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D030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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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모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은실 |
정차종 할아버지는 올해로 바지게를 만든 지 20여 년이 넘는다. 한 해에 20여 개가 넘는 바지게를 만들었다고 하니 지금까지 만든 바지게의 수만 해도 500여 개가 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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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에 보관된 바지게
평생 농사만 짓고 살겠거니라고 생각했는데 우연치 않게 아들이 운영하는 편의점을 방문하면서, 손님이 들고 온 바지게를 보고 바지게 만들기에 흠뻑 빠지게 되었단다. 정차종 할아버지의 삶은 그때부터 바지게와 함께 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 편의점에는 많은 손님들을 오고갈 텐데, 하필 그 손님을 만나, 손에 쥐고 있는 바지게가 눈에 들어왔을까. 할아버지가 바지게를 만들 게 된 것이 어쩜 운명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의 일을 정차종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부산에 둘째 머시매(아들)가 서부터미널에서, 거기서 매점을 하는 기라. 하루는 내가 거기 있으니끼네 손님이 바지게라는 모형만 만들어서 사가 왔는기라. 내가 이거 어디서 샀습니까. (부산)국제시장에서 샀다고 하더라고. 나도 이거 한번 만들어 볼까. 그래 되었는기라. 점원 아가씨가 아저씨에 우리도 하나 만들어 주소 하는 기라. 나는 하고 싶으면 딱 합니다.”
손님이 들고 온 바지게를 자세히 보니 모형만 만들어져 있을 뿐 제대로 만든 지게가 아니었다. 바지게의 모형이 완전치 않아 자신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런데 할아버지가 처음 바지게를 만들어 본 것이 열여섯 살 때였단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릴 적 만들었던 바지게를 떠올려 만들려니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아무런 도움 없이 무작정 만들어 보았다고 한다.
정차종 할아버지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얄궂게 만든 바지게’를 작은아들이 운영하는 편의점에 처음으로 선보였는데 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민속공예품은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물건이었는데 1980년대 중반에는 그 가치가 어떠했으랴?
할아버지는 힘들게 만든 바지게를 환갑 때 자녀들뿐만 아니라 집을 방문해 준 형제들, 사촌들에게 선물하였다. 본래 크기의 바지게를 축소시켜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한 ‘작은바지게’를 받은 사람들은 그의 깜짝 선물에 모두들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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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때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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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차종 할어버지의 가족사진
이 일이 있은 후 정차종 할아버지는 부인의 환갑 때 그의 집을 방문하는 모든 손님들에게 바지게를 선물하였다. 농사일이 끝나면 틈틈이 바지게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해 줄 수 있었다고. “내카면 우리 집 식구가 두 살 떨어집니다. 칠십구 살. 한 해 지내고 환갑이 오는데. 오는 손님마다 친척뿐만 아니고 우리 집 오는 손님은 다 하나씩 줄려고 많이 만들었어예. 몇십 개씩 만들어서 우리 집에 오는 마을 사람들도 다 하나씩 나눠졌어예.”
옆에서 인터뷰를 듣고 계시던 문학봉 옹이 자신도 바지게를 선물 받아 집에 고이 걸어두었다고. 지금도 집에 걸려 있는 바지게를 보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그의 수고와 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대소사뿐만 아니라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바지게를 선물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만든 수백 개의 바지게 중에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스물한 개뿐이 되질 않는다고. "갓쟁이 헌 갓 쓴다”라는 말이 있는데 자신은 헌 갓조차 없다고 한다. “갓쟁이 헌 갓 쓴다 하지만은 헌 갓이라도 있으면 다행이고. 하지만은 없어요. 망구(모두) 다 줬어예. 남은 게 스물한 개 있기는 있지. 이거 하기 어려워요”
[정차종 할아버지만의 바지게 만들기]
지게는 많이 알고 있을 법한데, 바지게는 들어 보았는가? 바지게란 지게에 물건을 담을 수 있게 조개 모양의 소쿠리인 발채가 부착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생소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할아버지는 본래 크기의 바지게도 만들지만 크기를 축소시킨 20㎝의 ‘작은 바지게’를 많이 만든다. 그 까닭은 선물을 하기 좋도록 작고 아담한 크기의 장식품이 유용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본래 크기의 바지게도 만드는데, 그 시간과 수고는 훨씬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차종 할아버지는 바지게를 어떻게 만들까? 바지게는 기본 골격인 지게의 몸통과 조개 모양의 발채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먼저 지게의 몸통은 인근 산에 올라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로 만든다. 소나무를 베어 만든다면 자연이 훼손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소나무의 원가지에서 돋아난 곁가지로 만들기 때문이다. “지개 하나 만들라카면 산에 나무에 올라가서 가지가 하나 났으면 하나 희생을 시켜 버리는 기라. 가지에 가지를 치니깐 원 소나무는 살아 있고 가지만 쓰는 거지. 재료 구하기는 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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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게 재료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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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딸과 바지게를 만드는 모습
그런가 하면 발채는 싸리로 만든다. 할아버지가 사용하는 싸리는 주로 봄에 올라오는 여린 가지이다. 성묘 후에 가면 벌초를 해서 여린 가지를 구하기 쉽지 않다. 사람들이 벌초하기 전에 싸리를 구하러 산에 가야 한다. “싸리는 해마다 모종이 올라오는 고 놈이어야 되는데, 산에 성묘하기 전에 가야 하는기라. 전부 벌초 다해 버리고 내 쓸 싸리는 없는 기라. 더워서 할 수가 있어야지. 시기를 떨가뿌는기라. 하루는 그 더운데 산에 올라가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헛걸음하고 4군데 쫓아다니다가 밤 10시라.”
싸리를 구했다고 작업이 끝난 것이 아니다. 싸리로 조개 모양의 발채를 만들어야 한다. 이 작업은 굉장히 까다롭다. 싸리가지 하나씩을 일정한 간격으로 짚이나 노끈으로 촘촘히 엮어 조개 모양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시력이 좋지 않아 본래 크기의 발채는 만들어도, 작은 바지게의 발채는 세밀한 작업이라 부인이 대신해 만들어 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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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채를 만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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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게를 만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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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바지게
이처럼 바지게 하나를 만들려면 3~4일의 시간이 걸린다. 전 과정이 수작업이라 한 개를 만들고 나면 손가락이 ‘우린다고’ 한다. 그래도 정차종 할아버지는 끊임없이 바지게를 만든다. 그의 지독한 정성과 단단한 손길을 생각하니 자식을 길러내는 어미 아비보다 더 할까 싶다.
[정보제공자]
정차종(남, 1928년생, 북모산마을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