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1651 |
---|---|
한자 | 防禦使谷 |
영어의미역 | Folk Tales about Origin of Bangeosagok |
이칭/별칭 | 「방우실골」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1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조은희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1리에서 곽재우 장군과 임경업 장군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곽재우 장군이 임진왜란을 끝내고 소실의 고향에 머물면서 단순히 휴양한 것이 아니라 왜적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채록/수집상황]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1552~1617]는 임진왜란을 끝낸 후 휴양 차 소실의 고향인 장정동에 10여 년간 머물렀다. 곽재우는 이곳에 살면서 정자를 짓고 죽세공으로 생계를 이었다고 한다. 방어사골에 살면서 장정동 동쪽에 있는 산의 정상 부근에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고자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큰 바위에는 구멍이 뚫린 흔적들이 남아 있다.
방어사곡의 명칭은 임경업의 방어사 직위와 관계된 것으로 보인다. 방어사(防禦使)는 인조 때 조선시대 종2품(從二品) 서반 외관직으로, 경기도·강원도·함경도·평안도의 요지를 방어하기 위해 두었던 직위이다. 임경업은 1631년 검산산성(劒山山城) 방어사에 임명되었고, 1633년 2월 기복(起復)[상중에 벼슬에 나아감]하여 청북방어사(淸北防禦使)에 임명되었다. 따라서 임경업이 울진군에 들어와 방어사곡에서 왜구의 침략에 대비한 것은 적어도 1633년 이후의 일로 추정된다.
[모티프 분석]
「방어사곡」의 모티프는 곽재우가 이곳에 살면서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는 것과 임경업 장군이 방어사로 임명되어 와서 붙여진 지명 유래에 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