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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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학온동 지역에서 서울 구경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서울 구경」은 학온동 능촌마을 사람들이 소일거리로 참외나 수박을 영등포에 내다 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는 서울 구경했다고 자랑한다는 소화담이다. 이러한 유형의 이야기를 세간화[야담(野談)]라고도 한다. 1999년 광명문화원에서 발행한 『학온동지』의 65쪽에 실려 있다. 이는 당시 경기도 광명시 학온동 능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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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광여도(廣輿圖)』 중 경기도 군현이 그려진 지도. 채색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36.8㎝, 세로 28.6㎝이다. 『광여도』「경기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 군현의 위치와 산맥, 수계, 진보(鎭堡)와 찰방역(察訪驛)을 확인할 수 있고, 왕릉의 위치와 서원의 표기가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산지의 묘사는 전통적인 연맥식 방식으로 표현하였고, 하계망은 한강의 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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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광여도(廣輿圖)』 중 경기도 광명시의 옛 지역인 금천현이 그려진 지도. 채색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36.8㎝, 세로 28.6㎝이다. 『해동지도( 海東地圖)』「금천현(衿川縣)」과 마찬가지로 남쪽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하였다. 산지는 연맥식을 가미하면서 환포형으로 그렸다. 읍치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안양천이고, 아래쪽의 하천이 지금의 도림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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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반 광명 지역이 시흥으로 표기된 전국 고지도. 『동여(東輿)』의 제작 시기는 함경도의 후주부(厚州府)가 처음 설치된 1822년(순조 22) 이후, 장진부(長津府)가 첨사진(僉使鎭)으로 변경되는 1843년(헌종 9) 이전으로 추정된다. 각각의 첩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같이 절첩장(折帖裝)으로 만들어졌다. 전체적인 지도의 윤곽으로 볼 때 정상기(鄭尙驥)의 『동국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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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 중 경기도 광명시의 옛 지역인 금천현이 그려진 지도. 채색 필사본으로, 가로는 47.5㎝, 세로는 30.0㎝이다. 『해동지도』「금천현」은 남쪽을 지도의 상단에 배치하여 그렸다. 산지는 회화식 기법을 가미하여 환포형으로 그렸다. 읍치에는 고을 이름과 향교만이 글자로 표기되어 특별히 부각되지는 않았다. 주변 지역에는 면이나 마을 이름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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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묘제인 가학동 지석묘는 북방식의 탁자식 고인돌이다. 예전에 이곳에서 학들이 놀았다 하여 가학동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하며, 장수바위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1960년대까지 마을 사람들의 무병장수와 풍년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광명사거리에서 안산 방면의 벌말 뒤쪽 산 정상부인 터골산과 북쪽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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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국가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경기도 광명 지역의 역사와 문화. 역사학에서 고대는 선사시대 이후부터 중세 이전까지의 시대를 의미한다. 이 시대에 존재하였던 사회 구성체와 정치 조직체를 고대 사회와 고대 국가라고 하는데, 이 시기는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영역 국가를 형성하고, 강력한 왕권 강화를 바탕으로 중앙 집권적인 관료제(官僚制)와 율령(律令)을 실시하였으며, 왕위의 부자 상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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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광명 지역의 역사와 문화. 통일신라시대 한주에 속했던 지금의 경기도 광명지역은 후삼국의 혼란기를 거친 뒤 고려의 영토에 편입되었고, 여러 차례 행정구역의 변천을 거쳤다. 고려시대의 광명 지역은 금주(衿州) 지역에 소속되었으며, 10도(道) 중에서는 관내도(關內道)에 편성되었다. 금주는 995년(성종 14)에 단련사(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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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고대 무덤. 광명시의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고대 무덤은 청동기시대 고인돌 외에 삼국시대 무덤인 고분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광명 지역이 한강 이남의 주요 교통로이며 현재의 안양천에 인접한 지역임을 감안하면 차후 유적의 발견성은 높다고 추정된다. 광명 지역의 고분은 고인돌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청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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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고인돌은 거대한 돌을 이용하여 만든 선사시대 거석 건조물의 일종으로 작은 돌이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에서 유래하였다. 