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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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경기도 광명시에서 소하동과 일직동의 역사와 오늘의 모습을 정리한 동지. 광명시는 2004년에 KTX 광명역사가 개통된 이래 소하동 지역과 일직동 일대 역세권 개발 사업을 진행한 데 이어 신촌지구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소하동지(所下洞誌)』는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서 이 지역의 역사, 전통적인 마을 제의와 민속자료, 자연마을의 유래 등을 정리하여 기록물로 남기기 위해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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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의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세 운동이 벌어진 옛 노온사리 주재소[현 온신초등학교] 자리에 세운 기념비. 3.1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가 세워진 온신초등학교 자리는, 일제의 강권적인 식민지 통치에 항거하여 일어난 1919년 3.1운동 시기 광명 지역에서 독립만세운동의 기치를 처음 올려 민족혼을 빛낸 곳이다. 광명 지역의 3.1운동은 19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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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지역에서 3·1만세 운동이 처음 일어난 시기는 3월 27일이다. 당시 서면 소하리에 거주하고 있던 이정석(李貞石)이 노온사리 주재소 부근에서 만세 시위를 선동하다가 28일 아침 출동한 일본 경찰에 강제 연행되어 치안법 위반자로 노온사리 경찰관 주재소에 구금되었다. 이에 서면 지역 주민들이 이정석을 구출할 계획을 세움으로써 이 지역에서 3월 28일 200여 명이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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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민족 독립을 위해 경기도 광명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운동가들. 대한제국기와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1945년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광명 지역에서는 독립 운동과 항일 운동이 부단하게 전개되었다. 광명지역에서는 여러 명의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하였다. 1866년 시흥군 서면 철두리에서 태어난 장원겸(張元謙)은 충청남도 직산군 일대에서 길찬범(吉贊範)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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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자연마을. 조선 중기의 명재상이었던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이 관직에서 물러나 영당말에 살면서 호미로 농사를 지었다고 하여 ‘호미 서(鋤)’자를 써서 서월리(鋤月里)라 하였다가 발음이 변하여 서러리라 하였다는 설, 이원익이 눈 오는 밤에 마을길을 걸으면서 사색에 잠기곤 했다 하여 설월리(雪月里)라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조선시대에 시흥군 서면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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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 출신이거나 광명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 일제강점기 외세의 침략에 맞서 의로운 활동을 한 사람. 예부터 광명 지역에는 이원익(李元翼) 등의 충신들과 송수회(宋秀誨) 등의 효자들이 많은 충효의 고장으로 나라가 어려울 때는 많은 의로운 사람들이 나타났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침략에 맞선 의인들이 많았다. 성우경(成禹慶)[1842~?]은 개항기의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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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 집성촌은 우리나라 전통 사회의 한 특징으로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함께 모여 사는 촌락을 말한다. 집성촌이 형성된 시기는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 보기도 하지만, 조선 전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17세기 이후에 정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집성촌의 형성은 가족 제도와 친족의 범위, 혼인, 상속 제도와 관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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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주환(崔周煥)[1882~1950]은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같은 마을 사람인 이정석(李貞石)이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체포되자 3월 28일 밤 최호천(崔浩天)·윤의병(尹宜炳)·이종원(李宗遠)·김인한(金仁漢)·최정성(崔正成)·유지호(柳志浩) 등과 함께 이정석 구출 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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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독립 운동. 1910년 일제의 강제에 의하여 조선은 식민지가 되었고, 1945년 광복까지 끊임없는 항일운동이 전 민족적으로 펼쳐졌다. 광명지역에서도 항일운동은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주로 3·1운동과 야학 운동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독립에 대한 열망은 광명 지역에서도 대단히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27일, 소하리에 거주하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