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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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國自動車勞動組合聯盟 大邱-支部 賃金鬪爭 |
영어공식명칭 | The Wage Struggle of the Daegu Branch of Korean Automobile & Transport Federati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노광 |
발단 시기/일시 | 1989년 6월 15일 -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대구버스지부 임금투쟁 1989년 임금협상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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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 시기/일시 | 1989년 7월 7일 -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대구버스지부 임금투쟁 발생 |
전개 시기/일시 | 1989년 7월 14일 -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대구버스지부 임금투쟁 쟁의 발생 신고서 제출 |
전개 시기/일시 | 1989년 7월 27일 -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대구버스지부 임금투쟁 파업 찬반 투표 실시 |
종결 시기/일시 | 1989년 7월 29일 -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대구버스지부 임금투쟁 종결 |
성격 | 노동쟁의 |
관련 인물/단체 |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대구버스지부 |
[정의]
1989년 대구 지역에서 발생한 노동쟁의.
[개설]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대구버스지부 임금투쟁은 대구광역시에서 1989년 임금협상을 둘러싸고 발생한 노동쟁의이다. 1989년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대구버스지부[지부장 진남식]는 전국 6개 도시 동일 임금 교섭안을 가지고 6월 15일부터 임금 29.1% 인상, 근속수당 1만 원, 교통비 1일 1,000원 지급을 요점으로 하는 1989년 임금협상을 진행하였다. 7차례 교섭 끝에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7월 7일 논의 끝에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제3차 시내버스 분과는 6대 도시에서 7월 14일에 일제히 투쟁을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7월 11일 지부 사무실에서 대의원 총회를 개최하였다. 1989년 7월 14일 대구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 발생 신고서를 제출한 후 7월 27일 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한 결과, 90%의 찬성으로 파업이 결정되었다. 1989년 8월 8일 새벽 4시부터 전국 6대 도시 동시 파업이 진행되었다.
[역사적 배경]
1987년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사회 전반에 민주화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면서 그동안 억눌렀던 노동자들의 요구가 일시에 분출됨으로써 1987년 7·8월에는 노사분규가 빈번히 벌어졌으며, 그 양상 또한 격렬하였다. 1987년 이후로 분규의 건수가 줄어들긴 하였지만 분규 건당 지속 일수는 장기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초기에는 단체교섭, 임금인상 등을 중심으로 분규가 일어났으나 점차 쟁점이 다양화되면서 경영 참가, 복지 문제 등으로 확산되었으며 분규 유형은 집단 농성, 작업거부 등으로 나타났다.
[경과]
대구지방노동위위원회는 1989년 8월 7일 오후 2시부터 대구버스쟁의중재회의를 개최하였다. 노사 양측의 임금인상안에 대한 배경 설명을 들은 후 9시간 동안의 긴 회의를 거쳐 밤 11시 월 임금 총액 55만 7000원을 중재안으로 노사 양측에 통보하였다. 당시 노동조합 측은 6대 도시 공동 임금인상 요구안인 29.1%에서 후퇴하여 20% 인상을 요구하였으며, 사용자 측은 4.78% 인상에서 10% 인상으로 수정하여 제시하였다. 이처럼 이견의 폭이 컸는데, 대구지방노동위원회는 1990년 1월부터 무임 및 할인제의 일부 폐지에 따른 운송 수입금 증가와 해당 연도의 타 업종 임금인상안을 감안하여 13% 인상이라는 중재안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였다. 대구직할시는 시내버스 파업이 몰고올 엄청난 파문에 대비하여 냉각기간이 끝나는 7월 29일 대구지방노동위원회에 중재 요청을 하였고 대구지방노동위원회는 중재 회부 결정을 내렸다. 그리하여 노동조합 측으로서는 파업의 길이 제도적으로 막혀 버렸다.
이듬해인 1990년에도 초기 임금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노동조합 측은 노동쟁의 행위 찬반 투표를 1990년 8월 9일 밤 10시부터 10일 오전 9시까지 실시하였는데, 전체 조합원 3,098명 중 2,698명이 참가하고 그중에서 92.4%인 2,503명이 찬성하여 쟁의행위를 가결하였으며, 8월 17일 새벽 4시부터 전면 파업을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이런 과정 중에도 계속 교섭은 진행되었는데, 그 결과 8월 16일 오전 11시 40분부터 마지막 교섭에 들어가 17일 새벽 4시 50분 극적으로 임금협상이 타결되었다.
[결과]
1989년 임금투쟁에서도 노사합의로 타결한 데에 이어, 1990년 인금투쟁에서도 노사합의로 타결되었다. 타결된 합의안은 임금 10.49% 인상, 상여금 100% 인상, 정기 승급분 3,000원 인상, 하기 휴가비 3만 원 신설 등 5개 항이다.
[의의와 평가]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대구버스지부가 내세운 전국 6대 도시 동일 임금 인상을 위한 동시 파업은 전례 없는 전략으로서 노동조합 운동 역사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