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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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제작한, 광명시를 예찬한 노래. 광명시는 서울의 남서쪽에 인접한 안양천 변의 저평한 지대인 시흥군 서면 일대가 1981년 시로 승격한 곳이다. 1974년 시흥군 서면 광명출장소가 시흥군 광명출장소로 승격하였고, 1976년 광명출장소 7개 분소가 설치되었다. 1979년 서면이 소하읍으로 승격하였고, 1981년 소하읍과 광명출장소가 광명시로 승격하여 시흥군에서 독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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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광명시의 전신인 시흥군의 도로·철도 등의 기반 시설을 표시한 약도. 재질은 한지이며, 도면 크기는 가로 79.7㎝, 세로 52.4㎝이다. 전체적으로 도로와 철도 그리고 수계가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는 점이 주요 특징이다. 부군계(府郡界), 국도(國道), 면계(面界), 삼등 도로(三等道路), 도로, 하천, 철도, 정거장, 군청, 동리(洞里), 면사무소, 우편국,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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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관감정(觀感亭)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임금이 지어준 관감정」은 광명시의 대표적인 인물인 청백리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퇴관하여 빈한하게 사는 것을 보고, 인조(仁祖)가 관감정을 지어 하사하였다는 정자 유래담이다. 2006년 광명시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광명시지』 제1권의 565쪽에 수록되어 있다. 채록 시기에 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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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기타야마 와카니치[北山若二]가 시흥군 서면[현 광명시] 8개 리의 역사와 문화 등을 조사하여 간행한 향토지. 『서면향토지(西面鄕土誌)』는 시흥군 최초의 초등학교인 서면공립보통학교[현 서면초등학교] 교장 기타야마 와카니치[北山若二]가 당시 시흥군 서면의 소하리, 하안리, 철산리, 광명리, 노온사리, 가학리, 박달리, 일직리 등 8개 이(里)의 향토사를 조사하여 발간한 향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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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경기도 광명시의 전신인 시흥군에서 편찬한 읍지. 『시흥군읍지(始興郡邑誌)』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본이 존재하는데, 전자는 초고본이고 후자는 정서본(精書本)이자 선본(善本)으로 판단된다. 첫째, 표지를 살펴보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본은 ‘광무삼년 십이월(光武三年十二月)’로 되어 있고,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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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경기도 광명시의 전신인 시흥군의 인문 정보를 포함한 전국의 지명(地名)과 지지(地誌) 사항을 작성한 자료. 광명 지역의 일제강점기 지명인 시흥군은 동면(東面), 서면(西面), 남면(南面), 상북면(上北面), 하북면(下北面), 군내면(郡內面) 등의 5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의 경기도 시흥편은 위 5개 면의 기본 정보를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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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있는 근린공원. 가림이란 명칭 유래는 1910년 4월 2일 경기도에서 하평리와 안현리를 합병하여 하안리로 고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1964년 1월 1일 시흥군의 행정리 확장으로 현재 하안주공5단지 인근인 갠이불을 하안4리로 개편하였다. 갠이불은 마을 주위가 우거진 삼림으로 둘러싸여 있어 흡사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래서 가림동(佳林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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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자연마을. 능말과 새터말[노온사동] 사이에 있는 마을이므로 가운데말이라 하였다. 가운데말은 능촌에 살던 강봉서(姜鳳瑞)의 후손인 금천강씨들이 분가하여 정착한 이래 김해김씨·남원양씨 등이 터를 잡은 마을로 조선 말기에는 시흥군 남면 아방리에 속하였다. 1914년 부군 통폐합으로 시흥군 서면 노온사리에 속하였고, 1964년 1월 1일 시흥군 행정리 확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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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이 형성되기 전부터 샘물이 잘 나오고 가재가 많았으므로 가재골이라 하였다. 가재골은 본래 공석골에 속했던 마을로 광복 후 공석골에 살던 창녕성씨가 분가하여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64년 1월 1일 시흥군의 행정구역을 확장하면서 공석골·뒷골과 함께 가학2리에 속하였고,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경기도 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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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가학동은 자연마을인 가골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마을 지형이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과 같아 붙인 지명이라는 설과, 학이 마을을 둘러싼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한다. 가골은 달리 가곡(駕谷), 원가학(元駕鶴)으로도 불린다. 가학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하여 금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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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2차 시흥농민봉기는 1901년 착공하여 1904년 개통된 경부선의 영등포~수원 간 공사에 강제 동원한 데 이어 토지를 대가 없이 수용한 일에 크게 반발하여 군민 2,000여 명이 항거한 사건이다. 1904년 9월 13일까지 6개 면 집강들에게 봉기 계획을 전달하는 한편, 시흥군의 모든 가구마다 한 명씩 반드시 집회에 참여하도록 하여 9월 14일 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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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지역은 남북으로 가학산과 서독산, 구름산, 도덕산이 길게 시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형성된 지역이다. 이 산들을 중심으로 광명동과 철산동, 하안동, 소하동, 일직동, 가학동, 노온사동에 속한 자연마을에 깃들여 많은 사람들이 누대에 걸쳐 살아왔다. 그러나 도덕산 자락의 철산동과 하안동, 광명동 지역은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급격하게 진행된 도시화로 본 모습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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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광명6동에 있는 경기도 교육청 산하의 하급 교육 행정 기관. 