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6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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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萬英 |
영어음역 | Hwang Manyeong |
이칭/별칭 | 국오(菊塢),응칠(應七)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진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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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
성별 | 남 |
생년 | 1875년 6월 20일 |
몰년 | 1939년 3월 7일 |
본관 | 평해(平海) |
대표경력 | 대한국민의회 서간도 대표|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부 차장 |
[정의]
일제강점기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평해. 호는 국오(菊塢), 자는 응칠(應七). 해월 황여일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황수이다.
[활동사항]
청년 시절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조선의 현실과 운명에 관심을 가지고 민족의식을 키웠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곳곳에서 의병이 봉기할 때, 울진에 주둔하고 있던 성익현(成益鉉) 의병단에 군자금 800냥을 지원하면서 의병 활동을 격려하였다. 1907년 신민회(新民會)가 결성되자 회원으로 가입하여 기성면 사동리에 대흥학교(大興學校)를 세우고 인재 양성에 힘을 쏟았다.
1912년 만주로 망명하여 이시영(李始榮) 등과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세운 신흥학교(新興學校)의 재정을 담당하였으며, 1913년에는 노령(露領) 지역으로 건너가 그곳의 독립운동가와 교류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연해주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에 참가하였고, 9월 주진수(朱鎭洙) 등과 함께 만주로 파견되어 순회강연을 개최하면서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다.
1925년 정의부(正義府) 독판(督辦) 이상룡(李相龍)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에 취임하기 위해 길림에서 상해로 갈 때 동행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25년 8월에는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국내로 들어왔으며, 1927년 신간회(新幹會)가 성립되자 신간회 울진지회 회장에 선임되어 민족협동전선운동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6년 국오선생기념사업회에서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월송정 입구 평해황씨 시조단]에 기념비를 세웠다. 1995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