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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호서당 상량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467
한자 靑湖書堂 上梁文
영어공식명칭 Cheongho seodang Sangryangmun
이칭/별칭 「청호서당 중건 상량문」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250-11[황금동 79-4]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871년 - 최종응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929년연표보기 - 「청호서당 상량문」 창작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44년 - 최종응 사망
배경 지역 청호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250-11[황금동 산79-4]지도보기
성격 축문|상량문
작가 최종응

[정의]

1929년 최종응이 지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청호서원의 중건 상량문.

[개설]

「청호서당 상량문(靑湖書堂上梁文)」을 쓴 최종응(崔鍾應)[1871~1944]은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자는 성문(聲聞)이고, 호는 금전(琴田)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독립운동가이다. 가명으로 최근응(崔謹應)을 사용하였다.

「청호서당 상량문」의 배경이 되는 청호서원격재(格齋) 손조서(孫肇瑞), 모당(募堂) 손처눌(孫處訥), 사월(沙月) 유시번(柳時藩), 양계(暘溪) 정호인(鄭好仁)을 제향하고 있다. 손처눌은 생전에 청호서당에서 강학 활동을 펼쳤다. 청호서당청호서원의 전신이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9년 중건 공사를 시작하였다. 「청호서당 상량문」은 1929년 상량하면서 지은 작품이다. 「청호서당 중건 상량문」이라고도 한다.

[구성]

「청호서당 상량문」은 문부(文部)와 사부(辭部), 기원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청호서당 상량문」 문부에는 청호서당의 내력과 제향 인물 소개, 손처눌의 공적에 대한 찬양, 서원 중건의 동기와 효용 등을 서술하였다. 특히 대구 청호[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일대]에 은거하며 유학(儒學)의 정통을 이은 손처눌의 학문적 위상과 후진 양성에 힘썼던 공적 찬양에 집중하였다. 사부에는 낙성을 고하는 아랑위(兒郞偉) 노래이다. 마지막 기원문은 손처눌 평생의 지향이었던 후진 양성과 교화에 대한 의지를 받들고 있다.

[특징]

「청호서당 상량문」 문부는 변려문 형식이 아닌 일반 산문 형식을 따르고 있고, 용사(用事)의 활용이 다채롭다.

[의의와 평가]

「청호서당 상량문」청호서당의 중건 상량문이다. 청호서당의 내력과 중건의 동기, 효용 등을 간략하고 분명하게 제시하였고, 낙성을 고하는 아랑위 노래를 통하여 청호서당 주변의 풍광을 읊었다. 청호서원의 전신이었던 청호서당의 지리적 위치와 건물의 위용을 파악할 수 있고, 핍박받는 일제강점기 유림들의 서원 중건 공의가 인재 양성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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