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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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경기문화재단에서 발행한 『경기문학지도』 1권에 수록된 광명 문학을 개관한 글. 「광명 힘찬 청년의 도시, 청년의 문학」은 경기도 각 지역의 문인들과 문학 작품을 고찰하여 기전문화예술총서 3권으로 간행된 『경기문학지도』 1권에 수록된 광명의 문학을 개관한 글이다. 경기문화재단에서 발행한 『경기문학지도』는 경기도 수원에서 군포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16곳에 어떤 문인들이 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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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동국팔로분지도(東國八路分地圖)』에 포함된 경기도 군현 지도. 채색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55.0㎝, 세로 55.0㎝이다. 『동국팔로분지도(東國八路分地圖)』는 정상기(鄭尙驥)가 제작한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정후조(鄭厚祚)가 수정하여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기[1678~1752]가 조선 영조 때 제작한 『동국지도』에는 경기도와 충청도가 한 도면에 그려져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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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 중 경기도 광명시의 옛 지역인 금천현이 그려진 지도. 채색 필사본으로, 가로는 47.5㎝, 세로는 30.0㎝이다. 『해동지도』「금천현」은 남쪽을 지도의 상단에 배치하여 그렸다. 산지는 회화식 기법을 가미하여 환포형으로 그렸다. 읍치에는 고을 이름과 향교만이 글자로 표기되어 특별히 부각되지는 않았다. 주변 지역에는 면이나 마을 이름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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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가학동은 자연마을인 가골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마을 지형이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과 같아 붙인 지명이라는 설과, 학이 마을을 둘러싼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한다. 가골은 달리 가곡(駕谷), 원가학(元駕鶴)으로도 불린다. 가학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하여 금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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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이 나타나 있는 조선시대와 개항기에 제작된 지도. 광명 지역은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남정(南征)으로 고구려의 영토가 되어 잉벌노현(仍伐奴縣)으로 불리다가 신라 경덕왕 때 율진군(栗津郡)의 영현(領縣)이 되고, 고려 전기로 들어서며 금천현(衿州)에 소속되었다. 조선이 들어선 후인 1414년(태종 14)에는 과천(果川)과 합해져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훗날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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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현 경기도 광명시 지역에서 이루어진 근대식 교육. 갑오개혁 이후 한일병합에 이르는 기간에 새로운 교육 제도에 의한 신식 교육기관이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방에 설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흥군[현 광명] 지역 내에서는 근대적인 교육기관이 설립되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없다. 이는 지역적인 특성상 시흥군 지역의 교육이 향교나 서당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교육기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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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광명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조선 왕조는 개국 이후 중앙 집권을 강화하고자 지방 통치를 개편하였다. 지방 통치 개편은 도제 시행과 관찰사 파견, 수령 파견 지역 확대, 면리제 시행 등으로 구체화되었으며 예전 비효율적인 지방 행정구역 통합도 그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금천현(衿川縣)을 과천현(果川縣)과 통합하여 금과현(衿果縣)이라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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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광명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조선 왕조를 건국한 주도 세력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중앙 집권 국가의 건설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한 속현(屬縣)이 많아 지방 분권적인 측면이 매우 강하였고 이 때문에 중앙의 권력이 지방에 미치는 영향력은 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조선 건국의 주도 세력은 지방 통치 행정에 대한 대대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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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금천(衿川)에서 ‘금(衿)’은 율진군(栗津郡)의 속현이었던 곡양(穀壤)을 고려 초기에 금주(衿州)[『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금천으로 기록되어 있음]로 고친 데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여겨진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 1413년(태종 13) ‘주(州)’라는 명칭이 읍격에 관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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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노온사동은 마을에 있었다고 전해 오는 노온사(老溫寺)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노온사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합해 금양현(衿陽縣)이 되었고, 1416년(태종 16) 경기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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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안터마을에 있는 조계종 사찰. 하안동 안터마을에 있는 붇다사는 2011년 승려 덕선이 창건하였다. 덕선은 하안1동에 사찰이 없는 것을 알고 포교를 위해 소임을 다하고자 이곳에 붇다사를 지었다고 한다. 붇다사는 지역 사회를 위한 봉사와 불교 포교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1년 하안동 안터마을에 개사한 붇다사는 승려 덕선[1961년생]이 창건하였다. 덕선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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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금천현·시흥현·시흥군에 있던 행정구역. 서면은 현재의 경기도 광명시 전역에 해당하던 지역이다. 1914년 남면과 통합하기 이전에는 경기도 광명시의 법정동인 철산동·소하동·하안동·일직동 지역에 해당하고, 남면과 통합한 이후에는 경기도 광명시의 법정동인 광명동·가학동·노온사동을 포함한 지역이다. 