경기도 광명교육지원청은 더불어 살아가는 창의적인 민주 시민 육성이라는 목표 아래 공동체 의식을 높이기 위한 인성 교육 강화와 기본이 튼튼한 창의적 인재 육성, 행복한 학교와 차별 없는 교육 복지 구현과 참여와 소통의 교육 문화를 실현하여 광명시 교육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81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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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월리에서는 1927년에 서면공립보통학교[현 서면초등학교]가 개교하여 근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교육이 필요한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청소년들을 비롯해 일반 성인들 중에도 문맹자가 많았다. 1920~1930년대에 걸쳐 광명 지역에서는 문맹 퇴치를 위한 계몽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데, 이는 당시 사회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192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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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있는 치안 행정 기관. 시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 치안 유지 및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한 경찰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1984년 12월 광명경찰서가 신설된 당시 관할 지역은 광명시, 안산시 전역과 시흥군의 1읍 2면이었다. 1988년 10월 15일 안산경찰서가 신설되면서 관할 구역이 조정되어 광명시와 시흥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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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광명(光明)은 해와 달이 잘 비추는 동네여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광명동에서 맨 처음 생긴 마을인 괭매의 지세가 풍수지리상 등잔을 얹어 놓는 기구인 광명두와 비슷해 불을 밝힌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검밝다’는 뜻으로 풀이해 ‘밝은 임금’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전한다. 기록에 따라서는 ‘광명(廣明)’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괭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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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한반도 신탁 통치안에 대해 광명 주민들이 벌인 반대 시위. 모스크바3상회의의 신탁 통치 결정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반탁 운동이 일어났으나, 좌익이 찬탁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좌우익의 이념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미국·영국·소련 3국의 외상들이 모여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고 5년 기한의 신탁 통치를 결정하였다. 보다 중요한 사항은 임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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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광명동에 속하는 행정동. 광명(光明)은 해와 달이 잘 비추는 동네여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광명동에서 맨 처음 생긴 마을인 괭매의 지세가 풍수지리상 등잔을 얹어 놓는 기구인 광명두와 비슷해 불을 밝힌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검밝다’는 뜻으로 풀이해 ‘밝은 임금’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전한다. 기록에 따라서는 ‘광명(廣明)’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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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광명동에 속하는 행정동. 광명(光明)은 해와 달이 잘 비추는 동네여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광명동에서 맨 처음 생긴 마을인 괭매의 지세가 풍수지리상 등잔을 얹어 놓는 기구인 광명두와 비슷해 불을 밝힌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검밝다’는 뜻으로 풀이해 ‘밝은 임금’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전한다. 기록에 따라서는 ‘광명(廣明)’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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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기도 중서부에 있는 시. 광명시는 한반도 중부에 있는 기초자치단체로 경기도 중서부에 자리한다. 북쪽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동과 천왕동, 구로동, 동쪽으로는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동과 시흥동, 남동쪽과 남서쪽은 경기도 안양시, 시흥시와 접한다. 광명시의 동단인 소하1동과 서단인 옥길동 사이 거리는 6.55㎞, 북단인 철산1동과 남단인 가학동 사이 거리는 10.3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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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의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소하2동은 소하동 일부 및 일직동으로 이루어진 동이다. 면적은 7.2㎢로, 광명시 전체의 18.7%에 이르는 도·농 복합 지역으로, 전체 면적 중 69.4%가 그린벨트 등으로 다양한 행정 수요를 필요로 하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1981년 광명시 탄생에 이르기까지 설월리는 옛 시흥군 서면의 행정 중심지로 번성했던 소하리의 대표적인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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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3동에 있는 광명 지역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광명 지역은 1895년 이후 시흥군에 속하였다가, 1981년 7월 1일 법률 제3425호[1981년 4월 13일 공포]로 시흥군 소하읍과 광명출장소를 합하여 광명시로 승격되어 시흥군에서 분리되었다. 1983년 시흥군 소래읍 옥길1리와 옥길3리가 광명시에 편입되었고, 몇 차례 분동을 거쳐 1995년 8개 법정동과 1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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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광명동에 속하는 행정동. 광명(光明)은 해와 달이 잘 비추는 동네여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광명동에서 맨 처음 생긴 마을인 괭매의 지세가 풍수지리상 등잔을 얹어 놓는 기구인 광명두와 비슷해 불을 밝힌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검밝다’는 뜻으로 풀이해 ‘밝은 임금’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전한다. 