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620
한자 選擧
영어의미역 Election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필성

[정의]

경기도 광명시에서 지역 주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개설]

선거는 ‘일정한 조직이나 집단에 있어서 특정의 지위에 취임할 사람을 그 조직이나 집단 구성원들이 집합적인 의사 표시를 통하여 선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수인이 일정한 직에 취임할 사람을 선출하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선거는 반드시 국가 기관의 선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교회, 회사, 학교 등 여러 사회 조직이나 집단에서도 널리 행하여진다.

선거의 법적 성격은 ‘유권자의 집합체인 선거인단이 의원이나 대통령과 같은 국민 또는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 기관의 구성원을 선임하는 합성 행위’로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선거는 대통령, 국회의원 등 국가 기관을 선임하는 것이다. 이 경우 선거는 국민의 대표자를 직접 선택하고, 간접적으로는 정부와 내각 또는 정치를 선택하며,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치 제도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선거 제도는 대의 민주주의 통치 구조에서 국민의 주권 행사 내지 참정권 행사의 과정으로서 국가 권력의 창출과 국가 내에서 행사되는 모든 권력의 정당성을 국민의 정치적 합의에 근거하게 하는 조직 원리인 것이다.

선거의 범위는 정치 집단뿐만 아니라 사회단체, 경제단체, 문화단체, 노동단체, 농업단체 등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선거는 모든 사회 집단에서 실시되는 대표자 선출 방식이긴 하지만, 흔히 정치적 행위로서의 선거를 의미하며, 국민이 투표로 특정 정치적 공직자를 선출하는 방법의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헌법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있다.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다.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

국회의원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되고 국회를 구성한다. 민주주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주권자의 의사가 국정에 반영되어야하고 주권자를 대신하여 국정을 이끌어갈 대표자가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대표자를 선출하는 민주적 방법이 선거인 것이다. 광명시의 시민들도 주권자로서 다른 자치단체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선거권, 참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변천]

현재 한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주요 공직 선거로는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권의 수반이 되는 최고의 통치권자인 공화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국회의 구성원이 되는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 의회 의원 및 지방 자치 단체의 장을 선출하는 지방[광역 자치단체와 기초 자치 단체]선거 등이 있다. 광명시 지역의 공직 선거도 이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1981년 7월 1일 시로 승격된 이후 광명시에서 실시된 선거를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 자치 단체 선거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1. 대통령 선거

정부 수립 이후 1948년 7월 20일 실시된 초대 정·부통령 선거는 국회의원들에 의한 간접 선거로 실시되어 재적 의원 198명 중 196명이 투표한 가운데 이승만이 180표를 획득하여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제2대부터 제4대 대통령 선거는 국민의 직접 선거로 실시되었으나 제4대 대통령 선거의 경우 부정 선거로 무효 처리되어 내각제의 채택과 함께 다시 국회의원에 의한 간접 선거로 실시되었다.

제5대부터 제7대 대통령 선거까지는 다시 국민의 직접 선거로 실시되었으나 제8대부터 제12대 대통령 선거까지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또는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 선거로 실시되었으며 제13대 대통령 선거부터 다시 국민 직선제로 전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역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이승만[초대~3대], 윤보선[제4대], 박정희[제5대~9대], 최규하[제10대], 전두환[제11대~12대], 노태우[제13대], 김영삼[제14대], 김대중[제15대], 노무현[제16대] 등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 제14대 대통령 선거

1992년 12월 18일 실시된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광명시 유권자들은 전국 투표율[81.9%] 및 경기도 투표율[80.4%]과 비슷한 80.9%의 선거 참여율을 보여주었다. 광명시민들은 김영삼 후보 35.0%, 김대중 후보 37.8%의 지지율을 보여주었다. 광명시민은 전국 및 경기도의 지지율과는 미세한 차이를 보였으며, 오히려 서울시의 투표 결과[김영삼 36.4%, 김대중 37.7%]와 더 깊은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2) 제15대 대통령 선거

1997년 12월 18일 실시된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광명시 유권자들은 전국 투표율[80.7%] 및 경기도 투표율[80.6%] 보다 약간 높은 82.1%의 투표 참여율을 보여 주었다. 또한 광명시 대부분의 지역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의 지지율이 김영삼 후보에게 앞섰던 점과, 광명시에 충청도 출신이 가장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DJP연합’의 파괴력이 타 지역보다 더 강했음을 알 수 있다.