조선시대에 금천현(衿川縣) 서쪽에 있었으므로 서면이라고 하였다. 서면은 고려시대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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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소하동은 개발 제한 구역이 면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도농 복합 지역이며 최근 소하1동은 소하택지개발사업과 신촌마을 주거지환경개선사업으로 신시가지로 변모 중이다.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현내면의 아랫동네이므로 소하라 하였다. 소하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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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일직동과 소하동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동.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현내면의 아랫동네이므로 소하라 하였다. 소하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합해 금양현(衿陽縣)이 되었고, 1416년(태종 16)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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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현내면의 아랫동네이므로 소하라 하였다. 소하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합해 금양현(衿陽縣)이 되었고, 1416년(태종 16) 경기도·충청도·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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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기도 광명시의 역사. 2010년 현재까지 광명 지역에서는 구석기 및 신석기시대의 유적지가 조사, 보고된 적이 없다. 그러나 목감천 등 하천 주변에 평야 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광명시의 지형적 특성으로 미루어 향후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은 적지 않다. 광명 지역에 사람들이 정착한 것은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철산동 고인묘와 가학동 지석묘 등을 통해 확인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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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촌사거리 에서 마을 건너편을 보면 커다랗게 화훼 단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화훼 단지는 능촌사거리에서 제2경인고속도로의 운산교 주변은 물론 시흥으로 가는 대로까지 길게 늘어서 있다. 일반적으로 화훼 단지는 지대가 비싼 도시보다는 비교적 지대가 싼 도시 근교에 형성된다. 오늘날 대도시 근교에서 화훼 단지를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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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광명시는 경기도의 남서부 중앙에 자리하여 북쪽과 북동쪽은 서울특별시 구로구와 금천구 시흥동, 남동쪽과 남서쪽은 경기도 안양시, 시흥시와 경계를 이룬다. 광명시는 광주산맥 끝자락인 수리산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가학산(駕鶴山)[220.2m], 서독산(書讀山)[180m], 구름산(雲山)[230m], 도덕산(道德山)[183.1m]으로 이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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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경기도 광명 지역의 역사.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동안 광명 지역은 시흥군 서면과 남면으로 편제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를 겪지 않으면서 현 광명시의 전신으로서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광명 지역에서도 일제의 가혹한 수탈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서 항일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으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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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조선시대 관아에서 일직선 방향에 있어 일직리(一直里)로 부르다가 일직리(日直里)로 바뀌었다는 설, 정조가 능행할 때 마을 유림들이 일직을 서기 위해 나갔던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한다. 그늘지는 날이 별로 없고 햇살이 곧게 바로 비치는 마을이므로 달리 양지편이라고도 한다는 설도 있다. 일직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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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친 일본의 침략으로 경기도 광명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정유재란을 포함]까지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략한 일본과의 전쟁이다. 16세기 후반 일본의 전국시대의 혼란을 마감시키고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던 지방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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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광명시에서 가장 먼저 장(場)이 열린 마을이어서 장터말이라 하였다. 장터말은 파주염씨가 처음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이룬 마을로, 조선 말기에는 시흥군 남면 장기리였고, 1914년 시흥군 서면 가학리에 속하였다. 1964년 시흥군 서면 가학5리에 속하였고, 1981년 시제 실시로 광명시 가학동에 속하였다.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학온동 9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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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광명 지역 역사. 조선 왕조는 1392년 7월 17일[음력] 이성계(李成桂)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恭讓王)에게서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오름으로써 시작되었다. 경기도 광명 지역은 조선시대에 금천 또는 시흥이라 일컬어졌던 지역에 주로 속해 있었다. 금천은 고구려의 잉벌노현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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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 집성촌은 우리나라 전통 사회의 한 특징으로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함께 모여 사는 촌락을 말한다. 집성촌이 형성된 시기는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 보기도 하지만, 조선 전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17세기 이후에 정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집성촌의 형성은 가족 제도와 친족의 범위, 혼인, 상속 제도와 관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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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쇠머리라는 마을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철산(鐵山)이 되었다는 설, 철망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철산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합해 금양현(衿陽縣)이 되었고,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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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속하는 행정동. 