기록에 따라서는 ‘광명(廣明)’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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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광명동에 속하는 행정동. 광명(光明)은 해와 달이 잘 비추는 동네여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광명동에서 맨 처음 생긴 마을인 괭매의 지세가 풍수지리상 등잔을 얹어 놓는 기구인 광명두와 비슷해 불을 밝힌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검밝다’는 뜻으로 풀이해 ‘밝은 임금’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전한다. 기록에 따라서는 ‘광명(廣明)’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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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광명동에 속하는 행정동. 광명(光明)은 해와 달이 잘 비추는 동네여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광명동에서 맨 처음 생긴 마을인 괭매의 지세가 풍수지리상 등잔을 얹어 놓는 기구인 광명두와 비슷해 불을 밝힌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검밝다’는 뜻으로 풀이해 ‘밝은 임금’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전한다. 기록에 따라서는 ‘광명(廣明)’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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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광명동에 속하는 행정동. 광명(光明)은 해와 달이 잘 비추는 동네여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광명동에서 맨 처음 생긴 마을인 괭매의 지세가 풍수지리상 등잔을 얹어 놓는 기구인 광명두와 비슷해 불을 밝힌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검밝다’는 뜻으로 풀이해 ‘밝은 임금’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전한다. 기록에 따라서는 ‘광명(廣明)’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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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시흥군 지역에서 전개된 항일 운동은 경부선과 경의선 두 철도 건설 과정에서 촉발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이미 1901년 경부선 철도 공사가 시작된 이래 역부의 저렴한 임금과 철도 부지의 무상 수용에 저항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1901년 9월 7일자 『황성신문』에는 경부선 철도의 기공식 이후 시흥 등 지역에서 철도 건설에 동원된 역부(役夫)들이 적은 임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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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현 경기도 광명시]에서 개소한 출장소. 광명출장소는 현 경기도 광명시의 모태가 된 출장소이다. 1970년대에 서울시 영등포구와 시흥군 간의 토지 구획 정리 사업이 계획되면서 광명 지역을 포함하고 있던 시흥군의 행정 구역이 본격적인 조정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1963년 이미 시흥군 서면의 광명리와 철산리가 서울시 도시 계획에 편입되었고, 1966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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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광명동에 속하는 행정동. 광명(光明)은 해와 달이 잘 비추는 동네여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광명동에서 맨 처음 생긴 마을인 괭매의 지세가 풍수지리상 등잔을 얹어 놓는 기구인 광명두와 비슷해 불을 밝힌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검밝다’는 뜻으로 풀이해 ‘밝은 임금’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전한다. 기록에 따라서는 ‘광명(廣明)’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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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조선의 유교 중심 교육은 1870년대 외국과 수교 관계를 맺고 문호를 개방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외국의 새로운 제도 및 기술을 도입하여 근대 문화를 이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근대식 학교 교육이 시작되었다. 외국인들은 통변학교·광혜원 등을 세워 외국어와 서양 의학을 가르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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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교육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조직이나 단체. 광명시의 교육기관은 좁게는 학교를 지칭하며, 넓게는 교육 행정 담당 기간도 포함한다. 근대적 의미에서 광명시 최초의 교육기관은 1907년(순종 1) 시흥군 서면의 유지이자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후손인 이연철을 중심으로 개교한 운양의숙이라고 할 수 있다. 1911년 7월 1일 시흥군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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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현 경기도 광명시 지역에서 이루어진 근대식 교육. 갑오개혁 이후 한일병합에 이르는 기간에 새로운 교육 제도에 의한 신식 교육기관이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방에 설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흥군[현 광명] 지역 내에서는 근대적인 교육기관이 설립되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없다. 이는 지역적인 특성상 시흥군 지역의 교육이 향교나 서당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교육기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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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광명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조선 왕조는 개국 이후 중앙 집권을 강화하고자 지방 통치를 개편하였다. 