨을 구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다.
최한주는 쇠망치와 ‘정’을 가지고 물속으로 들어가 닻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물 위로 올라와 보니 배는 이미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떠다니는 널빤지를 타고 살아나왔다는 이야기와 자라의 등을 타고 육지로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상훈과 추모]
향인(鄕人)들이 비석을 세워 이 사실을 모두 기록하였으나, 비의 소재와 흔적이 불분명하였다. 1578년 『율곡전서(栗谷全書)』 최수헌 신도비에서 자료를 얻어 1970년 울진군 관내의 해안 일대를 조사하였으나 찾을 수 없었다.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고비(古碑)를 훼파(毁破)한 것으로 확정하고 당시 고비재건립추진위원장 최익성(崔益晟)과 유림의 협의를 거쳐 울진군수 김일규(金一圭)의 찬으로 1971년 11월 28일에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 연호정 옆에 새로 기적비(紀績碑)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