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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456
한자 全克和
영어공식명칭 Jeon Geukhwa
이칭/별칭 강숙(强叔),낙포(洛浦)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충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48년연표보기 - 전극화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18년연표보기 - 전극화 사망
출생지 달성 수성리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지도보기
수학|강학지 남간정사 - 대전광역시 동구 충정로 53[가양동 3]
성격 학자
성별 남성
본관 옥천(沃川)
대표 관직|경력 제용감봉사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가계]

전극화(全克和)[1648~1718]의 본관은 옥천(沃川)이며, 자는 강숙(强叔), 호는 낙포(洛浦)이다. 할아버지는 전시헌(全時憲)이다. 아버지는 참봉(參奉) 전유장(全有章)이고, 어머니는 이휴운(李休運)의 딸 영양이씨(永陽李氏)이다. 형은 전극태(全克泰)·전극초(全克初)·전극념(全克念)이고, 동생은 전극민(全克敏)이다. 다섯 형제가 모두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다.

[활동 사항]

전극화는 1648년(인조 26) 달성(達城) 수성리(壽城里)[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가학(家學)을 익히다가 성장하여서는 형제들과 함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남간정사(南澗精舍)에 들어가 가르침을 받았다. 전극화와 형제들이 충청도에 있는 송시열의 문하에 들어간 것은 아버지 전유장이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생이어서 송시열과 오가며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이었다.

전극화는 1675년(숙종 1) 송시열이 제2차 예송(禮訟)에서 패배하고 유배를 가게 되었을 때 스승 송시열을 모셨다. 송시열이 사망한 뒤에는 성주(星州), 거제(巨濟), 장기(長䰇) 등 송시열이 다녀간 곳에 서원을 세우는 일에 참여하였다. 1702년에는 다른 유생들과 함께 김장생의 문묘(文廟) 배향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리기도 하였다.

전극화는 관찰사가 학행(學行)을 조정에 천거하여 남부참봉(南部參奉)에 제수되었고, 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 등을 역임하였다. 1718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전극화의 문집인 『낙포유고(洛浦遺稿)』가 다섯 형제의 문집을 모아서 엮은 책 『연방집(聯芳集)』 속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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