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353 |
---|---|
한자 | 忠孝堂 |
영어의미역 | Chunghyodang Hall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백영흠 |
성격 | 유교 건축 |
---|---|
건립시기/일시 | 조선 중기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1칸 반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당(堂).
[개설]
충효당에 봉안된 효자 주경안은 20세 때 부친이 학질에 걸려 중태에 빠지자 왼쪽 손가락을 잘라 불에 태워 술에 타서 마시게 하였고, 나이 60세 때 노부(老父)가 종기로 오랫동안 고생하자 엄동설한에 기도를 올려 지렁이를 구해 즙을 만들어 종기에 발라 병을 치료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석단(石壇)으로 축천대(祝天臺)를 만들어 7년 동안 풍우설한(風雨雪寒)을 무릅쓰고 조석으로 조국의 승리를 기원하였으며,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6년 동안 시묘하였고, 문정왕후, 인순왕후, 명종왕후, 인자왕후, 선조대왕이 승하하자 각 3년 복상하였다. 1578년(선조 11) 생존시에 정려가 내려졌고, 1614년에 79세로 세상을 떠난 후 「삼강록(三綱錄)」에 올랐으며, 영조 대에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추증되었다.
[변천]
신안인(新安人) 효자 주경안(朱景顔)[1536~1614]을 봉안한 당(堂)으로, 「당기(堂記)」는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1574~1656]이 지었다. 1907년에 일본의 병화(兵火)로 타버려 1927년에 구기(舊基)에 중건하였다. 현재 충효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1759년(영조 35) 4월에 다시 세운 주경안 효자비각이 있다.
[형태]
충효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