3) 제16대 대통령 선거

2002년 12월 19일 실시된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광명시는 전국 평균 70.8% 보다 높은 71.8%의 투표율을 보였으며, 노무현 후보가 완승을 거두었다. 전국 평균 48.9%를 얻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광명시에서는 55.7%를 획득하여 전국 득표보다 약 6.8%를 더 얻었으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39.7%를 득표해 전국 득표 46.6%에 6.9%를 하회하였다.

4) 제17대 대통령 선거

2007년 12월 19일 실시된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광명시는 이명박 후보가 완승을 거두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66,944표로 46.8%를 획득하였으며, 이어서 민주당 정동영 후보는 41,736표, 27.9%, 자유선진당 이회창 후보는 19,985표, 13.4%를 득표하였다.

2. 국회의원 선거

국회의원 선거는 1948년 5월 10일 전국의 총 200개의 선거구 중에서 치안 관계로 선거 실시가 보류된 북제주의 갑·을구를 제외한 198개의 선거구에서 최초로 실시된 이래 2004년 제17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실시되었다.

1)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1992년 3월 24일 실시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는 광명에서도 뜨거웠다. 6명의 후보[민주자유당 김병용, 민주당 최정택, 국민당 윤항렬, 신정당 김은배, 공명당 유주봉, 민중당 유인렬]와 무소속[김성기·김재주·박인식]을 포함해 무려 9명이나 되는 후보가 출마하여, 전국 4.4대 1, 경기도 4.3대 1의 경쟁률을 훌쩍 뛰어 넘었다. 69.3%의 투표율을 보인 광명시에서는 53,269표[35%]를 얻은 국민당 윤항렬 후보가 당선되었다.

2) 제14대 국회의원 보궐 선거

1993년 4월 24일 광명시와 부산 동래 갑, 부산 사하 3곳에서 실시된 보궐 선거는 문민정부 초기라는 점과 규모가 작았다는 점에서 큰 의를 가지지 못했지만, 앞으로 있을 각종 보궐 선거의 시발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광명 보궐 선거에는 총 10명의 후보자가 출마하였다.

부산 사하의 5대 1, 부산 동래 갑의 2대 1의 경쟁률을 고려해 본다면 그 열기는 굉장히 뜨거웠다고 볼 수 있다. 41.2%의 투표율을 보인 광명 국회의원 보궐 선거는 민주자유당 손학규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손학규 후보는 41,683표[44.9%]를 얻어 28,373표[30.6%]를 득표한 민주당 최정택 후보를 14.3%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3)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1996년 4월 11일 실시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는 공직 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총선거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이 법의 제정으로 종래 별개의 선거법 체계로 되어 있던 대통령 선거법, 국회의원 선거법, 지방의회의원 선거법,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법이 하나의 단일법으로 통합되었고, 선거일이 ‘임기 만료일 전 50일 이후 첫 번째 목요일’로 법제화됨에 따라 입후보 예정자의 준비 행위 및 선거 관리 업무의 사전 준비가 가능해졌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시 광명시의 경우 1개의 선거구였던 것이 선거법 개정으로 2개의 선거구로 분구되어 치러졌다. 광명 갑은 광명동 전체·철산 1~2동·철산3동으로, 광명 을은 철산4동·하안동·소하동·학온동으로 정리되었으며 경쟁률은 갑·을구 각각 5대 1, 4대 1을 보여주었다.

광명 갑은 신한국당 이덕화, 새정치국민회의 남궁진, 민주당 최정택, 자유민주연합 김재주, 국민연합 김석영 등이 출마하였고, 광명 을은 신한국당 손학규, 새정치국민회의 김은호, 민주당 김승남, 자유민주연합 차종태 등이 출마하였다. 광명시 투표율은 64.4%를 기록하였다.

