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군 서면 가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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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일제 강점기 금·은·동·아연 등을 채굴하다가 광복 후 오랫동안 버려졌던 가학리 광산을 동굴 테마 파크로 만든 이야기. 광명동굴에 관한 첫 기록은 1950년에 발행된 『금천지』에 보인다. 1903년 5월 2일 시흥군 가학리에 ‘시흥광산’이 개광(開鑛)되었다고 수록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1912년 이이다 큐이지로[飯田 九一郞]라는 일본인 이름으로 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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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가골[가곡(駕谷)]은 가학동의 명칭이 유래한 곳으로 학(鶴)이 깃들여 살고 학들이 멍에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므로 가골·멍에골짜기 또는 원가학이라 하였다. 마을 뒷산도 풍수지리상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가골은 조선 전기 병조판서와 예조판서를 지내고 옥천부원군에 봉해진 순창설씨(淳昌薛氏) 설계조(薛繼祖)[1418~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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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의 산업 중 광물의 채굴(採掘)·선광(選鑛)·제련(製鍊) 등과 관련된 업종. 광업은 지하 및 지표에서 고체, 액체 및 기체 상태의 천연 광물을 채굴·채취·추출하는 산업으로 분류 방법이 다양하지만 대체로 생산되는 주요 광물의 종류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광명시에서는 1970년대 초반까지 채광이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현재는 운영되고 있는 광산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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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아버지는 병조참의 구춘보(丘春甫)이다. 아들로 사헌부대사헌 구치곤(丘致崑)과 조카 구종직(丘從直)이 있다. 구차숭(丘次崇)은 1442년(세종 24) 영해부사(寧海府使)를 거쳐 1451년(문종 1) 예빈시판사(禮賓寺判事)를 역임하였고 첨절제사(僉節制使)에 이르렀다. 묘소는 경기도 광명시 학온동[옛 시흥군 서면 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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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증조할아버지는 구천우(丘天雨)이고, 할아버지는 구춘보(丘春甫)이며, 아버지는 구차숭(丘次崇)이다. 외할아버지는 김윤(金贇)이다. 부인은 조후지(趙厚之)의 딸이다. 동생으로 구치강(丘致崗)을 두었다. 구치곤(丘致崑)은 1464년(세조 10) 진사로서 식년문과(式年文科) 정과(丁科)에 급제한 뒤 1479년(성종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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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옛날에 산림이 울창해 노루가 많아서 노루실이라 하였다가 음의 변하여 노리실이 되었다는 설, 마을 주민들이 풍류를 좋아해 노래실이라 하였다가 이후 노리실로 변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인근 경기도 시흥시 논곡동 주민들이 옮겨 와 처음 마을을 이루었으므로 노온곡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마을 이름과 관련하여 『광명시지』 제1권에는 넓다는 뜻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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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이 독 안처럼 생겨 독안이라 하였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발음이 변하여 도구내가 되었다는 설, 서독산을 넘어 소하동으로 가는 고갯마루에서 발원한 작은 내의 이름인 도고내[道高川]에서 따 온 이름이라는 설이 전한다.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도 지도와 함께 도고내라는 하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오래전부터 도고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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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공석골 뒤에 있는 마을이므로 뒷골이라 하였다. 달리 둔전현(屯田峴)이라고도 하였다. 뒷골은 공석골에 살던 창녕성씨가 번성하여 분가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조선시대에는 시흥군 서면 유등리에 속하였고, 1914년 시흥군 서면 가학리에 속하였다. 1964년 시흥군 서면 가학3리에 속하였고,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광명시 가학동에 속하였다. 행정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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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광명시에서 가장 먼저 장(場)이 열린 마을이어서 장터말이라 하였다. 장터말은 파주염씨가 처음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이룬 마을로, 조선 말기에는 시흥군 남면 장기리였고, 1914년 시흥군 서면 가학리에 속하였다. 1964년 시흥군 서면 가학5리에 속하였고, 1981년 시제 실시로 광명시 가학동에 속하였다.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학온동 9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