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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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職業紹介所 |
이칭/별칭 | 대구부립직업소개소,대구직업소개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 실업자 구제를 위하여 설치된 대구부 산하 사회사업단체.
[역사적 배경]
조선총독부는 192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대구, 경성, 부산, 평양 등 각 부(府) 단위로 ‘빈민 구제 사업’, ‘이재민 구조’, ‘노유폐질자(老幼廢疾者) 구료(救療)’, ‘고아 및 맹아자의 교양 및 행려병인 사망인의 구호 취급’ 등 사회사업을 본격적으로 실시하도록 하였다.
대구부도시계획위원회는 1923년 1월 30일 「대구부도시계획조사규정」을 만들고, 지방비를 들여 사회 시설로 직업소개소(職業紹介所), 공설시장, 공설숙박소, 공설욕장, 공설식당, 공설운동장, 탁아소, 소아상담소, 시민관, 공설재장, 행려병자수용소, 공설시료원, 감화원, 활동사진관, 극장, 기타 오락기관을 설립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대구부는 1920년대 사회 시설이나 사회사업 기관을 차례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1928년에는 직업소개소와 공회당을 설립하였다.
[변천]
대구부협의회는 1928년 3월 26일 신규 사업으로 1,800여 원의 예산을 들어 직업소개소를 만들기로 결정을 내렸다. 1928년 5월 대구부립도서관 내 대구부립직업소개소를 설치하였다. 1935년 대구부 덕산동에 신청사를 짓고 이전하였다.
직업소개소는 일반 직업과 일용노동자의 소개, 일제의 대륙 침략 정책으로 인한 서북 지방의 철도와 도로의 개설과 수리에 필요한 노동자 등을 소개하였다. 일본에서 필요로 하는 산업 기관의 공업 노동자 등을 알선하기도 하였다. 직업소개소는 ‘무료 소개’, ‘수속 간이’를 내세워 실업자를 구제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기대만큼 큰 효과를 내지 못하였다. 직업소개소는 1936년 4월 1일부터 16일까지 139명을 소개하여 50명을 취직시켰다. 또한 소학교[오늘날 초등학교] 졸업생 200여 가운데 20~30여 명을 대구부 내 상점에 견습생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직업소개소가 실업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일어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