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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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7월 30일 「도시계획법」이 제정되면서 시흥군 소하읍이 개발 제한 구역[그린벨트]으로 지정되자 소하리는 자동으로 그린벨트에 포함되었다. 그리하여 지난 40여 년간 설월리 일대는 건축물의 신축이나·증축, 용도 변경, 토지의 형질 변경 및 토지 분할 등의 행위가 엄격히 제한 당했다. 당연히 설월리 주민들은 불편한 주거 환경과 재산상의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마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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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끝나고 1960년대까지 설월리 일대 사람들은 여전히 논농사를 생업으로 꾸려 나가고 있었다. 현재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이 들어선 자리는 ‘멍석뜰’이라 불리던 논자리로, 구름산과 도고산에서 내려오는 한내와 한강으로 흘러드는 안양천이 자리하고 있는 그야말로 천혜의 입지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그렇다고 설월리 사람들이 논농사에만 매달렸던 것은 아니다. 부농도 있었지만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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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산업은 1970년 11월 경기도 시흥군 서면 소하리에 국내 최초의 대단위 종합 자동차 공장 건설에 착수하였다. 소하리공장은 영등포와 부산, 시흥에 이은 네 번째 공장인데, 엄격한 의미에서 소하리공장은 자동차 생산을 위한 최초의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아산업은 창업 이래 영등포, 부산, 시흥 공장을 거치면서 약 30년 동안 자전거와 2륜 오토바이, 3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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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당(禱堂)은 수호신을 제사하는 단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굿이 개인의 무병장수나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해 행해지는 것과 달리 도당굿은 신목(神木)인 소나무에 띠를 두르고 제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굿판이다. 마을 전체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다. 광명시 소하2동 설월리 마을에서는 이웃한 오리동, 영당말 주민들과 함께 매해 음력 7월 1일 마을 축제이기도 한 도당고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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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면초등학교의 연원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으로 올라간다. 1908년 오리 이원익의 후손 이연철(李淵哲)이 사재를 털어서 서면 소하리 883번지[현 소하리 883-13번지]의 현 광명감리교회 자리에 세운 운양의숙이 서면초등학교의 모태이다. 당시는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된 후 1910년까지 일제가 조선의 식민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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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90세가 되는 임정동[1921년생] 씨와 79세가 되는 김정관[1932년생] 씨는 설월리에서 행해졌던 장례풍습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었다. 임정동 씨는 상여 소리꾼이었고 김정관 씨는 그와 함께 소리를 받고 장례 절차를 직접 수행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최문락 씨가 제공한 사진들과 함께 두 분이 증언한 설월리의 장례풍습을 채록해 보았다. 김정관 씨에 따르면, 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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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월리는 1970년대까지 150여 호가 모여 살던 면소재지로서 광명 일대에서 가장 전통 있고 번성했던 마을이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고 전국이 개발로 몸살을 앓기 전까지 설월리 주민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했다. 다음에 소개하는 세 분은 설월리에서 태어나서 현재까지 설월리를 떠나지 않고 평생을 살아온 분들이다. 이들은 살아 온 방식들은 서로 다르지만 지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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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전통 가옥. 소하2동 장혜순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332번지[설월로 30-48]에 있다. 오리로를 따라 소하사거리를 지나면 서면초등학교가 있고 거기서 150m 전방의 비보호 구역을 좌회전하여 진입하면 소하2동이 나온다. 현재 통장을 맡고 있는 최문락의 집 바로 뒤에 있다. 좌표는 37°26′27.33″N, 126°51′34.10″E이고, 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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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전통 가옥. 소하2동 최문락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329-1번지[설월로 30-4]에 있다. 소유자는 마을에서 통장 일을 보는 최문락으로, 상량문이 없지만 건축 연대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최문락은 1960년대에 소하2동 최문락 가옥을 짓다가 군대를 나갔다고 한다. 그때 나이가 21세나 22세로 대자귀로 기둥을 다듬었다고 하며, 목수는 장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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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2월 서면공립보통학교 교장 기타야마 와카니치(北山若二)와 교사 성만용(成萬鏞)이 편찬한 『서면향토지』를 통해 읽혀지는 설월리는, 서면의 면소재지임에도 상가나 유흥 시설, 금융 기관, 병원 등의 시설들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여타 지역의 면소재지와 비교해 보면 사뭇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서면향토지』는 1927년 서면공립보통학교의 초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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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전쟁을 겪었던 사람이라면 이 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설월리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기억은 피난민으로, 의용군으로 겪었던 생생한 전쟁의 두려움과 긴장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전쟁 통에서 지켜 낸 자식과 가족, 국가가 있었다. 당시 30세였던 설순금[1921년생] 씨의 전쟁에 대한 기억은 아련하다. “우리 집은 폭격당하지 않았어. 피난민이 외양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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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월리에 들어서서 거닐다 보면 그 정겨움에 빙그레 웃음 짓게 하는 것이 있다. 자연을 닮은 모습, 아니 자연 그대로 얼기설기 쌓아 놓은 까만 돌담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담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은 돌담도 많다. 아마도 밭에 나뒹구는 돌들을 집 주위에 둘러 모아 놓은 모습에 가깝다. 이웃이라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저녁 찬거리가 뭔지 곁눈질도 가능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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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가 주업이었던 설월리 마을에서도 여타 농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두레 공동 노동이 마을 공동체의 근간을 이루었다. 보통 20~30여 명이 두레 공동 노동에 참여했는데, 작업 시간은 아침 해가 뜰 무렵인 7시에 시작해서 저녁 해가 질 때까지였다. 설월리에서는 두레 공동 노동 조직의 두레원들을 통솔하는 사람을 ‘수건’이라 했다. 수건은 공동 노동의 지휘와 통솔은 물론 작업 계획까지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