이를 ‘지석묘(支石墓)’라고도 한다. 고인돌은 거의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유럽, 지중해 연안, 인도, 동남아시아, 일본 구주 지방, 중국 동해안 지역과 동북 지방, 그리고 한반도 등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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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기도 중서부에 있는 시. 광명시는 한반도 중부에 있는 기초자치단체로 경기도 중서부에 자리한다. 북쪽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동과 천왕동, 구로동, 동쪽으로는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동과 시흥동, 남동쪽과 남서쪽은 경기도 안양시, 시흥시와 접한다. 광명시의 동단인 소하1동과 서단인 옥길동 사이 거리는 6.55㎞, 북단인 철산1동과 남단인 가학동 사이 거리는 10.3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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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소하읍과 광명출장소를 통합하여 광명시로 승격하면서 법정동인 가학동과 노온사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으로 학온동을 설치했는데, 이 학온동 2통은 세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중앙에 가운데말이 있고, 가운데말에서 한치고개 방향으로 작은 능선을 넘어서면 아방리[능말·능촌]가 있고, 가운데말에서 능촌지하차도를 건너 맞은편 온신초등학교 주변에 새터말[일명 사택말로 노온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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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월리를 멀리서 보면 마치 마을 전체가 높이 237m의 구름산에 포근히 안겨 있는 듯하다. 설월리의 풍수는 이 구름산에서 시작되었다는 풍수 전문가들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이 만든 『산경표(山經表)』를 보면, 구름산은 죽산(竹山)에서 북서쪽으로 돌아 안성·용인·안산·김포에 이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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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끝나고 1960년대까지 설월리 일대 사람들은 여전히 논농사를 생업으로 꾸려 나가고 있었다. 현재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이 들어선 자리는 ‘멍석뜰’이라 불리던 논자리로, 구름산과 도고산에서 내려오는 한내와 한강으로 흘러드는 안양천이 자리하고 있는 그야말로 천혜의 입지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그렇다고 설월리 사람들이 논농사에만 매달렸던 것은 아니다. 부농도 있었지만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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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광명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고구려시대에는 잉벌노현(仍伐奴縣)이었고, 신라의 영토가 된 후 경덕왕(景德王)이 곡양현(穀壤縣)으로 고쳐 율진군(栗津郡) 관할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시대 940년(태조 23) 금주(衿州)로 고쳤다. 금주는 달리 금주(黔州)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원래 금천강씨(衿川姜氏) 시조(始祖)인 강궁진(姜弓珍)의 근거지였다. 강궁진은 고려 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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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과 노온사동 경계에 있는 구름산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안양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기아천은 소하동과 노온사동의 경계에서 솟은 구름산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설원리마을의 남쪽을 지나 가리대 부근에서 크게 굽이쳐 흐르다가 충현고등학교와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을 지나서 안양천으로 흘러들고 있다.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 앞으로 흐른다고 하여 기아천이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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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경기도 광명시를 비롯한 중부 지방에 쏟아진 폭우로 인해 발생한 수해. 1984년까지 우리나라의 기상 관측 이래 최고의 홍수로서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의 한강 수위 12.26m, 1972년의 11.24m에 이어 1984년 11.03m를 기록함으로써 세 번째로 많은 비가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강의 첨두(尖頭) 시간과 광명시를 둘러싼 안양천 및 목감천의 첨두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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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집중 호우로 인해 경기도 광명시 일원에서 발생한 수해. 광명시를 휘감아 지나는 안양천과 목감천 주변의 지리적 특성은 저지대에 형성된 자연 마을과 주거 지역이 많다는 점이다. 이런 특성상 태풍을 비롯한 강수량을 증가시키는 자연적인 기상 현상은 광명시의 자연 재해를 촉발하는 원인이 되어 왔다. 1990년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 기록을 보면 피해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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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집중 호우로 인해 경기도 광명시 및 안양시 일원에 발생한 수해. 1977년 7월 8일과 9일 경기 지방에 내린 집중 호우는 당시 우리나라 기상 관측 이래 최고의 강우량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기록에도 근접하는 것이었다. 