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6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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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原州鎭衛隊蔚珍戰鬪 |
영어의미역 | Uljin Battle of Wonju Guards Corps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장희흥 |
성격 |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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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907년 9월 |
종결연도/일시 | 1907년 9월 |
발생(시작) 장소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
관련인물/단체 | 민긍호|최경호 |
[정의]
1907년에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서 벌어진 원주진위대와 일본군 간의 전투.
[역사적 배경]
1907년 일본이 조선 군대의 해산령을 내리자, 그 해 8월 이에 불복한 원주진위대는 민긍호(閔肯鎬) 특무의 인솔하에 일본군경과 항전하였다. 선봉대는 제천에서의 일본 병사와 교전, 단양에서의 일병과의 격전, 다시 영동의 의병과 합세하기 위해 9월 울진으로 오는 도중 봉화 각화사(覺華寺)에서 일본군과 충돌하였다.
[경과]
대오(隊伍)를 정비하여 십이령을 넘어오는 도중 울진읍에 일본군대와 순경·검찰 무리들이 점거하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전투부대 하사관이었던 최경호(崔慶鎬)와 같이 한밤중에 읍을 완전 포위하였다. 또한 민긍호는 망향대에서 진두지휘하여 왜군의 진지를 공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의분에 넘친 한 병사는 적이 주둔한 곳을 부수기 위해 담벼락에 계단을 만들어 결사 항전하다가 전사하였다.
[결과]
전투 결과 일본군은 죽변으로 도주하였으며, 추격 중에 일본 순사부장 염원영태랑(鹽原榮太郞)을 사살하고, 한인순검(韓人巡檢) 최(崔)는 왼쪽다리 하부에 관통상을 입었다. 또한 도(都)·김(金)·한(韓) 등과 일본순사 마사요시 니시무라[西村正義]는 소나무 숲에 은신해 있다가 현내(縣內)에서 어선을 타고 포항으로 도주하였다. 교전이 끝난 뒤 읍민들은 민긍호를 위해 잔치를 베풀고, 전사자는 오노실골[五老室谷]에 안장하였다.
이후 민긍호는 강릉 서부 산악지대를 거쳐 원주 문막에서 교전하다가 전사하였다. 광복 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살던 홍주섭(洪珠燮)의 증언으로 울진교전에서 전사한 병사의 무덤을 확인하고, 건국울진동지회 간부들은 무덤에 ‘원주진위대순국병사지묘(原州鎭衛隊殉國兵士之墓)’라고 한 목비(木碑)를 세웠다. 1977년 7월 4일 임두환(林斗煥) 울진교육장 주관으로 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