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80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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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山火力發電所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동주 |
준공 시기/일시 | 1956년 4월 15일 - 마산 화력 발전소 준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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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2년 12월 31일 - 마산 화력 발전소 폐기 |
최초 설립지 | 마산 화력 발전소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 |
성격 | 화력 발전소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에 있던 무연탄 및 중유혼소 화력 발전소.
[건립 경위]
9·28 수복과 더불어 미국 원조에 의하여 전화 복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전력 수요가 급증하였고 이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전원 개발의 첫 사업이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2만 5000㎾급 용량의 발전설비 4기를 건설하기로 한·미 양국이 합의하여 1954년에 미국의 대외활동본부[F.O.A.]의 원조 자금 3000만 달러와 내자 7억2000만 환 등 총 61억 2000만 환의 공사비로 건설 사업이 추진되었다.
[변천]
1954년 10월 15일 착공하여 1956년 4월 15일 준공되었다. 1956년 4월 전력 생산을 개시하였으며 1년간 설비 제작사인 미국의 벡텔 회사(Pacific Bechtel Co.)가 운영권을 감독하며 국내 운전원을 훈련시켜왔다. 1957년 9월 12일에 조선 전업 주식회사(朝鮮電業株式會社)가 운영권을 인수하였고, 다시 1961년 7월 1일 전력3사 통합으로 발족된 한국 전력 주식회사[현 한국 전력 공사]가 인수하였다. 이후 약 26년간 영남 지역 전력 공급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오다가 설비 노후로 1982년 12월 31일 폐기되었다.
[구성]
당시 세계에서도 신식 설비에 속하는 기력 발전 설비로서 중유전소 또는 무연탄[90%] 및 중유[10%]를 혼소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이 발전소의 건설과 함께 국내 전력구조는 수력발전소 중심에서 화력 및 수력발전 등분구조로 되었다. 또한 이 발전소는 6·25 전쟁 뒤의 전력난 해결을 위하여 단시일 내에 건설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 화력 발전 기술 향상 면에서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국내 무연탄을 주연료로 사용함으로써 기존 화력발전소가 겪고 있던 석탄부족에 따른 발전제약을 받지 않음은 물론, 국내 광업개발 및 이 분야 종사자의 고용 효과면에서도 크게 기여하였다.
[현황]
마산 화력 발전소가 있던 마산합포구 해운동 일대는 1982년 12월 화력 발전소가 폐기된 이후 주변 일대가 매립되어 현재는 마산 남부 시외버스 터미널, 롯데 마트 등 상가 지역 등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옛 마산 화력 발전소의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