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31006 |
---|---|
한자 | 李潑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산69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양철원 |
현 소재지 | 이발 묘 -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산69 |
---|---|
성격 | 능묘 |
관련 인물 | 이발|이길 |
[정의]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발의 묘.
[개설]
이발(李潑)[1544~1589]은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을 계기로 일어난 기축옥사에서 모반에 가담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고문을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때 82세의 노모와 8세 아들도 형벌 끝에 죽음을 당하였는데, 형 이급(李汲), 아우 이길(李洁)도 죽음을 당하였다. 당시 노모는 형벌이 너무 지나치다며 꾸짖었고 정여립의 모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일의 전말에 대하여 승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광명 출신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은 1591년(선조 24) 대사간의 자리에 있으면서 기축옥사를 일으킨 정철(鄭澈)을 탄핵하고 1624년(인조 2)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기축옥사의 희생자들을 신원하는 데 참여하였다.
이발, 이길 형제의 연고지는 호남이나 이원익이 광명에 묘소를 쓰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광산이씨(光山李氏) 문중에서 전한다. 매년 봄 전국에서 문중 사람들이 모여 시제를 지낸다.
[위치]
이발 묘는 광명시 소하동 산69번지에 있는데 설월리에서 구름산으로 올라가는 산자락 일원이다.
[금석문]
이발의 묘에 세워진 비에는 ‘증가선대부이조참판행홍문관부제학이발지묘’, ‘증철정대부홍문관부제학행통준대부의정부사인이길지묘’가 함께 새겨져 있다. 옥사의 엄혹함으로 가문이 몰락하여 신원 이후에도 어려웠던 형편을 보여 준다.
[현황]
이발의 묘는 현재 일반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운 곳에 있는데 구름산 지구를 개발할 때 진입로를 만들고 안내판을 세워 선조들의 우의와 의리를 알리는 유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이발 묘는 광명시 향토 인물인 이원익과 이발 형제 사이의 연고를 보여 주는 유적으로, 엄혹한 정치 지형에서도 역적으로 몰린 동료를 거두어 들인 조선시대 선비의 의리를 잘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