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광명 지역 역사. 조선 왕조는 1392년 7월 17일[음력] 이성계(李成桂)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恭讓王)에게서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오름으로써 시작되었다. 경기도 광명 지역은 조선시대에 금천 또는 시흥이라 일컬어졌던 지역에 주로 속해 있었다. 금천은 고구려의 잉벌노현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금주(...
조선 전기 광명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조선 왕조는 개국 이후 중앙 집권을 강화하고자 지방 통치를 개편하였다. 지방 통치 개편은 도제 시행과 관찰사 파견, 수령 파견 지역 확대, 면리제 시행 등으로 구체화되었으며 예전 비효율적인 지방 행정구역 통합도 그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금천현(衿川縣)을 과천현(果川縣)과 통합하여 금과현(衿果縣)이라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
조선 전기 광명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조선 왕조를 건국한 주도 세력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중앙 집권 국가의 건설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한 속현(屬縣)이 많아 지방 분권적인 측면이 매우 강하였고 이 때문에 중앙의 권력이 지방에 미치는 영향력은 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조선 건국의 주도 세력은 지방 통치 행정에 대한 대대적인...
경기도 광명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금천(衿川)에서 ‘금(衿)’은 율진군(栗津郡)의 속현이었던 곡양(穀壤)을 고려 초기에 금주(衿州)[『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금천으로 기록되어 있음]로 고친 데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여겨진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 1413년(태종 13) ‘주(州)’라는 명칭이 읍격에 관계없이...
조선 후기 광명 지역에서 시행된 것으로 추측되는 은광 채굴. 조선 전기의 광산 개발은 중국에 대한 사대 조공품 및 국용(国用) 조달과 관련되어 진행되었고, 광산의 개발은 국가가 주도하였다. 그런데 지방의 수령이나 지역민들은 부담이 큰 채굴 작업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조선 초기 광산의 개발은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중국과의 무역량이 점차 늘어나면서 은을 무역 대금으...
1592년부터 15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친 일본의 침략으로 경기도 광명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정유재란을 포함]까지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략한 일본과의 전쟁이다. 16세기 후반 일본의 전국시대의 혼란을 마감시키고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던 지방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