쇠머리라는 마을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철산(鐵山)이 되었다는 설, 철망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철산4동의 중심 마을이었던 양수장마을은 예전 농사를 짓기 위해 물을 끌어올리는 양수 시설을 갖춘 곳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철산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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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속하는 행정동. 쇠머리라는 마을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철산(鐵山)이 되었다는 설, 철망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쇠머리마을은 특히 철산3동의 중심 마을이었다. 철산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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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속하는 행정동. 쇠머리라는 마을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철산(鐵山)이 되었다는 설, 철망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철산2동은 자연마을인 모세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로, 모세는 예전 세 개의 연못이 있어 붙인 이름이다. 마을이 연못 서쪽에 있으므로 연서(淵西)라고도 한다. 철산2동 일대에 처음 정착한 성씨로 알려진 여흥민씨가 자손을 얻기 위해 연못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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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속하는 행정동. 쇠머리라는 마을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철산(鐵山)이 되었다는 설, 철망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철산1동은 자연마을인 뱀수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로, 뱀수는 마을 뒷산 모양이 뱀 머리를 닮아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 장마철에 뱀이 많이 나와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철산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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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대지도로, 경기도 광명의 옛 지명인 시흥의 역사 지리를 이해할 수 있는 지도. 『청구도(靑邱圖)』는 전국 8도 주현을 가로 22판, 세로 29층으로 나누어 그린 첩(帖) 지도이며, 1판 1단의 길이를 동서 70리, 남북 100리로 계산해서 그린 획정지도(劃井地圖)이다. 이는 동서의 길이를 약 1,500리, 남북의 길이를 약 3,000리로 계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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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고속 철도역. KTX 광명역은 안양, 안산, 시흥, 군포, 과천, 광명을 비롯한 경기 서부 지역은 물론 서울 서남권과 인천광역시를 이용권으로 하는 역이다. 광명역 중심의 수요 인구 1,300만 명의 이용 편의를 위해 하루 14만 7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발역으로 건립되었다. 1989년 5월 경부고속철도 건설 방침이 결정되어 1994년 10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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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형명을 시조로 하고 염공거·염백거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파주염씨(坡州廉氏)는 삼한공신(三韓功臣) 염형명(廉邢明)을 시조로 하고, 공민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은 곡성부원군(谷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1304~1382]을 중시조로 한다. 달리 서원염씨(瑞原廉氏)라고도 하는데, 파주의 옛 지명이 서원이기 때문이다. 문헌에는 파주 이외에 개성(開城), 광주(廣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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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하평리(下坪里)의 ‘하’자와 안현리(安峴里)의 ‘안’자를 따서 하안(下安)이라 하였다. 안현(安峴)은 안현(鞍峴)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하안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합해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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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속하는 행정동. 하평리(下坪里)의 ‘하’자와 안현리(安峴里)의 ‘안’자를 따서 하안(下安)이라 하였다. 안현(安峴)은 안현(鞍峴)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하안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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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속하는 행정동. 하평리(下坪里)의 ‘하’자와 안현리(安峴里)의 ‘안’자를 따서 하안(下安)이라 하였다. 안현(安峴)은 안현(鞍峴)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하안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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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속하는 행정동. 하평리(下坪里)의 ‘하’자와 안현리(安峴里)의 ‘안’자를 따서 하안(下安)이라 하였다. 안현(安峴)은 안현(鞍峴)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하안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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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속하는 행정동. 하평리(下坪里)의 ‘하’자와 안현리(安峴里)의 ‘안’자를 따서 하안(下安)이라 하였다. 안현(安峴)은 안현(鞍峴)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하안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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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노온사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가학동의 ‘학’자와 노온사동의 ‘온’자를 따서 학온동이라 하였다. 학온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하여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합해 금양현(衿陽縣)이 되었고, 1416년(태종 16)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