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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가옥들의 이모저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A010205
지역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설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학

[설월리의 얼굴 돌담길]

설월리에 들어서서 거닐다 보면 그 정겨움에 빙그레 웃음 짓게 하는 것이 있다. 자연을 닮은 모습, 아니 자연 그대로 얼기설기 쌓아 놓은 까만 돌담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담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은 돌담도 많다. 아마도 밭에 나뒹구는 돌들을 집 주위에 둘러 모아 놓은 모습에 가깝다. 이웃이라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저녁 찬거리가 뭔지 곁눈질도 가능했으리라.

설월리 돌담은 차가운 돌이 아니다. 돌이 꽃과 풀을 껴안는다. 봄이나 여름에 설월리를 방문한다면 담쟁이덩굴과 꽃들의 다툼에 숨어 살짝 어깨를 드러낸 돌담의 속살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설월리에 돌담이 많은 것은 마을이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밭을 일굴 때 돌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도 텃밭에는 돌을 골라내어 한쪽에 쌓아 놓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옛날 돌담을 에운 아담한 초가집들이 모여 있던 작은 마을이 설월리의 본래 모습이었을 것이다.

돌담이 있으니 골목은 자연스레 돌담길이 된다. 지금은 드문드문 그 흔적만 남아 있지만 설월리 전체의 돌담길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옛 설월리 주민들의 추억이 깃든 옛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설월리 돌담의 모습은 다양하다. 돌 틈 사이에 흙을 발라 번듯하게 세우고 기와를 올린 담장이 있는가 하면 되는 대로 쌓아 올려 구멍이 숭숭 뚫린 허술한 돌담도 많다. 오랜 세월을 보낸 탓도 있지만 주민들이 노쇠해 한쪽이 허물어진 채 방치되거나 비닐로 덮어 추가 붕괴를 막아 놓은 모습도 보인다. 비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더 이상 막아 내지 못하는 안간힘이 느껴진다. 그래서도 돌담은 그대로 설월리의 얼굴이다.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었기에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디 그러고 싶어 그러했겠는가. 돌담길을 둘러보며 그들의 애환도 함께 느껴 볼 일이다.

[군수댁으로 불리던 최동영 씨 댁]

소하2동 333-1번지[설월길 134호]에 있는 최동영 씨 댁은 1800년대 말에 지어졌다. 구름산 자락을 등진 남향집으로, 마을 중심부에서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한 전통 한옥이다. 대문 앞으로 설월길과 연결된다. 설월길은 왕복 2차선 도로로, 설월리를 관통하는 약 350m 길이의 주요 도로다.

마을 사람들은 이 집을 ‘군수댁’으로 부르는데, 이것은 최동영 씨의 할아버지 최원식 씨가 경상도 의령군수를 역임했기 때문이다. 바깥마당을 포함해 본래는 500평[1652.89㎡] 정도였으나 현재 대지 면적은 350평[1157.02㎡] 정도 된다. 건축된 지 150여 년이 된 이 가옥의 널따란 바깥마당은 가을걷이가 끝난 후 수확물을 쌓아 놓던 공간이라 한다.

바깥마당의 오른쪽으로는 꽤 큼직한 은행나무[지름 0.45m, 높이 7.5m]가 서 있는데, 이 나무를 심은 유래가 있다. 지금은 복개 공사를 해서 길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최동영 씨 집 옆과 옆집 앞 사이로 수채 구멍이 있어 작은 개울을 이루고 흘렀다고 한다. 45년 전에 관에서 나무를 심으라고 장려를 할 즈음에 마침 그 곳이 두 집 땅의 경계라 그 표시를 위해 심었다는 것이다.