광명 갑에서는 새정치국민회의 남궁진이 신한국당의 이덕화와 전 투표구에서 접전을 벌여 2% 차이로 신승을 거두었으며, 광명 을에서는 현역 국회의원인 손학규가 높은 지명도와 중앙 언론의 조명 속에 43.0%를 득표하여 28%를 얻은 새정치국민회의 김은호를 큰 차이로 따돌렸다. 손학규는 광명의 첫 번째 재선 의원이 되었고, 후일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4) 제15대 국회의원 보궐 선거[1998. 7. 21]

1998년 6월 4일 2회 동시지방선거 이후 바로 실시된 제15대 국회의원 보궐 선거는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었다. 광명 을 조세형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대행, 강릉 조순 한나라당 총재, 종로 노무현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서초 갑 박찬종 국민신당 상임 고문 등 전국 7곳의 선거구에는 각 당의 비중 있는 인사들이 다수 출마하였다.

광명시는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손학규 의원의 의원직 사퇴로 보궐 선거가 실시됐다. 40.1%라는 매우 저조한 투표율을 기록했으며 한나라당이 5곳, 공동 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각각 2곳, 1곳을 나누어 가졌다. 보궐 선거 결과 한나라당은 4석 늘어난 151석을 확보, 국회 과반 의석[150석]을 유지하게 되었으며, 새정치국민회의는 88석으로, 자유민주연합은 49석으로 의석을 늘렸다. 가장 접전을 펼쳤던 광명 을은 국민회의 조세형 후보가 한나라당 전재희 후보와 시종 선두 다툼을 벌인 끝에 1,200표차로 신승했다.

5)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2000년 4월 13일 실시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는 새로운 천년을 맞아 21세기를 열어 가는데 아주 중요한 첫 단추를 끼우는 정치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김대중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의 성격과 더불어 이 선거 결과가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정치적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한나라당 손학규, 새천년민주당 조세형, 자유민주연합 김재주가 출마한 광명 국회의원 선거는 한나라당 손학규와 새천년민주당 조세형 후보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초 접전을 벌였다. 결국 한나라당 손학규 후보가 조세형 후보에게 1% 차이로 신승을 거두었다.

6) 제16대 국회의원 보궐 선거

2002년 8월 8일 실시된 광명 보궐 선거는 56.4%를 얻은 한나라당 전재희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 선거로 전재희 후보는 비례 대표직을 사퇴하고 지역구 국회의원이 되는 흔치 않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이렇다 할 정국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보궐 선거가 치러졌고, 선거 전 각종 언론사 여론 조사에서도 전재희 후보의 수세를 보고하고 있었던 터라 선거 결과 역시 예상했던 것과 일치했다.

7)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2004년 4월 15일 실시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62.7%의 투표율을 보인 광명시[전국 61.6%]는 광명 갑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이원영 후보가, 광명 을에서는 한나라당 전재희 후보가 당선되었다. 두 정치 신인이 맞붙은 광명 갑은 탄핵 반대 열풍 속에 쉽게 결말이 났다. 열린우리당의 이원영 후보가 34%를 얻은 한나라당의 정성운 후보와 12%에 그친 민주당 방호현 후보를 쉽게 따돌렸다. 한나라당 전재희 후보는 철산동[철산3동]과 학온동의 높은 지지 속에 47%를 획득하여 43%에 그친 열린우리당의 양기대 후보를 누르고 광명시에서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2008년 4월 9일 실시된 국회의원선거는 광명 갑, 을 지역에서 실시되었다. 광명 갑에서는 통합민주당 백재현 후보가 29,385표를 얻어 당선되었으며, 광명 을에서는 한나라당 전재희 후보가 29,218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3. 지방자치 선거

지방자치 선거는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선거, 기초지방자치단체장 선거, 광역의회의원선거, 기초의회의원 선거 등 4대 선거로 실시되었다. 지방자치 선거 중 가장 먼저 실시된 선거는 기초지방의회의원 선거로 1991년 3월 26일에 실시되어 현재 민선 4기째를 맞고 있다.

