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3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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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思進神道碑 |
영어의미역 | Spirit-path of Yun Sajin |
이칭/별칭 | 조봉대부특수영동교양관황림선생신도비(朝奉大夫特授嶺東敎養官篁林先生神道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 산10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인표 |
성격 | 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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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988년 |
관련인물 | 윤사진[1713~1792] |
재질 | 화강암 |
높이 | 269㎝ |
너비 | 62㎝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 산105 |
소유자 | 파평윤씨 |
[정의]
1988년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에 건립된 황림 윤사진의 신도비.
[개설]
윤사진(尹思進)의 호는 황림(篁林)이며 본관은 파평이다.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의 증손이며, 삼족당(三足堂) 윤여룡(尹如龍)의 손자이다. 정조 때 『정관치설(井觀痴設)』·『통서연의(通書衍義)』·『잡저(雜著)』 등을 저술하였다. 이 저서와 윤사진의 행적을 울진현령과 강원감사가 정조에게 올렸다.
정조는 벽지 고을에 이처럼 학행이 높고 독실한 선비가 있으니 진실로 기쁘다 하고, 또 이는 한 고을의 어진 선비요 작은 고을의 충신이라 칭찬하면서 조봉대부특수영동교양관(朝奉大夫特授嶺東敎養官)으로 임명하였다. 저서들은 판각하여 간행하도록 명령하였으며, 간행된 유물은 삼조어비각(三朝御批閣)에 보관하였다. 윤사진은 1793년(정조 17)부터 몽천서원(蒙泉書院)에 배향하였다.
[건립경위]
황림 신도비는 몽천서원 터에 건립되었다. 몽천서원은 우암 윤시형을 배향하고자 1693년(숙종 19년)에 창건하였고, 1797년(정조 21년)에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1868년(고종 5년)에 철폐되면서 몽천서원 터에는 삼조어비각만 남아 있었는데 후손과 유림이 몽천당을 재건하여 유덕을 기리게 되면서, 1988년 서원 터에 윤사진 신도비를 세우게 되었다.
[위치]
윤사진 신도비는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 몽촌동마을 삼조어비각 옆에 있다. 울진읍에서 국도 7호선을 타고 남쪽으로 가다가 금매교차로에서 나와 서쪽의 몽천교를 건너 150m를 가면 몽천서원에 도착한다.
[형태]
윤사진 신도비는 화강암으로 제작된 연꽃잎을 새긴 2단의 비좌와 용머리를 조각하여 장식한 지붕[가첨], 비신을 갖추고 있다. 비석의 규모는 지붕 높이 64㎝, 너비 84㎝, 두께 55㎝이며, 비신 높이 182㎝, 너비 62㎝, 두께 32㎝이며, 비좌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가로 130㎝, 세로 96.5㎝, 높이 23㎝이다.
[금석문]
비신의 앞면에 가로 14㎝, 세로 15㎝ 크기 글자가 위의 11자는 세로 2줄로, 아래 7글자는 한 줄로 “조봉대부특수영동교양관황림선생신도비(朝奉大夫特授嶺東敎養官篁林先生神道碑)”라 새겼다. 옆면과 뒷면에는 윤사진의 행적을 적은 비문과 비석의 건립연대 및 비문을 지은 이, 글씨를 쓴 이 등을 새겨 넣었는데 글자의 크기는 가로 4㎝, 세로 3㎝이다. 비문은 이종호가 지었고, 글씨는 외손인 전증하가 썼으며 몽천서원 유생들이 비석을 세웠다.
[현황]
윤사진 신도비 주변에는 삼조어비각 등 문화재와 몽천서원 등이 있고, 우암선생 윤공유허비가 함께 있으며, 후손들의 관심으로 주변이 잘 정비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황림 윤사진은 조선 후기 실학이 꽃을 피우던 정조 임금 때에 성리설, 주역 등을 독자적으로 연구하여 정조의 칭찬을 받았다. 윤사진 신도비는 울진 지역 유림에게 존경을 받던 인물을 기리는 비석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