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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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지역은 남북으로 가학산과 서독산, 구름산, 도덕산이 길게 시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형성된 지역이다. 이 산들을 중심으로 광명동과 철산동, 하안동, 소하동, 일직동, 가학동, 노온사동에 속한 자연마을에 깃들여 많은 사람들이 누대에 걸쳐 살아왔다. 그러나 도덕산 자락의 철산동과 하안동, 광명동 지역은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급격하게 진행된 도시화로 본 모습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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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원록·김대덕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광산김씨(光山金氏)는 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하며 크게 문정공파·문숙공파·양간공파·낭장공파·사온직장공파 등 5개 파로 나누어진다. 이 가운데 사온직장공파는 7세손에서 분파되어 봉사공파로 계대를 이어 오다가 9세손에 이르러 김원상(金元祥)을 파조로 하는 소봉공파, 화성군에 정착한 김원복(金元福)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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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시조는 신라의 왕족인 김흥광(金興光)이다. 고려 초기부터 명문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한 광산김씨는 김위(金位)와 김주영(金珠永) 형제 대(代)에서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져 김광세(金光世)와 김광존(金光存)의 양대 산맥으로 분파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급제자가 배출되었으며 정승 5명, 대제학 7명, 청백리 4명, 왕비 1명이 나왔다. 김흥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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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자경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대성의 묘소.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자경리는 광산김씨 돈녕공파와 소봉공파 후손 50여 세대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마을이었으나 후에 덕안리, 궁촌, 새터말 등이 새로 형성되면서 90여 호의 마을을 이루었다. 1950~1960년대에는 새마을운동, 4H 활동을 통하여 지붕 개량, 부엌 개선,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공동 상점, 정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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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에 정착한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광산김씨 25세손으로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감찰(行司憲府監察)을 지낸 김종(金綜)이고, 어머니는 이양(李樑)의 딸이다. 김원록(金元祿)[1546~1627]은 1588년(선조 21)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공조·형조의 좌랑을 역임하고, 1594년(선조 27) 병조좌랑이 되었다. 이어 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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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2동에 있던 자연마을. 허허벌판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벌말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당시 시흥군 관아가 있던 상평리 아래에 있는 마을이어서 하평리라고 하였다. 현재 하안동의 ‘하(下)’자는 하평리에서 유래하였다. 벌말은 광산김씨·전주이씨·광주이씨·진주강씨·진주하씨·하동정씨·안동김씨·경주최씨·청주한씨·신안주씨 등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마을로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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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광명동에 있던 자연마을. 광명동에서 가장 늦게 새로 형성된 마을이므로 새터말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 초에 광산김씨·남양홍씨·원주원씨 등이 정착해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이루었다. 조선 말기 시흥군 서면 광명리에 속하였고, 1964년 시흥군 서면 광명2리에 속하였다. 1981년 광명시 광명동에 속하였고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광명7동에 속한다. 일제강점기에는 17가구가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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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자연마을. 조선 중기의 명재상이었던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이 관직에서 물러나 영당말에 살면서 호미로 농사를 지었다고 하여 ‘호미 서(鋤)’자를 써서 서월리(鋤月里)라 하였다가 발음이 변하여 서러리라 하였다는 설, 이원익이 눈 오는 밤에 마을길을 걸으면서 사색에 잠기곤 했다 하여 설월리(雪月里)라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조선시대에 시흥군 서면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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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여러 대에 걸쳐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 특정 지역의 세거성씨(世居姓氏)는 어떤 가문이나 인물이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세거성씨는 입향조(入鄕祖)가 있게 마련인데, 입향조는 실존한 인물로서 추적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역사가 오래되어 막연히 성씨만 구전되는 경우도 있다. 촌락 사회, 특히 집성촌에서는 입향조를 정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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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옥길동에 있는 자연마을. 광명동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배부른 사람이 누워 있는 형상이고 만수산(萬壽山) 산봉우리가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므로 식골[食谷]이라 하였다. 예전에는 서북쪽에 이웃한 해방촌과 남쪽에 이웃한 시흥시 과림동 숯두루지마을[일명 탄평동(炭坪洞)]이 한 마을로 통칭되어 숯두루지마을 사람들은 식골을 큰말이라 하였다. 식골은 파주염씨·전주이씨·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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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1동에 있는 자연마을. 예부터 나라에 전란이 일어나도 마을이 안쪽에 있어 피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도둑이 없고 인심이 좋아 살기에 편한 마을이므로 붙인 이름이라는 설, 삼태기처럼 오목한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전한다. 안터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1506년(중종 1)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올라 운수군(雲水君)에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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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자연마을. 자경리(自京里)는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조선시대 서울의 경계로 이제부터 서울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자경리는 옛 시흥군 영역이었고, 당시 시흥군과 서울의 경계 지역은 서울 한강이 되므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광산김씨 대종중 정묘보[1747]와 병자보[1876]에는 성채산이 공경 받는 선비인 김원록(金元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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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 집성촌은 우리나라 전통 사회의 한 특징으로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함께 모여 사는 촌락을 말한다. 집성촌이 형성된 시기는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 보기도 하지만, 조선 전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17세기 이후에 정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집성촌의 형성은 가족 제도와 친족의 범위, 혼인, 상속 제도와 관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