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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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문화원에서 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과 그 후손들이 남긴 고문서를 정리하고 해제를 덧붙인 책. 『경산 정원용 가승 고문서 해제』는 광명문화원에서 조선 후기 광명 지역 인물인 정원용[1783~1873]과 그의 후손 4대에 걸쳐 왕이 하사한 교지 등과 친지들이 보낸 시와 축하의 글을 모아 수록한 화보집 성격의 책이다. 정원용과 그의 아들 정기세(鄭基世)[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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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원용이 태어날 때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생활을 기록한 일기. 『경산일록(經山日錄)』은 경기도 광명의 대표적 인물인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언어학자인 정원용(鄭元容)[1783~1873]이 과거에 급제한 1802년부터 1873년 운명하기 며칠 전까지 약 71년에 걸친 생활상을 기록한 일기이다. 『경산일록』에는 정조, 순조, 헌종, 철종, 고종 때의 정치 사회상이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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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철종 5)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자신이 경험한 견문과 의례, 인물 등을 정리한 책. 정원용은 아들 정기세(鄭基世)[1783~1873]가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되어 1854년 임지로 떠나자, 철종으로부터 원로대신을 위로하는 뜻에서 ‘수해 지역 순찰’이란 명목으로 휴가를 받았다. 이때 한가한 틈이 나자, 50년 관직 생활의 경험을 더듬어 조정의 전장(典章)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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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0년(경종 즉위년) 광명의 인물인 권유(權愈)가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시문을 묶고 발문을 쓴 책. 『열성어제(列聖御製)』는 1631년(인조 9)에 단종과 연산군을 제외한 태조부터 선조까지 조선의 12대 왕의 시문을 편집하여 최초로 간행되었다. 그 후 1679년(숙종7 2)에 이를 보완하여 간행되었으며, 그 뒤로도 철종 대까지 왕이 바뀔 때마다 선왕의 어제를 편집하여 앞 시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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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광명의 문신인 정기세(鄭基世)가 과거에 급제한 후부터 사망하기 전까지 공사(公私)의 일들을 기록한 일기. 정기세[1814~1884]는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鄭元容)의 큰아들로 태어나 1837년(헌종 3) 정시 병과 제1인으로 급제하였다. 『정기세일록(鄭基世日錄)』은 정기세가 과거에 급제한 1831년(순조 31)부터 사망하기 전인 1883년(고종 20)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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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부터 1897년까지 광명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인 정범조(鄭範朝)가 작성한 일기. 『정범조일록(鄭範朝日錄)』은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鄭元容)의 손자 정범조[1833~1897]가 27세인 1859년(철종 10)부터 사망하기 전인 1897년(고종 34)까지 작성한 일기다. 국학자 정인보(鄭寅普)[1893~1950]가 증조할아버지 정원용(鄭元容)[1783~1873]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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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광명 출신의 문신인 정범조(鄭範朝)의 글들을 묶은 문집. 정범조[1833~1897]는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鄭元容)[1783~1873]의 손자로, 홍문관제학과 예문관제학에 임명된 재원이었다. 문장력 또한 뛰어나 갑신정변과 청일전쟁·갑오경장을 거치면서 청나라와 일본·미국·영국에 보낸 외교 문서들을 작성했는데, 『초고(初稿)』에 이러한 글들이 모두 수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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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인물인 정원용의 의복·의대·장식품. 정원용(鄭元容)[1783~1873]은 1802년(순조 2) 정시문과 을과에 급제한 뒤 순조, 헌종, 철종, 고종에 이르기까지 72년간 조정의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쳐 영의정까지 역임하였다. 의정부와 중추원에서만 33년간 재직하였으며, 1862년(철종 13)에 궤장(机杖)을 하사받았다. 1874년(고종 11)에 문충이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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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의 주산은 높이 237m의 구름산이다. 광명시의 중앙에 자리 잡고 광명시를 동서로 가르는 구름산은 아왕봉 또는 운봉(雲峰)으로도 불렸다. 바로 이 구름산의 서쪽에서부터 동쪽까지의 줄기를 타고 역사상 훌륭한 인물들이 터를 잡고 뜻을 펼쳤는데, 그들이 바로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과 소현세자의 빈인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1611~1646],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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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존유를 시조로 하고 구흡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능성구씨(綾城具氏)는 구존유(具存裕)를 시조로 하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왕비 1명, 부마 3명, 부위(副尉) 1명, 정승 2명, 보국정경(輔國正卿) 10명, 등단대장(登壇大將) 10명, 문과 급제자 60명, 무과 급제자 230명, 음직 440명, 생원과 진사 150명 등을 배출하였다. 