1) 민선1기 기초의원·광역의원 선거

광역의회 의원 선거는 1991년 6월 20일 실시됐다. 광명시에서는 3개의 선거구에서 3명씩 출마하여 평균 3대 1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투표 결과 민주자유당의 구정회, 김상윤, 안병태 후보가 당선되어 민선1기 경기도의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2) 민선2기 광명시의원 선거

1991년 3월 26일 실시된 기초의원 선거는 광역의원보다 3개월 먼저 실시되었다. 광명시 18개 동에서 총 22명을 선출하였는데 인구수가 많은 철산 2~3동과 하안 1~3동에서는 2명씩 선출하게 되었다. 철산3동에서 당선된 장순원 후보는 29세의 나이로 최연소 의원이 되었고, 70세의 한문복 후보는 최연장 의원으로 기록되었다.

3) 제1회 전국동시지방 선거[1995. 6. 27]

(1) 민선1기 경기도지사 선거

민주자유당의 이인제와 민주당의 장경우, 자유민주연합의 김문원, 무소속 임사빈이 출사표를 던진 최초의 민선 경기도지사 선거는 민주자유당 이인제 후보의 완승으로 끝났다.

(2) 민선1기 광명시장 선거

최초의 여성 관선시장 출신인 민주자유당 전재희 후보와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역시 관선 광명시장을 지낸 민주당 김태수 후보의 격전으로 여러 이목을 집중시켰다. 광명시장 선거는 민주자유당 전재희 후보가 43%를 얻어 40%에 그친 김태수 후보를 접전 끝에 물리쳤다.

4) 제2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1998. 6. 4]

(1) 민선2기 경기도지사 선거

한나라당 손학규 후보와 새정치국민회의 임창열 후보가 치열한 선거전을 전개했는데 임창열 후보가 약 10%의 우세로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2) 민선2기 광명시장 선거

48.8%의 투표율을 보인 광명시장 선거에서 56%를 얻은 새정치국민회의 백재현 후보가 승리했다.

5) 제3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2002. 6. 13]

(1) 민선 3기 경기도지사 선거

한나라당 손학규 후보가 58.4%를 득표하여 민주당의 진념 후보를 넉넉한 투표 차이로 이겼다.

(2) 민선 3기 광명시장 선거

민주당의 백재현 후보가 한나라당의 차종태 후보를 4% 차이로 누르고 다시 광명시장에 당선되었다.

6) 제4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2006. 5. 31]

2006년 5월 31일 시행된 도지사 및 시장선거의 광명시 결과는 경기도지사에 61,192표, 54.7%를 얻은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시장에는 한나라당 이효선후보가 56,713표, 50.8%를 얻어 민선 4기 광명시장에 취임하였다.

7) 제5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2010. 6. 2]

2010년 6월 2일 시행된 제5회 도지사 및 시장선거 결과 경기도지사에는 김문수 후보가 2,271,492표로 당선되었으나 광명지역에서는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 60,299표, 44.6%를 얻은데 비해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는 74,886표, 55.39%를 득표해 앞선 결과를 보였다. 시장선거에서는 민주당 양기대 후보가 79,786표, 57.16%를 얻어, 45,186표를 얻은 한나라당 안병식 후보를 제쳤다.

[의의와 평가]

무엇보다도 시민들이 선거에 대한 중요성과 참여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80%정도의 투표 참여율이 있어야 한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만큼 선거 결과가 왜곡되기 쉽기 때문이다. 모든 선거에 임하는 광명시민들의 정치적 판단이 자발적이고 소신 있는 것이라면 그 결과는 명백히 표에 반영되어 나타날 것이다.

부정 선거도 그만큼 자리 잡지 못 할 것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를 통하여 민주적 정치 과정이 신뢰받는다면 선거 결과에 대하여 정당성을 인정받고 국가의 정부나 지도자가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이는 곧 국가의 경쟁력과 국제 사회에서의 신뢰를 얻어내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할 것이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N** 2020년에 맞게 수정해주세요.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견은 수정증보 사업을 통해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7.16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