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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추에 반하여 도장 파는 기술을 배우다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B030201
한자 扇錘-圖章-技術-
지역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능말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청곡부채박물관장 금복현 씨는 장인의 삶을 살아왔다. 그는 잊혀 가는 우리의 민예품을 수집하고 끊임없는 호기심과 도전 의식을 가지고 공예 기술을 익혔다. 현재 아방리[능말]에 거주하고 있는 금복현 씨가 걸어온 길을 통해 장인의 삶과 현재 아방리[능말]에 거주하는 이주민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손재주가 좋아서 안 해 본 게 없어]

금복현 씨는 충청남도 아산이 고향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경상도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의 일이었다. 이웃의 6학년 형들이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도장을 만든다고 하여 함께 도장집에 따라갔다. 그곳에서 그는 도장을 파는 아저씨가 부채 밑에 달아 놓는 것을 제작하는 것에 주목했다. 너무나 신기하여 아저씨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 보았으나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선추[부채고리에 매어 다는 장식품]’였다. 그는 그때부터 도장집에 가서 어깨너머로 도장 파는 기술을 배웠다. 그 후 도장을 파서 용돈을 벌기도 하였다.

그는 총각 때 공주에서 옛날돈 가게를 하면서 도장을 새겼다. 잠시 서울에 와서 살다가 22세 때 공주읍사무소에서 방위로 근무하며 그곳에서 가게를 하였다. 그때 결혼을 하여 군복무를 마친 후 서울 화곡동에서 표구사를 하다가 부채 수집에 미쳤다. 원래 손재주가 비상하고 골동품을 좋아했던 그는 골동품 가게를 하면서 화폐 수집도 하였다. 나중에 표구사를 하면서 선추를 만들어 보았으나 그것을 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부채에 미처 살았지]

이후 금복현 씨는 부채를 만들어 표구사에 걸어 놓았는데 왕래하는 화가들이 부채를 좋아했다. 화가들은 부채에 그림이나 글씨를 넣어도 되기 때문이다. 당시 부채는 공장에서 종이, 살, 그림 등을 분업적으로 제작했으며 전통적인 부채를 만드는 장인들은 손을 놓고 있었다. 그래서 금복현 씨는 전통 부채를 만드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제작 기법을 배웠다. 부채에 미쳐 표구사를 등한시하다 보니 가게를 잃고 빚도 많이 졌다. 할 수 없이 안산시 고잔동으로 이사를 하여 연탄을 피우는 15평[49.59㎡]짜리 아파트에서 살았다. 봉지쌀을 사먹으면서 어렵게 생활했다.

당시 전통 부채를 제작하여 1983년 서울의 남산타워에서 전시회를 했는데 호응이 매우 좋았다. 그리하여 교보문고와 미8군부대 등지에서 자주 전시회를 가졌다. 그러던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후에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공예품을 찾던 문화관광부에서 그가 만든 부채를 선정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중동 지역 외교에 신경을 많이 쓰던 시절이라, 그는 중동 등 세계 18개국에 전시회를 하였다. 그 부채를 문화부에서 전량 구입해 주었다. 그 후 제9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일명 전승고예전]에서 특별상을 탄 후로 부채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 당시 영부인이었던 이순자 씨가 부채를 좋아하여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부채를 많이 주문했다. 한샘부엌가구에서도 3천 개를 주문하였다.

[30년 외길로 부채 전문가로 우뚝 서다]

과거에 목각 공예, 표구, 그림 등 다양한 것을 만들어 본 그에게 부채는 모든 기술을 동원할 수 있는 종합 공예품이었다. 목각 공예를 만드는 기술은 부채 자루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으며, 한지 공예 기술은 문양을 오려 붙이는 데, 표구사를 했던 경험은 부채를 붙이고 풀 쓰고 평평하게 만드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부채를 만들면서 글씨와 그림도 넣고, 조각도 하고 공예도 하며, 문양도 넣고 수를 놓기도 하는 등 종합 공예품인 부채는 그의 모든 재능을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부채를 만들면서 상도 많이 타고 해외 전시도 다니면서 그렇게 바쁘게 30년을 보내고 나니 그는 어느덧 부채 제작의 전문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부채는 그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다. 문화부에서 감사패를 받기도 하고, 경기도 우수공예인물로 지정되기도 하였으며, 20년간 민속박물관에서 강사를 하기도 했다.

그는 민속 공예품 전반에 관심이 많아 전통 의상과 표주박, 한지 공예, 장도칼, 전통 부채, 목각 공예, 열쇠패, 옛 안경과 안경집, 화폐에 대한 수집도 많이 하였다. 옛 안경과 안경집에 대해서는 책을 집필할 정도로 연구를 많이 했다. 그 덕분인지 지금은 대학의 안경학과에서 그의 책을 교재로 사용한다. 화폐를 수집하여 별전에 대해서도 책을 썼다. 그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부채를 많이 팔면서 생활에 많은 보탬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부채 주문이 뜸하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것이 그가 가야 할 길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정보제공]

  • •  금복현(남, 노온사동 주민, 청곡부채박물관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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