지방 통치 개편은 도제 시행과 관찰사 파견, 수령 파견 지역 확대, 면리제 시행 등으로 구체화되었으며 예전 비효율적인 지방 행정구역 통합도 그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금천현(衿川縣)을 과천현(果川縣)과 통합하여 금과현(衿果縣)이라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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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광명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조선 왕조를 건국한 주도 세력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중앙 집권 국가의 건설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한 속현(屬縣)이 많아 지방 분권적인 측면이 매우 강하였고 이 때문에 중앙의 권력이 지방에 미치는 영향력은 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조선 건국의 주도 세력은 지방 통치 행정에 대한 대대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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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금천(衿川)에서 ‘금(衿)’은 율진군(栗津郡)의 속현이었던 곡양(穀壤)을 고려 초기에 금주(衿州)[『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금천으로 기록되어 있음]로 고친 데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여겨진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 1413년(태종 13) ‘주(州)’라는 명칭이 읍격에 관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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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2차 시흥농민봉기는 1901년 착공하여 1904년 개통된 경부선의 영등포~수원 간 공사에 강제 동원한 데 이어 토지를 대가 없이 수용한 일에 크게 반발하여 군민 2,000여 명이 항거한 사건이다. 1904년 9월 13일까지 6개 면 집강들에게 봉기 계획을 전달하는 한편, 시흥군의 모든 가구마다 한 명씩 반드시 집회에 참여하도록 하여 9월 14일 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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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노온사동은 마을에 있었다고 전해 오는 노온사(老溫寺)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노온사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합해 금양현(衿陽縣)이 되었고, 1416년(태종 16) 경기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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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1동에 있던 자연마을. 안양천 제방 밑에 있었으므로 뚝방마을이라 하였다. 뚝방마을은 6·25전쟁 직후 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1964년 시흥군 행정리 확장으로 뱀수·양수장마을과 함께 경기도 시흥군 서면 철산1리에 속하였고,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광명시 철산동에 속하였다.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철산1동에 속하였다. 뱀수 동쪽에 자리 잡았던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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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관찰사가 시흥농민봉기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경기도 광명 지역에 파견한 관리. 명사관은 조선시대 당시 지방에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면 도의 감사가 사건 내용의 진상 조사를 위하여 파견하는 관리이다. 19세기 후반 조선 사회의 농촌은 토지가 소수 부호에게 독점되고, 대다수의 농민이 토지에서 배제된 상황이었다. 즉 많은 수의 농민이 소작농의 처지에 있었고, 농업 이외의 다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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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광명 지역의 현대 문학은 광명시의 승격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 승격 이전의 광명 지역은 주로 시흥군에 속한 소하읍과 광명리에 불과하여, 근대 이전의 문학에서 뛰어난 문학사나 활동 기록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광명 지역에서 문학 활동이 시작된 것은 1988년 광명시청 문화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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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1동에 있는 자연마을. 예부터 밤나무가 많아 밤일 또는 율일(栗日)이라 하였다. 충주평씨가 처음 정착한 이래 충주박씨·전주이씨가 들어와 살았는데 비교적 충주평씨가 많이 살았다. 조선시대에는 시흥군 서면 율일리였고, 1914년 시흥군 서면 하안리에 속하였다. 1964년 1월 1일 시흥군 행정리 확장으로 시흥군 서면 하안2리에 속하였고,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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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이후 서울특별시는 급격히 도시화가 되었고, 지방에서 유입되는 인구가 급증하게 되자 심각한 주택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서울특별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과 인접한 교외 지역을 일방적으로 서울특별시로 편입하면서 행정 구역을 확대해 나갔다. 서울 교외 지역을 도시화하여 인구를 서울 외곽으로 분산시켜서 부족한 주택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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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2동에 있던 자연마을. 허허벌판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벌말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당시 시흥군 관아가 있던 상평리 아래에 있는 마을이어서 하평리라고 하였다. 현재 하안동의 ‘하(下)’자는 하평리에서 유래하였다. 벌말은 광산김씨·전주이씨·광주이씨·진주강씨·진주하씨·하동정씨·안동김씨·경주최씨·청주한씨·신안주씨 등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마을로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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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금천현·시흥현·시흥군에 있던 행정구역. 서면은 현재의 경기도 광명시 전역에 해당하던 지역이다. 1914년 남면과 통합하기 이전에는 경기도 광명시의 법정동인 철산동·소하동·하안동·일직동 지역에 해당하고, 남면과 통합한 이후에는 경기도 광명시의 법정동인 광명동·가학동·노온사동을 포함한 지역이다. 조선시대에 금천현(衿川縣) 서쪽에 있었으므로 서면이라고 하였다. 서면은 고려시대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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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1979년 이전까지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지역에 있던 면사무소. 현 광명시 소하2동은 1979년 이전까지 경기도 시흥군 서면이라는 행정 구역이었는데, 서면사무소는 서면 지역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 기관이었다. 