고려 말 조선 초에 활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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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공석골 뒤에 있는 마을이므로 뒷골이라 하였다. 달리 둔전현(屯田峴)이라고도 하였다. 뒷골은 공석골에 살던 창녕성씨가 번성하여 분가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조선시대에는 시흥군 서면 유등리에 속하였고, 1914년 시흥군 서면 가학리에 속하였다. 1964년 시흥군 서면 가학3리에 속하였고,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광명시 가학동에 속하였다. 행정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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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습명을 시조로 하고 정익채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영일정씨(迎日鄭氏)는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 6촌 가운데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 촌장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한다. 서기 32년(유리왕 9) 6촌을 6부로 바꾸고 촌장들이 왕으로부터 성을 하사받을 때 본피부(本彼部)로 개칭하고 정씨(鄭氏) 성을 받은 것이 시초이다. 정씨는 후대에 여러 갈래로 갈라지면서 본관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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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광명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봉기. 19세기 순조, 헌종, 철종으로 이어지는 60여 년간은 세도 정치의 폐해 및 봉건적인 지주 전호제의 모순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것이 삼정[전정, 군정, 환정]의 문란으로 이어지면서 농민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경기도 시흥군[지금의 광명시]에서는 전임 군수 문봉오(文鳳梧)의 탐학과 수탈 및 향리들의 불법 행위, 침탈 등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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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원익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전주이씨 시조 이한(李翰)은 선원선계(璿源先系)에 따르면, 전주에 토착해 온 명문 태생으로 신라 태종 무열왕의 10세손인 군윤(軍尹)을 지낸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결혼하였고 문성왕 때 사공을 지냈다. 이한의 선대가 언제부터 전주에 세거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한 이후 전주에 세거하여 후손들이 전주를 관향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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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성구(聖九), 호는 주계(周溪). 증조할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정계순(鄭啓淳)이고, 할아버지는 돈녕부도정을 역임한 정동만(鄭東晩)이며, 아버지는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鄭元容)이다. 아들로 정범조(鄭範朝), 손자로 정인승(鄭寅昇)을 두었다. 정기세(鄭基世)[1814~1884]는 1837년(헌종 3) 정시(庭試)에 병과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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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지역의 대표적인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선지(善之), 호는 경산(經山).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鄭太和)의 6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정계순(鄭啓淳)이고, 아버지는 돈녕부도정을 지낸 정동만(鄭東晩)이다. 어머니는 용인이씨이다. 외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이숭호이다. 부인은 예조판서 김계락의 딸이다. 아들로 이조판서를 지낸 정기세(鄭基世)와 목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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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문신 정원용의 묘소. 정원용(鄭元容)[1783~1872]은 1802년(순조 2)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가주서를 거쳐 예문관검열, 홍문관부응교, 이조참의, 대사간, 강원도관찰사 등을 지내다가 1831년 동지사로 청나라 연경에 다녀왔다. 1837년(헌종 3) 예조판서에 오르고 이어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중추부판사가 되었다가 1848년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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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개항기 정원용의 묘갈. 정원용 묘갈은 1872년 정원용(鄭元容)의 사후, 일찍이 준비해 놓은 구름산 아래 주봉(珠峯) 갑좌(甲坐) 아래에 먼저 별세한 정경부인 강릉김씨와 합장한 묘역에 맏아들인 정기세(鄭基世)가 주도하여 묘 앞에 세운 것이다.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산178-6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서울~안산 간 국도 상행선 방향이다. 광명IC 진입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