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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576
한자 李東植
영어음역 I Dongsi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동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농민운동가
출신지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밤일[옛 시흥군 서면 율일리]
성별

[정의]

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개설]

1차 시흥농민봉기는 1898년(고종 35) 7월 9일 시흥읍내에서 전 군수 문봉오(文鳳梧)의 가혹한 수탈과 불법 행위에 반발로 일어났다. 거사를 위해 주모자들은 7월 7일 사발통문으로 6개 면 42명의 집강에게 연락하여 9일을 기하여 모든 마을 사람들이 집강의 인솔 아래 관내로 모이기로 하였다.

관아로 가서 전 군수 문봉오와 그를 방조한 전 향장 이희복(李熙福), 전 수서기 이종열(李宗烈), 서기 김홍식(金鴻植), 형방 서기 김홍식(金鴻植), 순교 이희장(李熙章) 등의 죄상을 8조목으로 나누어 성토하였다. 집회가 일어나는 동안 이서(吏胥)들이 도망하자 그들의 집물, 전곡, 의복을 불태우거나 파손하고 가옥 창고를 파괴하였다.

이에 파주군수 이필영(李弼永)이 조사관으로 파견되어 민란 발생의 원인과 주모자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9월 24일 경기도 재판소에 「시흥군민요재사시응문제죄인수도성책(始興郡民擾再査時應問諸罪人囚徒成冊)」과 「시흥군민요시훼파가사적간성책(始興郡民擾時毁破家舍摘奸成冊)」의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경기도 재판소 판사 김영덕은 이필영의 보고서를 검토하여 9월 28일 의정부 참정 법부대신 신기선(申箕善)에게 보고하여 사후 처리가 일단락되었다.

[활동사항]

이동식(李東植)은 당시 65세로 시흥군 서면 율일리[현 광명시 하안동 밤일] 집강이었다. 이필영의 조사에 따르면, 이동식은 농민봉기에 참여한 일은 인정되지만 주모자 내지 발기인으로 보기에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석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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