안양천 유역에 쏟아진 집중 호우로 시흥에서는 산사태가 일어났고, 안양천은 유수량을 미처 배수하지 못해 일대가 침수되는 수해를 입었다. 당시 집중 호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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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집중 호우로 인해 경기도 광명시 목감천 유역에 발생한 수해. 1972년 8월 18일과 19일 중부 지방을 강타한 집중 호우로 광명시 목감천 주변 유역의 강우량이 급격히 하천으로 유입되면서 한강 수위가 높아지고 광명시의 수해가 가속화되었다. 1972년 당시 발생한 광명 지역의 집중 호우는 오늘날과 견주어 크게 다를 바 없는 자연재해였다. 최근에도 광명시의 저지대에 해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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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과 노온사동 경계에 있는 구름산 서쪽에서 발원하여 목감천으로 흐르는 온신천의 지천. 노온사동의 논사리[원노온사동·노온절·노온절리·노온사리·큰말]는 동·남·북쪽이 산으로 에워싸여 있고, 서쪽이 트인 마을이다. 논사리는 본래 이곳에서 서남쪽으로 약 700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마을이 전소되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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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농산물의 재배와 생산 및 품질 관리 활동. 농업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각종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기초가 되는 산업이라고 할 수 있고, 지역 환경에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광명은 예로부터 지류가 발달하고 수자원이 풍부한데다 안양천 주변에 충적 평야가 발달하여 사람들이 정착하기에 적합한 지역이었으나 대부분 저습지로 호우 시에 피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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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자연마을. 1646년(인조 24) 월당(月塘) 강석기(姜碩期)의 2녀이자 소현세자 빈인 민회빈 강씨가 사사(賜死)되자 친정인 기와집골[능말에서 동남쪽으로 약 800m 지점] 위에 장사 지냈다. 이후 민회빈 강씨는 1718년(숙종 44) 세자빈으로 복권되었고 묘는 민회원으로 승격하였다가 영회원(永懷園)으로 개칭되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민회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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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서식하는 왜가릿과에 속하는 조류. 덤불해오라기는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서태평양 등지에 서식하며 우리나라를 찾는 여름새이다. 전국적으로 갈대와 부들, 줄 등의 친수성 또는 정수성 수생 식물이 밀생하여 천적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유리하고 적절하게 그늘을 제공하며, 먹이 활동하기에 좋은 곳에서 부들의 잎을 엮어 둥지를 틀고 번식을 마친다. 몸집이 작기 때문에 부들과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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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도덕산(道德山)에 있는 백제시대의 보루(堡壘). 도덕산 보루군은 도덕산성으로 알려진 유적이다. 1977년의 조사에 따르면 둘레 700m 정도의 토석축(土石築)으로, 삼국시대 산성지(山城址)라 보고되었다. 그러나 1986년의 조사에서는 도덕산[198m] 성지(城址)로 삼국시대 후기의 백제 유적과 함께 성지나 봉수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2003년의 조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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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 광명 지역 일대를 이해할 수 있는 32여 종의 지도를 수록한 지도첩. 『동여비고(東輿備考)』는 제목의 뜻으로 보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이용하는 데 참고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조선 전기에 제작된 『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동람도(東覽圖)』 보다는 훨씬 자세하다. 또한 조선 후기에 제작되는 도별도(道別圖)나 군현도(郡縣圖)와는 달리 도별도와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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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국가시대 경기도 광명 지역을 포함해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던 정치연맹체로, 삼한 중의 하나이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는 마한(馬韓) 지역에 위치한 54개 소국(小國)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데, 큰 것은 1만여 가(家)에서부터 작은 것은 수천 가에 이르렀다고 나와 있다. 마한 54개 소국은 규모가 큰 나라의 지배자는 신지(臣智)라 하고, 작은 나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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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서식하는 물둥구릿과에 속하는 곤충. 물둥구리는 비교적 서식 분포가 적은 것으로 알려진 희귀한 종류의 수서 생물이다. 흔히 볼 수 있는 곤충은 아니며 희소성에 따라 보호종으로 보호받을 가능성도 충분한 생물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중부 이남의 마름이 군락으로 서식하는 저수지, 하천변, 웅덩이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잘생긴 모양 때문에 희생되는 경우도 많다. 