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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471
한자 姜枉守
영어공식명칭 Kang Wangso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35년연표보기 - 강왕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61년 1월 7일 - 강왕수 민주주의민족청년동맹 경북도연맹에 가입하고 투쟁국장을 맡음
활동 시기/일시 1961년 4월 7일 - 강왕수 이대법반대시민궐기대회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61년 4월 28일 - 강왕수 『영남일보』에 「학생과 조국통일」 기고
출생지 죽전리 -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죽전리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사회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민주주의민족청년동맹 경북도연맹 투쟁국장

[정의]

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개설]

강왕수(姜枉守)[1935-?]는 4·19혁명 시기 민주주의민족청년동맹 경북도연맹 사건을 일으킨 사회운동가이다.

[활동 사항]

강왕수는 1935년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죽전리에서 태어났다. 1957년 3월 부산 동아대학교 법과를 졸업하였고, 9월에 육군에 입대하여 1960년 5월 만기 전역하였다. 1960년 6월 초순 사회대중당 경북도당에 입당하고 상임위원이 되었으며, 1961년 1월 7일 민주주의민족청년동맹 경북도연맹에 가입하고 투쟁국장을 맡았다. 4월 7일 대구 수성천 변에서 이대법반대공동투쟁위원회가 개최한 이대법반대시민궐기대회에서 “장정권은 선거 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자신의 부패를 은폐하려고 이대법을 제정하려 하므로 한사코 이를 반대한다”라는 내용의 궐기사를 하였다.

강왕수가 활동하던 민주주의민족청년동맹 경북도연맹은 5·16쿠데타 이후 구성된 국가재건회의에 의해 국회와 지방의회, 15개 정당, 238개의 사회단체가 해산될 때 강제 해산되었다. 민주주의민족청년동맹 경북도연맹은 ‘특수반국가행위사건’으로 분류되었다. 강왕수는 “4·19 후 정세 혼란을 틈타 이대악법반대, 남북평화통일 등을 주장하여 북한 괴뢰를 고무 동조하였다”라는 혐의로 군사혁명재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저술 및 작품]

강왕수는 1961년 4월 7일 이대법반대시민궐기대회에 참가한 이후 4월 28일 자 『영남일보』에 「학생과 조국통일」이라는 글을 투고하였다. 그 내용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식민 정책의 침략 세력과 그러한 착취 세력에 아부 굴종한 민족 반동 세력으로 이내 통일이 지연되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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