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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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鎭斗 |
영어음역 | Jang Jindu |
이칭/별칭 | 군칠(君七),호랑이 장군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지장동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전인식 |
성격 |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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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지장동 |
성별 | 남 |
생년 | 1857년 |
몰년 | 1896년 |
본관 | 울진(蔚珍) |
[정의]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울진(蔚珍). 이명은 군칠(君七). 장말익(張末翼)의 24세손으로 아버지는 장사묵이다.
[활동사항]
1882년 일본 어선 5척이 죽변 앞바다에 들어와 불법으로 해삼을 잡자 울진유진소에서 명령을 받은 중군장 최재린이 포병 50명을 이끌고 죽변곶 죽림에서 잠복하였다. 어선 3척이 죽변항에 상륙하려 하자 포병들이 사격을 가하여 일본인 31명을 사살하였는데, 이때 장진두도 가담하여 민첩하고 용감하게 싸웠다.
1894년 청일전쟁으로 일제 침략이 노골화되고 이듬해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자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났다. 1896년 장진두는 의병장 김하락(金河洛)·유인석(柳麟錫)·이강연(李康秊) 등과 합류하여 영동 남부 중군장(中軍將)이 되어 일본 헌병과 일본 앞잡이들을 응징하는 데 큰 전과를 올려 ‘호랑이 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강원도 삼척군 하장면 삼미원(三味院)[상토미리]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