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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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수해에 대비해 설치한 배수 시설. 광명시는 수해 지역에 배수펌프장을 설치하여 내수를 안양천과 목감천으로 배출하는 방법으로 수해 대책을 세워왔다. 1985년 철산배수펌프장을 시작으로 1989년에는 광명배수펌프장과 하안배수펌프장을, 1993년에는 광명 제1·2·3펌프장을, 2002년에는 소하배수펌프장을 각각 설치했으며 현재 배수펌프장은 총 7개이다. 광명배수펌프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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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통칭하는 역사와 문화. 우리나라의 선사시대(先史時代)는 구석기시대·중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기는 대체적으로 약 70만 년 전부터 시작하여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를 의미한다. 다만 중석기시대의 경우 그 존재 여부에 대해 아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선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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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2월 서면공립보통학교 교장 기타야마 와카니치(北山若二)와 교사 성만용(成萬鏞)이 편찬한 『서면향토지』를 통해 읽혀지는 설월리는, 서면의 면소재지임에도 상가나 유흥 시설, 금융 기관, 병원 등의 시설들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여타 지역의 면소재지와 비교해 보면 사뭇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서면향토지』는 1927년 서면공립보통학교의 초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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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현재 아방리[능말]의 세거 성씨로는 금천강씨와 김해김씨, 남원양씨를 들 수 있다. 남원양씨의 선산은 원래 제2경인고속도로가 관통하는 구름산 기슭에 있었으나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지방으로 옮겼다. 김해김씨의 선산은 아방리[능말] 마을 공동묘지 옆에 있다. 남원양씨와 김해김씨는 아방리[능말]에 사당을 짓거나 독자적인 종친회 조직을 갖지 못했다. 이것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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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관악구와 경기도 안양시에 걸쳐 있는 삼성산에서 발원하여 광명시와 구로구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안양천의 지명은 안양 시가지 앞을 지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안양을 중심으로 뒤로는 수암천이 지나고 있고, 앞으로는 안양천이 흐르기 때문에 안양천을 앞개울이라 하고, 수암천을 뒷개울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갈천(葛川)이라고도 불렀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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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안양천의 생태를 복원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 연합. 광명시 관내를 흐르는 안양천은 1400년경에는 대천(大川)으로 불렀으며, 조선 후기부터는 대천 또는 기탄(岐灘)으로 불리다가 근세에 이르러 안양천이 되었다. 자연 상태의 하천은 하천수의 침식, 운반, 퇴적 등 활동으로 모습이 끊임없이 변해 가며 하천 특유의 다양한 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다. 191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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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학온동 서독산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흐르다가 일직저수지를 이루고, 동류하여 안양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양지천은 서독산 210고지 남쪽에서 발원하여 북쪽부터 75고지~210고지~219고지~209고지~158고지를 지나 남동쪽으로 흐르다가 양지편마을 남쪽을 지나 일직저수지를 이루었다가 동류하여 안양천으로 흘러든다. 양지천은 한강의 제2지류로, 하천의 길이는 2㎞이다.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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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기도 광명시의 역사. 2010년 현재까지 광명 지역에서는 구석기 및 신석기시대의 유적지가 조사, 보고된 적이 없다. 그러나 목감천 등 하천 주변에 평야 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광명시의 지형적 특성으로 미루어 향후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은 적지 않다. 광명 지역에 사람들이 정착한 것은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철산동 고인묘와 가학동 지석묘 등을 통해 확인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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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광명시는 경기도의 남서부 중앙에 자리하여 북쪽과 북동쪽은 서울특별시 구로구와 금천구 시흥동, 남동쪽과 남서쪽은 경기도 안양시, 시흥시와 경계를 이룬다. 