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8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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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昌敎會 |
이칭/별칭 | 조곡교회,대재교회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금창로 700[대창리 1076-73]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손산문 |
설립 시기/일시 | 1900년 - 조곡 교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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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937년 - 조곡 교회에서 대재교회로 명칭 변경 |
개칭 시기/일시 | 1939년 - 대재 교회에서 대창 교회로 명칭 변경 |
최초 설립지 | 조곡 교회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조곡리 |
현 소재지 | 대창 교회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금창로 700 [대창리 1076-73] |
성격 | 교회 |
설립자 | 이성수 |
전화 | 054-335-4195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대창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개설]
경동 노회 경내의 기독교 전파는 울산과 밀양 방면에서 전래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대구 방면을 통해서 전해졌다. 그리고 선교사들에 의해 직접 세워진 교회도 있지만 지역민들이 외지에 나가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받고 고향 마을에 돌아와 교회를 세운 경우도 있었다. 대창 교회는 경동 노회[경주·영천 지역]에서 설립 연도가 가장 빠른 교회로서 대구에 나갔던 한 지역민이 복음을 받고 돌아와 전도하여 설립하였다.
[변천]
대창 교회는 이성수라는 마을 사람이 약초를 팔러 대구 약령시에 나갔다가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인 베어드(Willam. M. Baird)[배위량: 1893년과 1894년 두 차례 대구·경북 지역 전도 여행 차 대구에 들렀음]를 만나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마을에 돌아와 열심히 전도하면서 예배한 것이 시작이며, 그 시기가 1895년경이다.
대창 교회는 원래 조곡리에서 교회가 시작되었는데, 1898년 아담스(J. E. Adams)[안의와] 선교사가 조곡리에 ‘조곡 교회’[『경북교회사』·『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의 ‘조곡 교회’의 설립연도는 1900년으로 되어있음]를 설립하고 이성수 씨를 영수로 임명하여 교회를 돌보게 하였다.
그 후 브루엔(H. M. Bruen)[부해리] 선교사 등이 왕래하면서 복음을 전했으며, 다시 구지리로 이전하여 5칸 예배당을 지었는데, 이후 10여 년간 교세가 급속히 성장하였다. 그러나 어방리로 이전하면서 교세가 매우 약화되었고 이로부터 계속해서 정체되고 말았다.
‘조곡 교회’란 명칭으로 출발한 대창 교회는 1937년 제3회 경동 노회에서 ‘대재 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가 1939년 제5회 경동 노회에서 오늘날의 명칭인 ‘대창 교회’라 이름 하게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창 교회는 오랜 세월 마을과 함께 한 교회이다. 따라서 마을 주민의 영적, 육적 쉼터가 되기 위해 전도 사업을 꾸준히 지속하고 있으며, 농촌 지역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대 주민 봉사에 정성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마을 경로당을 꾸준히 방문하고, 어려운 가정들에 대한 후원 사업을 하고 있다.
특히 앞으로는 농촌 지역에 증가하고 있는 독거 노인들, 다문화 가정들, 결손 가정의 아이들에 대한 돌봄 사역에 중점을 두고 교회의 대 주민 활동 영역을 넓혀 갈 계획이다.
[현황]
대창 교회는 역사가 오래된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보존 자료가 거의 없다. 교세 또한 농촌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대창 교회는 주민들의 이농 현상 외에 더하여 조곡리→구지리→어방리→조곡리→대재리→대창리 등으로의 너무 잦은 이동이 교회 성장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잦은 변경과 이동은 옛 예배당을 비롯한 역사적 보존 자료가 거의 없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교세는 많이 약화되었지만 근자에 이르러 50여 명의 교인[담임 목사 1명, 시무 장로 2명]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즉 2010년도에 전 교인이 합심하여 새 예배당을 총면적 760㎡[251평]에 건물 61평, 지상 2층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짓고 입당 예배를 지역민들과 함께 하였다. 이를 계기로 교인들의 신앙 성장뿐만 아니라 지역을 섬기는 사역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창 교회는 그 설립 과정에서 여느 교회들과는 다른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 이성수라는 한 마을 주민이 외지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선교사가 전해 주는 복음을 받고 돌아와 마을 교회의 기초를 세웠다. 이는 선교사가 전해 주는 복음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초기 한국 교회의 선교사적 특징은 토착 한국인에 의한 복음의 주체적 수용이라는 것인데, 대창 교회는 바로 그 실례를 보여 주는 교회이다.
반면, 교회의 잦은 이동은 한 마을에 온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였다. 때문에 대창 교회는 지역성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마을 교회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 지역의 사람들과 관계 형성을 하며 함께 삶을 살고, 지역민을 섬겨 나가는 일은 마을 교회가 꾸준히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사역이다. 대창 교회는 잦은 이동으로 그런 아쉬움을 깨닫게 해 주는 반면교사로서의 의미도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