서면사무소가 생기면서 이 지역에는 취락이 발달하였고,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1927년에는 근대적인 의미에서 광명시의 첫 교육 기관인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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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2차 시흥농민봉기는 1901년 착공하여 1904년 개통된 경부선의 영등포~수원 간 공사에 강제 동원한 데 이어 토지를 대가 없이 수용한 일에 크게 반발하여 군민 2,000여 명이 항거한 사건이다. 1904년 9월 13일까지 6개 면 집강들에게 봉기 계획을 전달하는 한편, 시흥군의 모든 가구마다 한 명씩 반드시 집회에 참여하도록 하여 9월 14일 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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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월리는 광명시의 진산인 구름산을 등지고 그 앞으로 안양천이 흘러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마을이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설월리 주민들은 소하동 너른 벌판을 일구며 멀리 관악산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이곳은 또 예전부터 안산과 시흥 사람들이 서울에 가려면 반드시 경유해야 했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그만큼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산세와 부족하지 않은 물자가 생산되어 제법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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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천주교의 종교 의식이 행해지는 교당. 천주교는 조선 후기 선비들에게 처음에는 ‘서학’이라는 학문으로 다가왔다가 이후 신앙으로 받아들여졌다. 1845년(헌종 11) 김대건은 한국인 최초로 신부 서품을 받았으나 다음 해인 1846년 새남터에서 순교를 당하였다. 살아남은 교인들은 산간벽지에서 박해를 피해 숨어 살기도 하였지만 교세는 점점 확장하였다. 과거 시흥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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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성우경(成禹慶)[1842~1916]은 본관이 창녕(昌寧)으로, 시흥군 남면 유등리[현 광명시 학온동]에서 태어났다. 시흥군 남면 동학(東學)의 집강(執綱)으로 활동하면서 1898년(고종 35)과 1904년(고종 41) 두 차례에 걸쳐 다른 집강들과 함께 이른바 시흥농민봉기를 주도하였다. 1차 시흥농민봉기는 일본의 침략과 간섭이 노골화하던 18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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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소하동은 개발 제한 구역이 면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도농 복합 지역이며 최근 소하1동은 소하택지개발사업과 신촌마을 주거지환경개선사업으로 신시가지로 변모 중이다.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현내면의 아랫동네이므로 소하라 하였다. 소하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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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일직동과 소하동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동.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현내면의 아랫동네이므로 소하라 하였다. 소하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합해 금양현(衿陽縣)이 되었고, 1416년(태종 16)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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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현내면의 아랫동네이므로 소하라 하였다. 소하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합해 금양현(衿陽縣)이 되었고, 1416년(태종 16) 경기도·충청도·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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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시장은 여러 가지 상품이 거래되는 일정한 장소를 의미한다. 전통적인 장시(場市)는 3·5·10일장 등을 의미하나 지역마다 2·7일장, 또는 3·8일장 등이 존재하였다. 이후 조선 후기에 5일장으로 정착되어 지역마다 시장 운영일을 달리하였다. 유통이 발달한 현대에는 상설로 시장이 운영되며, 형태에 따라 가판대 등 길거리를 중심으로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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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2월 서면공립보통학교 교장 기타야마 와카니치(北山若二)와 교사 성만용(成萬鏞)이 편찬한 『서면향토지』를 통해 읽혀지는 설월리는, 서면의 면소재지임에도 상가나 유흥 시설, 금융 기관, 병원 등의 시설들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여타 지역의 면소재지와 비교해 보면 사뭇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서면향토지』는 1927년 서면공립보통학교의 초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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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명 지역을 포함한 시흥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 운동단체. 3·1운동 이후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이 소위 문화 정치로 바뀌면서 외형적으로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전국적으로 많은 단체들이 결성되어 활발하게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 경기도에서도 3·1운동 이후 1920년대 말까지 178개의 청년 단체가 20개 군에서 결성되었다. 이 가운데 시흥 지역에서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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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현재 아방리[능말]의 세거 성씨로는 금천강씨와 김해김씨, 남원양씨를 들 수 있다. 남원양씨의 선산은 원래 제2경인고속도로가 관통하는 구름산 기슭에 있었으나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지방으로 옮겼다. 김해김씨의 선산은 아방리[능말] 마을 공동묘지 옆에 있다. 남원양씨와 김해김씨는 아방리[능말]에 사당을 짓거나 독자적인 종친회 조직을 갖지 못했다. 이것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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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기도 광명시의 역사. 2010년 현재까지 광명 지역에서는 구석기 및 신석기시대의 유적지가 조사, 보고된 적이 없다. 그러나 목감천 등 하천 주변에 평야 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광명시의 지형적 특성으로 미루어 향후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은 적지 않다. 광명 지역에 사람들이 정착한 것은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철산동 고인묘와 가학동 지석묘 등을 통해 확인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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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공자를 시조로 하는 전통적인 사상을 중심으로 한 학문 또는 종교. 유교는 공자를 시조(始祖)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으로 ‘공교(孔敎)’ 또는 ‘공자교(孔子敎)’라고도 한다. 