광명시는 광주산맥 끝자락인 수리산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가학산(駕鶴山)[220.2m], 서독산(書讀山)[180m], 구름산(雲山)[230m], 도덕산(道德山)[183.1m]으로 이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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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친 일본의 침략으로 경기도 광명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정유재란을 포함]까지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략한 일본과의 전쟁이다. 16세기 후반 일본의 전국시대의 혼란을 마감시키고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던 지방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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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광명 지역에 설치된 통치구역.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이 427년(장수왕 15) 수도를 국내성(國內城)에서 평양(平壤)으로 천도한 후 적극적인 남진(南進) 정책을 실시하여, 475년(장수왕 63) 백제의 수도인 한성(漢城)을 함락하고 개로왕(蓋鹵王)을 전사시키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였다. 이후에 한강 유역을 고구려 영토로 편입하기 위하여 종래 백제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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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산리가 속해 있는 광명시청이 개청 이후 가장 먼저 맞은 지역 문제는 홍수였다. 1981년 7월 2일 새벽, 광명시민들이 광명시청 개청으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곤히 잠들어 있던 시각, 수도권 일대에 내린 집중 호우로 213가구가 침수되고 833명이 인근 학교로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당시 철산리를 포함한 광명 지역은 안양천이 동쪽으로 흐르고 시 북쪽 끝에서는 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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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자연마을. 자경리(自京里)는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조선시대 서울의 경계로 이제부터 서울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자경리는 옛 시흥군 영역이었고, 당시 시흥군과 서울의 경계 지역은 서울 한강이 되므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광산김씨 대종중 정묘보[1747]와 병자보[1876]에는 성채산이 공경 받는 선비인 김원록(金元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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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자연의 예기치 않은 변동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피해. 자연재해는 수해, 풍해, 한발, 폭설, 지진 등의 급격히 나타난 자연 현상 때문에 입는 재난이다. 이를 천재지변, 기상재해, 기후재난, 자연재앙 등이라고도 한다. 자연재해는 발생 원인에 따라 크게 기상재해와 지질재해로 구분할 수 있다. 기상재해는 태풍·홍수·호우·폭풍·해일·폭설·가뭄·냉해·우박·상해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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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북쪽 가학산 능선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흘러 목감천에 유입되는 하천. 장절천은 광명시 노온사동의 북쪽 가학산 능선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흘러 546고지~105.9고지와 장절리 동창골을 지나 목감천에 흘러드는 하천이다. 한강의 제3지류로, 하천의 길이는 2㎞이다. 장절천은 「소하천정비법」에 따라 하천으로 지정조차 되어 있지 않은 하천이다. 게다가 도로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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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지역 간, 지방 자치 단체 간 분쟁과 갈등이 점점 복잡하고 다양한 양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주민들의 편익 증진이란 저마다의 타당성과 당위성을 내세우며 생활 폐기물 소각장과 하수 종말 처리장, 분뇨 처리 시설 등 ‘환경 기초 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분쟁과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방 자치 단체장들은 자신의 임기 안에 님비 현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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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하천 이용과 관련하여 광명 지역에 내린 조치. 조선하천령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의 어업 및 하천 이용에 관해 내린 규제 명령으로, 하천을 국토 경영의 일환으로 철저히 관리하려는 목적에서 시행되었다. 조선하천령을 통해 하천이 국유로 규정되었으며, 하천변과 둑 등 하천 구역에 대해서도 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폐천(廢川) 처분의 규정이 없어 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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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을 이루는 땅의 생긴 모양이나 형세. 지형은 해발 고도에 따라 산지, 구릉지, 평야[하천, 저수지]로 분류할 수 있다. 광명시는 광주산맥의 끝자락인 수리산(修理山)[474.8m]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부터 가학산(駕鶴山)[220.2m]을 비롯하여 서독산(書讀山)[180m], 구름산[雲山][237m], 도덕산(道德山)[183.1m]에 이르는 저산성산맥을 형성하며 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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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 집성촌은 우리나라 전통 사회의 한 특징으로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함께 모여 사는 촌락을 말한다. 