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6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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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聽流堂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
집필자 | 김찬영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970년경 - 청류당 방앗간, 마구간 철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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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4년 - 청류당 사랑채 정지 위 다락 수리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7년 - 청류당 웃채 우측편에 양옥집 신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1년 - 청류당 사랑채 수리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8년 - 청류당 웃채 수리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9년 - 청류당 지붕 개량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11년 - 청류당 사랑방 간, 청방간 개조 |
현 소재지 | 청류당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
성격 | 주택 |
양식 | 장여수장 3량가 맞배 기와집 |
정면 칸수 | 웃채 4칸|사랑채 5칸|사당 1칸 |
측면 칸수 | 웃채 3칸반|사랑채 1칸|사당 1칸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갑현마을에 있는 주택.
[개설]
청류당은 충의공 권응수(權應銖) 장군의 손자로 갑현마을을 개척한 조선 숙종 때 부호군을 지낸 권산보(權山甫)[1629~1708]의 종택이다.
[위치]
청류당은 신녕면에서 28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4.2㎞ 지점에 있는 화남 1리 갑현마을에 있다. 마을 초입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영천성을 탈환한 의병대장 권응수 장군의 유물 전시관이 있고, 이 전시관 뒤편에 있는 화남재 좌측에 청류당이 있다. 갑현마을은 안동 권씨 중시조인 권응수 장군의 자손들이 세거(世居)해 오고 있는 동족부락이다.
[변천]
청류당 현존 거주자가 파악하는 건물 구성은 ㄱ자형 위채와 一자형 사랑채가 앞·뒤로 배치되어 있고, 이들 두 건물 우측으로는 3칸 초가의 방앗간이 있어 전체적으로 튼 ㅁ자형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들 건물 일곽 우측 뒤로는 사당이 있고, 사당 전방으로 마구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방앗간은 1970년경에 없어졌고, 마구간도 그때쯤에 없어졌다고 한다. 위채와 사당 사이에는 1997년에 현 거주자의 살림을 위해 지은 양옥집이 있다.
[형태]
청류당의 현재 건물 구성은 위채, 사랑채, 사당의 3동과 양옥집 1동이다. 위채는 4칸 ㄱ자형 맞배 기와집, 사랑채는 5칸 一자형 맞배 기와집, 사당은 1칸 맞배 기와집이며, 이 세 건물이 튼 ㄷ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전면의 사랑채와 그 뒤편의 위채 우측에 새로 지은 양옥집 사이를 막은 블록담장 사이에 낸 철 대문을 들어서면 자그마한 안마당이 나온다. 이 안마당 앞은 사랑채이고, 그 뒤로는 위채와 그 우측에 양옥집이 있다.
사당은 양옥집 우측 편의 뒤쪽에 있다. 위채는 정면 4칸, 측면 3칸 반 규모에 ㄱ자형이며, 가구는 장여수장한 3량가 맞배 기와집이다. 평면은 좌측 끝에 2통 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으로는 안방 2칸과 정지, 앞으로는 작은방 1칸과 정지 반칸이다.
안방은 고미반자에 뒤로 반침이 설치되어 있고, 안방과 작은방 앞으로는 2008년도에 고친 쪽마루가 시설되어 있다. 한편 안방 좌측의 대청 좌측면에는 외여닫이 띠장널문 2개가 별개로 달려 있던 것을 2008년 수리 시 철거하고 벽으로 마감했다. 아울러 서까래와 인방(引枋) 일부를 교체 수리했고, 2009년에는 지붕을 개량했다.
사랑채는 5칸 一자형으로 자연석 기단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민흘임기둥을 세워 주상부를 장혀수장집으로 꾸몄다. 평면은 좌측부터 방+정지+사랑방 2통 칸+사랑마루로 배열하고, 사랑방과 사랑대청 전면에는 쪽마루를 시설했다.
[현황]
청류당은 1994년 예전 안대문을 정지로 개조하고 2001년에 재차 수리했으며, 정지 좌측 방은 당초 마구를 개조한 것이다. 아울러 2011년에는 사랑방 간에 두짝 미닫이를 철거하고 통 칸으로 넓혔고, 청방간에 달려 있던 두짝 굽널세살문을 철거하고 벽으로 마감하는 등 다소 변화가 있었다. 위채 우측의 양옥집은 1997년에 현 주인의 생활을 위해 신축한 것이다.
청류당 건물은 17세기에 창건된 후 수 차례 중수와 수리가 있었다. 특히 기둥, 인방 등에 각종 장부 구멍 등이 많이 확인되고 있는 점은 건립 당시에 목재 수급의 어려움으로 구 재목을 재사용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당초 건립된 배치 형태가 튼 ㅁ자형으로 상류주택의 면모를 보이며, 위채의 ㄱ자형 평면은 영천 지역 상류주택 중 비교적 빠른 시기에 그 예가 있다. 하지만 대청이 안방과 작은방 사이의 꺾임 모서리에 위치한 점은 매우 특이하다. 후대 없어진 건물이 많고, 각 채의 평면 및 구조적 변화는 현대 주생활의 변화를 반영하듯 개조, 개수가 많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