삼강오륜을 덕목으로 하며 사서삼경을 경전으로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는 아니며, 통상 유교 사상이나 유학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유교는 충(忠)과 효(孝)를 기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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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불법 남침으로 경기도 광명시에서 있었던 전쟁의 양상.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약 3년 1개월간 지속된 전쟁으로, 당시 시흥군에 속해 있던 광명 지역도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시흥은 서울~수원~오산으로 이어지는 인민군의 주공격 방향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시흥군이 수도 서울에 인접했기에 서울 방어와 탈환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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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2차 시흥농민봉기는 1901년 착공하여 1904년 개통된 경부선의 영등포~수원 간 공사에 강제 동원한 데 이어 토지를 대가 없이 수용한 일에 크게 반발하여 군민 2,000여 명이 항거한 사건이다. 1904년 9월 13일까지 6개 면 집강들에게 봉기 계획을 전달하는 한편, 시흥군의 모든 가구마다 한 명씩 반드시 집회에 참여하도록 하여 9월 14일 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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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광명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봉기. 1904년(고종 41) 러일전쟁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그해 1월 조선 정부는 국외 중립을 선언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은 강제적으로 한일의정서를 채택, 한-러 간에 맺은 모든 조약을 폐기시키는 한편 전쟁 수행을 위한 철도를 착공하고 통신망을 강점하였다. 이러한 상황 아래 1904년 9월 일본은 병참 기지와 철도 건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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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 또는 집단. 광명시 인구는 시흥군에 속하였던 1960년대 1만 2000명 수준에서 1970년 2만 7816명, 1975년 9만 3328명을 기록하며 가파르게 증가하였다. 1981년 시 승격 당시에는 15만 3997명이었으나 이어진 철산동, 하안동 지역의 개발로 인구가 큰 폭으로 늘어 1990년에는 30만 4476명에 이르렀다. 1996년의 34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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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광명시는 경기도의 남서부 중앙에 자리하여 북쪽과 북동쪽은 서울특별시 구로구와 금천구 시흥동, 남동쪽과 남서쪽은 경기도 안양시, 시흥시와 경계를 이룬다. 광명시는 광주산맥 끝자락인 수리산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가학산(駕鶴山)[220.2m], 서독산(書讀山)[180m], 구름산(雲山)[230m], 도덕산(道德山)[183.1m]으로 이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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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경기도 광명 지역의 역사.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동안 광명 지역은 시흥군 서면과 남면으로 편제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를 겪지 않으면서 현 광명시의 전신으로서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광명 지역에서도 일제의 가혹한 수탈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서 항일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으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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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조선시대 관아에서 일직선 방향에 있어 일직리(一直里)로 부르다가 일직리(日直里)로 바뀌었다는 설, 정조가 능행할 때 마을 유림들이 일직을 서기 위해 나갔던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한다. 그늘지는 날이 별로 없고 햇살이 곧게 바로 비치는 마을이므로 달리 양지편이라고도 한다는 설도 있다. 일직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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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산리가 속해 있는 광명시청이 개청 이후 가장 먼저 맞은 지역 문제는 홍수였다. 1981년 7월 2일 새벽, 광명시민들이 광명시청 개청으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곤히 잠들어 있던 시각, 수도권 일대에 내린 집중 호우로 213가구가 침수되고 833명이 인근 학교로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당시 철산리를 포함한 광명 지역은 안양천이 동쪽으로 흐르고 시 북쪽 끝에서는 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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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자연마을. 자경리(自京里)는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조선시대 서울의 경계로 이제부터 서울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자경리는 옛 시흥군 영역이었고, 당시 시흥군과 서울의 경계 지역은 서울 한강이 되므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광산김씨 대종중 정묘보[1747]와 병자보[1876]에는 성채산이 공경 받는 선비인 김원록(金元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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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과거에는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일방적인 정책의 추진이 가능하였지만, 현재는 국민의 이해 수준이 높아지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출현으로 인하여 정책 환경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의 정부가 행정을 주도하는 중앙 행정식 관리를 벗어나 행정의 비대화를 극복할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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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광명 지역 역사. 조선 왕조는 1392년 7월 17일[음력] 이성계(李成桂)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恭讓王)에게서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오름으로써 시작되었다. 경기도 광명 지역은 조선시대에 금천 또는 시흥이라 일컬어졌던 지역에 주로 속해 있었다. 금천은 고구려의 잉벌노현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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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 집성촌은 우리나라 전통 사회의 한 특징으로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함께 모여 사는 촌락을 말한다. 