마당 오른쪽의 바깥마당을 지나 일자형 7칸 문간채를 지나면 안채와 연결된다. 문간채를 오르는 계단은 네 개인데, 자연석을 다듬어 쌓아 놓았다. 안채 오른쪽으로 일자형의 창고 건물이 한 채 있었으나 지금은 시멘트 건물로 다시 지어 사용하고 있다. 안마당 가운데에 네모난 화단을 만들어 화초들과 단풍나무를 심어 놓았다. 안채의 오른쪽 빈터는 창고와 만나 뒷마당과 연결된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뒷마당에는 장독대가 있고, 높게 쌓은 돌담이 에워싸듯 둘러쳐 있는데, 그 위에는 기와가 덮여 있다. 최동영 씨 댁은 6·25전쟁 중에 인민군이 주둔지로 사용했으나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1960년대의 가옥, 최문락 씨 댁]

소하2동 329-1번지[설월길 100호]에 있는 최문락 씨 댁은 1960년에 지어진 집이다. 남향집으로, 대문에서 설월길까지 약 20m 떨어져 있는데다 주변에 주택들이 인접하고 있어 길에서 집이 보이지 않는다. 대지 216평[714.05㎡]에 가옥 면적은 44평[145.45㎡]이다. 바깥마당에는 목조 창고와 시멘트 벽체의 슬레이트 지붕 화장실, 간이 차고가 있다. 사랑채는 붉은 벽돌의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축했고, 안채는 전통가옥이다. 안마당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으며 수도가 설치되어 있다. 안채 부엌은 뒷마당으로 연결된다. 굴뚝은 붉은 벽돌로 모두 개조했으며 시멘트 장독대가 마련되어 있다. 예전에는 현재의 벽돌 담장이 없었으며 골목길도 공터였다고 한다.

[100여 년 전에 지어진 장덕열 씨 댁]

소하2동 324-26번지[설월길 12호]에 있는 장덕열 씨 댁은 1900년대 초에 지어진 집이다. 동남향으로 앉아 있는 집의 대문이 설월길의 입구와 연결되어 있으며, 집의 바로 뒤쪽이 소하2동주민센터다. 집의 대지는 텃밭을 포함해서 203평[671.07㎡]인데, 안마당은 시멘트로 포장했고 마당 가운데에 둥그런 자연식 정원을 조성하였다. 약 100여 년 전에 건축된 이후 1963년 지붕을 수리했을 뿐 거의 보수를 하지 않아 옛 모습 그대로이다.

20여 평[약 66.11㎡]의 바깥마당 텃밭에는 상추, 아욱, 고추, 파 등을 재배하고 있다.

[관감당의 이웃, 이양호 씨 댁]

소하2동 1079번지[도당원길 13호]에 있는 이양호 씨 댁은 1944년에 지어졌다. 남동향의 집으로, 구름산을 뒤로 하고 남동쪽의 성채산을 앞에 두고 있다. 오리 이원익(李元翼)[1547~1634] 대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관감당과 이웃해 있다.

이양호 씨 댁 주변에는 충현박물관을 비롯해 연립 주택과 일반 주택, 상가 등이 섞여 있다. 집의 왼쪽으로 130여m의 거리를 두고 도당원길[구름산의 도당굿에서 비롯된 명칭]과 오리로가 연결된다.

대지 200여 평[약 661.16㎡]과 집 주위의 땅을 합치면 모두 340여 평[약 1123.97㎡]이나 된다. 바깥마당에서 집으로 향하는 입구와 마당에는 작은 창고 건물과 함께 앵두나무, 감나무, 오동나무와 다양한 화초 들이 심어져 있다. 안채의 뒷마당에는 상추, 고추, 열무 등 여름 채소를 재배하는 텃밭이 있다. 안채의 왼편으로는 부엌과 연결되는 공간으로 장독대와 창고 건물이 있다. 안마당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는데, 안채와 사랑채는 큰 변형 없이 유지되고 있으나 안채의 부엌은 현대식으로 개조하였다.

이밖에도 소하2동 설월리에는 1800년대 말에 지어진 최범락 씨 댁[소하2동 33-2번지]과 1950년대 지어진 장혜순 씨 댁[소하2동 332번지최창락 씨 댁[소하2동 354-4번지] 등이 전통가옥의 멋을 내뿜고 있다.

[정보제공]

  • •  이양호(남, 1924년생, 소하2동 설월리 주민)
  • •  최문락(남, 1939년생, 소하2동 설월리 주민, 동정자문위원장)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7.10 [소하슈퍼 이님순 씨 댁] 삭제 및 관련 시청각 연결 삭제 1. [소하슈퍼 이님순 씨 댁] 내용 전체 삭제 2. 이남순 가옥 관련 시청각 자료 4건 연결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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