집성촌이 형성된 시기는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 보기도 하지만, 조선 전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17세기 이후에 정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집성촌의 형성은 가족 제도와 친족의 범위, 혼인, 상속 제도와 관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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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서식하는 바위겟과의 갑각류. 우리나라와 중국 등지에 오래전부터 살았던 기록이 남아 있다. 실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참게가 잡힌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수산 자원을 집대성한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참궤라 하여 형태와 게를 잡는 방법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 『규합총서(閨閤叢書)』나 『전어지(佃漁志)』에도 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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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철산동 지석묘는 광명시 철산동 222-1번지[시청로 20]에 있다. 철산동 지석묘는 본래 광명시 철산동 462-33번지에서 확인된 고인돌이나 현재는 광명시민회관 경내로 옮겨져 있다. 철산동 지석묘의 형태는 강화도 삼거리에 있는 3호 고인돌과 매우 유사한 모습이다. 두 개의 굄돌이 덮개돌을 받히고 있는 전형적인 탁자식[과거에는 북방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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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대지도로, 경기도 광명의 옛 지명인 시흥의 역사 지리를 이해할 수 있는 지도. 『청구도(靑邱圖)』는 전국 8도 주현을 가로 22판, 세로 29층으로 나누어 그린 첩(帖) 지도이며, 1판 1단의 길이를 동서 70리, 남북 100리로 계산해서 그린 획정지도(劃井地圖)이다. 이는 동서의 길이를 약 1,500리, 남북의 길이를 약 3,000리로 계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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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청동(靑銅)을 도구로 사용하였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는 청동을 도구로 사용하였던 시대이다. 청동기는 광석에서 구리를 추출하고 주석·아연·납 등 몇 가지 다른 원소의 금속을 배합하여 합금(合金)하는 야금술(冶金術)이다. 이러한 야금술은 고도의 숙련도와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청동기시대에는 석기시대의 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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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는 산과 물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조화의 원리를 이용하여 인간 생활의 안락과 풍요를 추구하기 위해 발달한 학문이다. 풍수지리는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시켜 죽은 사람을 묻거나 집을 짓는 데 알맞은 장소를 구하는 이론이다. 풍수지리에는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한 동아시아의 자연관이 잘 나타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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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의 육지 표면에서 일정한 유로를 가지는 유수의 계통. 하천은 유역에 떨어진 강수를 일정한 유로를 통하여 배수한다. 하천은 비가 그친 후에도 마르지 않고 물이 흐르므로 지형도에서 청색 실선으로 그려진다. 광명시의 하천은 국가하천인 안양천과 지방하천인 목감천, 가학천 그리고 소하천인 옥길천, 가락굴천, 한교천, 온신천, 소하천, 노온사천, 노리실천, 가학1천, 가학2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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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광명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신라 진흥왕(眞興王)은 553년(진흥왕 14) 백제의 한강 유역을 빼앗아 신주(新州)를 설치하였고, 이후 몇 차례의 변천을 거쳐 백제를 멸망시킨 후인 664년(문무왕 4) 한산주(漢山州)로 개칭하였다. 문무왕(文武王)은 667년(문무왕 7) 무렵 당(唐)과 연합하여 백제 유민의 저항을 진압하고 또 고구려를 멸망시키고자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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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광명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신라의 진흥왕(眞興王)은 553년(진흥왕 14) 백제의 한강 유역을 빼앗아 신주(新州)를 설치하였고, 557년(진흥왕 18) 신주를 폐지하고 북한산주(北漢山州)를 설치하였다. 664년(문무왕 4) 한산주(漢山州)로 개칭되었고, 685년(신문왕 5)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재편할 때 9주의 하나가 되었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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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서식하는 왜가릿과에 속하는 여름새. 황로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필리핀, 타이완, 일본, 인도, 스리랑카 등 온대 및 열대 지방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 조류로, 최근에는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까지 서식 영역이 넓어졌다. 외형은 흔히 보는 백로를 닮아 있으나 암수 모두 머리에서 목과 가슴을 타고 내려온 깃털, 등의 일부, 부리와 눈 색깔 등이 황색이나 황갈색을 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