집성촌이 형성된 시기는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 보기도 하지만, 조선 전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17세기 이후에 정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집성촌의 형성은 가족 제도와 친족의 범위, 혼인, 상속 제도와 관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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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법정동인 철산동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경기도 광명시를 구성하고 있는 18개 동[광명 1동, 광명 2동, 광명 3동, 광명 4동, 광명 5동, 광명 6동, 광명 7동, 철산1동, 철산 2동, 철산 3동, 철산 4동, 하안 1동, 하안 2동, 하안 3동, 하안 4동, 소하 1동, 소하 2동, 학온동] 중 철산1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철산1동 주민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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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법정동인 철산동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경기도 광명시를 구성하고 있는 18개 동[광명 1동, 광명 2동, 광명 3동, 광명 4동, 광명 5동, 광명 6동, 광명 7동, 철산 1동, 철산2동, 철산 3동, 철산 4동, 하안 1동, 하안 2동, 하안 3동, 하안 4동, 소하 1동, 소하 2동, 학온동] 중 철산2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철산2동 주민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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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법정동인 철산동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경기도 광명시를 구성하고 있는 18개 동[광명 1동, 광명 2동, 광명 3동, 광명 4동, 광명 5동, 광명 6동, 광명 7동, 철산 1동, 철산 2동, 철산3동, 철산 4동, 하안 1동, 하안 2동, 하안 3동, 하안 4동, 소하 1동, 소하 2동, 학온동] 중 철산3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철산3동 주민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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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법정동인 철산동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경기도 광명시를 구성하고 있는 18개 동[광명 1동, 광명 2동, 광명 3동, 광명 4동, 광명 5동, 광명 6동, 광명 7동, 철산 1동, 철산 2동, 철산 3동, 철산4동, 하안 1동, 하안 2동, 하안 3동, 하안 4동, 소하 1동, 소하 2동, 학온동] 중 철산4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철산4동 주민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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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쇠머리라는 마을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철산(鐵山)이 되었다는 설, 철망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철산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합해 금양현(衿陽縣)이 되었고,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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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속하는 행정동. 쇠머리라는 마을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철산(鐵山)이 되었다는 설, 철망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철산4동의 중심 마을이었던 양수장마을은 예전 농사를 짓기 위해 물을 끌어올리는 양수 시설을 갖춘 곳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철산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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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속하는 행정동. 쇠머리라는 마을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철산(鐵山)이 되었다는 설, 철망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쇠머리마을은 특히 철산3동의 중심 마을이었다. 철산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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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속하는 행정동. 쇠머리라는 마을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철산(鐵山)이 되었다는 설, 철망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철산2동은 자연마을인 모세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로, 모세는 예전 세 개의 연못이 있어 붙인 이름이다. 마을이 연못 서쪽에 있으므로 연서(淵西)라고도 한다. 철산2동 일대에 처음 정착한 성씨로 알려진 여흥민씨가 자손을 얻기 위해 연못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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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속하는 행정동. 쇠머리라는 마을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철산(鐵山)이 되었다는 설, 철망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철산1동은 자연마을인 뱀수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로, 뱀수는 마을 뒷산 모양이 뱀 머리를 닮아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장마철에 뱀이 많이 나와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철산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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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2차 시흥농민봉기는 1901년 착공하여 1904년 개통된 경부선의 영등포~수원 간 공사에 강제 동원한 데 이어 토지를 대가 없이 수용한 일에 크게 반발하여 군민 2,000여 명이 항거한 사건이다. 1904년 9월 13일까지 6개 면 집강들에게 봉기 계획을 전달하는 한편, 시흥군의 모든 가구마다 한 명씩 반드시 집회에 참여하도록 하여 9월 14일 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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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2차 시흥농민봉기는 1901년 착공하여 1904년 개통된 경부선의 영등포~수원 간 공사에 강제 동원한 데 이어 토지를 대가 없이 수용한 일에 크게 반발하여 군민 2,000여 명이 항거한 사건이다. 1904년 9월 13일까지 6개 면 집강들에게 봉기 계획을 전달하는 한편, 시흥군의 모든 가구마다 한 명씩 반드시 집회에 참여하도록 하여 9월 14일 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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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법정동인 하안동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경기도 광명시를 구성하고 있는 18개 동[광명 1동, 광명 2동, 광명 3동, 광명 4동, 광명 5동, 광명 6동, 광명 7동, 철산 1동, 철산 2동, 철산 3동, 철산 4동, 하안1동, 하안 2동, 하안 3동, 하안 4동, 소하 1동, 소하 2동, 학온동] 중 하안1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하안1동 주민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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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법정동인 하안동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경기도 광명시를 구성하고 있는 18개 동[광명 1동, 광명 2동, 광명 3동, 광명 4동, 광명 5동, 광명 6동, 광명 7동, 철산 1동, 철산 2동, 철산 3동, 철산 4동, 하안 1동, 하안2동, 하안 3동, 하안 4동, 소하 1동, 소하 2동, 학온동] 중 하안2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하안2동 주민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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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법정동인 하안동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경기도 광명시를 구성하고 있는 18개 동[광명 1동, 광명 2동, 광명 3동, 광명 4동, 광명 5동, 광명 6동, 광명 7동, 철산 1동, 철산 2동, 철산 3동, 철산 4동, 하안 1동, 하안 2동, 하안3동, 하안 4동, 소하 1동, 소하 2동, 학온동] 중 하안3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하안3동 주민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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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법정동인 하안동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경기도 광명시를 구성하고 있는 18개 동[광명 1동, 광명 2동, 광명 3동, 광명 4동, 광명 5동, 광명 6동, 광명 7동, 철산 1동, 철산 2동, 철산 3동, 철산 4동, 하안 1동, 하안 2동, 하안 3동, 하안4동, 소하 1동, 소하 2동, 학온동] 중 하안4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하안4동 주민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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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하평리(下坪里)의 ‘하’자와 안현리(安峴里)의 ‘안’자를 따서 하안(下安)이라 하였다. 안현(安峴)은 안현(鞍峴)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하안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합해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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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속하는 행정동. 하평리(下坪里)의 ‘하’자와 안현리(安峴里)의 ‘안’자를 따서 하안(下安)이라 하였다. 안현(安峴)은 안현(鞍峴)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하안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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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속하는 행정동. 하평리(下坪里)의 ‘하’자와 안현리(安峴里)의 ‘안’자를 따서 하안(下安)이라 하였다. 안현(安峴)은 안현(鞍峴)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하안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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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속하는 행정동. 하평리(下坪里)의 ‘하’자와 안현리(安峴里)의 ‘안’자를 따서 하안(下安)이라 하였다. 안현(安峴)은 안현(鞍峴)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하안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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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속하는 행정동. 하평리(下坪里)의 ‘하’자와 안현리(安峴里)의 ‘안’자를 따서 하안(下安)이라 하였다. 안현(安峴)은 안현(鞍峴)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하안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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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노온사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가학동의 ‘학’자와 노온사동의 ‘온’자를 따서 학온동이라 하였다. 학온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하여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합해 금양현(衿陽縣)이 되었고, 1416년(태종 16)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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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던 자연마을. 한천(寒川) 변에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한내라 하였다. 한천은 여름에도 발이 시릴 만큼 물이 차가워 붙인 이름이다. 한내는 소하동 신촌과 하안동 벌말 사이에 걸쳐 있던 마을로 송씨·박씨·노씨·황씨·방씨 등 6가구가 살았다. 방씨가 살던 곳만 소하동에 속했고 나머지 5가구가 살던 곳은 하안동에 속하였는데 1980년대 말 택지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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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독립 운동. 1910년 일제의 강제에 의하여 조선은 식민지가 되었고, 1945년 광복까지 끊임없는 항일운동이 전 민족적으로 펼쳐졌다. 광명지역에서도 항일운동은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주로 3·1운동과 야학 운동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독립에 대한 열망은 광명 지역에서도 대단히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27일, 소하리에 거주하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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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경기도 광명 지역의 역사. 시대 구분상으로 볼 때 일반적으로 현대는 1945년 이후를 출발선으로 본다. 광명 지역은 1974년 광명출장소가 되었다가 1981년 광명시로 승격되었다. 1945년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한반도는 38도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가서, 남쪽의 경우 미군정이 유일한 합법 정부로 기능하였다. 광명 지역은 행정적으로 일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